정부가 지난 4월 노사정 대타협 실패 이후 주춤했던 노동개혁에 다시 시동을 걸었다. 대통령이 대국민담화에서 노동개혁을 경제 재도약 첫째 과제로 꼽은 이후 연일 노동개혁을 설파하고 있다. 여당도 차제에 노동개혁을 이루려 힘을 보탰다. 반대 목소리도 크다. 한국노총은 지난 대통령 담화에 “실망을 넘어 분노를 감출 수 없다”는 성명을 내놓았다. 정부가 경제 재도약과 청년 일자리 창출을 목적으로 노동개혁에 힘을 실었지만 갈 길이 순탄치 않다.
정부가 노동개혁 카드를 다시 맨 위로 올려놓은 것은 노동개혁이 곧 좋은 일자리, 새로운 일자리라는 판단에서다. 박 대통령은 지난 대국민 담화에서 “노동개혁 없이는 청년의 절망도, 비정규직 근로자 고통도 해결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국내 노동 시장은 인구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되는 가운데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양극화가 심화되는 형국이다. 대기업 정규직 시간당 임금을 기준(100)으로 비정규직 임금은 2013년 65.6에서 지난해 64.2로 낮아졌다. 같은 기간 중소기업 정규직은 53.8에서 52.3으로, 비정규직은 36.7에서 34.6으로 각각 떨어졌다.
청년 실업률은 2012년 이후 계속 높아져 외환위기 이후 최고 수준이다. 6월 청년 실업률은 10.2%로 전체(15~64세) 실업률 4.1%의 2.5배에 이른다.
청년층이 실제로 느끼는 취업난은 더 심하다. 실업자, 시간 관련 추가 취업 희망자, 잠재 구직자를 더한 청년층 취업애로계층은 116만명에 달한다.
정부와 재계, 노동계 모두 노동개혁이 필요하다는 공감대는 형성했다. 지난해 말 노사정이 노동시장 구조 개선 원칙과 논의 시한에 합의한 것도 이 때문이다.
문제는 구체적인 방법론이다. 노사정이 100여 차례 회의를 거쳐 합의를 시도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가장 뜨거운 감자는 임금피크제와 노동시장 유연성이다. 박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에서 이 두 가지를 노동개혁 해법으로 제시했다.
임금피크제는 근로자가 특정 연령 또는 호봉에 도달한 시점부터 임금을 삭감하는 제도다. 고령 근로자 임금을 줄여 확보한 비용으로 청년 신규 채용을 늘리는 목적이다. 정부는 앞으로 60세로 정년이 연장되는 만큼 임금피크제 도입 명분이 충분하다는 시각이다.
정부는 첫 대상으로 공공기관을 지목했다. 연내 모든 공공기관에 임금피크제를 도입할 계획이다. 도입 여부에 따라 임금인상률을 차등 적용하겠다는 경고 사격까지 했다. 경영평가에도 임금피크제 배점을 확대해 성과급 산정에 반영한다. 한마디로 임금피크제를 미루는 기관은 임금을 깎겠다는 얘기다.
공공기관을 선도적으로 움직여 민간 기업으로 확신시킨다는 게 정부 구상이다. 정부는 공공기관 임금피크제가 도입되면 앞으로 2년간 8000여개 청년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고 강조했다.
우려 목소리도 나온다. 공공기관 신규 인력 채용이 말처럼 쉽지 않다. 근로자 1명에 임금피크제를 적용해 절감한 비용만으로는 신규 인력을 채용하기 부족하다. 공공기관 총액인건비제도가 개선되지 않는 한 기성세대 양보에 따른 혜택이 그대로 청년층에게 전해지기 어렵다.
한국노총은 민간 기업은 공공기관과 달리 임금피크제로 아낀 비용을 청년고용에 쓰라고 강제할 수 없다는 문제를 제기했다. 앞서 기업 사내유보금이 증가했지만 실물투자와 고용은 오히려 감소한 전례를 들었다.
노동계는 정부가 임금피크제 명분으로 내세운 정년 60세법에도 다른 시각이다. 60세법은 생산가능 인구 감소로 인한 노동력 부족을 해결하고자 마련된 것이지 고령자 임금을 깎기 위해 도입된 제도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국회입법조사처도 지난 6월 보고서에서 “임금피크제가 고령자 고용연장과 청년 신규 고용 창출을 동시에 달성하는 마법의 열쇠는 아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임금피크제 효과가 정부 기대보다 적은 이유로 △우리나라는 근로자 67%가 정년 이전에 조기퇴직하며 △기업 간접노동비용 지출이 많아 임금피크제를 통한 노동비용 절감 정도가 작고 △임금피크제가 고령 근로자 기피 요인을 줄일 수 있지만 청년 신규고용 창출에는 다소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설명했다.
능력과 성과에 따라 채용과 임금을 결정하는 유연한 노동시장으로 전환도 쉽지 않다. 정부는 근속연수에 따라 임금이 자동으로 올라가는 현 시스템으로는 기업이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기 어렵다는 주장이다.
노동계는 자칫 해고를 정당화할 수 있다며 강력히 반발했다. 성과가 낮은 근로자 해고를 쉽게 하는 일반해고 요건 완화, 임금 등과 관련된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요건 완화는 절대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주장이다.
대통령까지 나서 노사의 대승적 결단, 기성세대 양보를 부탁했지만 현재로서는 양쪽이 수긍할만한 답을 찾기 어려운 상황이다. 무리한 일괄 타결을 추진하기보다는 작지만 현실적으로 가능한 해결책을 하나씩 타결하는 것이 유일한 해법으로 여겨진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는 것도 방법이다. 노동시장 악화는 무엇보다 경제 성장이 둔화된 탓이 크다. 국내 GDP 성장률은 1980년대 9%대에서 1990년대 들어 6%대로 낮아졌다. 2000년대 4%대로 떨어진 후 올해는 3% 선마저 장담하기 힘들다. 저성장 기조가 지속되니 일자리 사정이 나빠질 수밖에 없다.
국내 경제·산업 구조 변화로 성장과 고용 간 연계가 약화된 것도 이유다. 기업이 성장해도 예전만큼 신규 인력을 뽑지 않는다. 서비스산업이 발전해 간극을 메워야 하지만 지지부진하다.
노동개혁을 시도하되 노동시장 선순환 발전 구조를 뒷받침하는 경제 활성화 노력에 더 많은 힘을 쏟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호준기자 newlevel@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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