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투롤 장비 분야에서 국내 1위를 넘어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을 꿈꾸는 기업이 있다. 경상북도 구미공단에 자리 잡은 피엔티(PNT·대표 김준섭) 이야기다. 코스닥에 상장한 2012년 매출액 547억원을 기록한 피엔티는 폭발적인 성장에 힘입어 지난해에는 창사 이후 처음으로 1000억원을 넘어섰다. 영업이익률도 10%에 근접했다. 디스플레이 광학필름·연성회로기판(FPCB)·적층세라믹콘덴서(MLCC) 등 롤투롤 장비 수요처도 점차 늘고 있어 올해도 높은 성장세를 이어갈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올해는 중국 공장 완공을 앞두고 있어 명실상부한 글로벌 기업 대열에 들어설 전망이다.
◇세계 최초·국내 최초로 개발
피엔티가 개발한 장비에는 세계 최초, 국내 최초라는 수식어가 유난히 많이 붙어 있다. 지금까지 피엔티가 선보인 이차전지 광폭 프레스 장비, 롤투롤 스크린 인쇄기, 형광체(Phosphor) 필름 부착 장비(FAM:Film Attach Machine), VCM 카메라 모듈 인라인 조립장비는 세계 최초로 개발한 장비다. 분리막코팅장비, 복합시트장비, 프리즘&확산시트 코팅장비는 국내 최초로 개발한 장비다.
롤투롤 장비 기술은 국내 1위를 넘어 글로벌 기업을 넘보는 수준에 올라섰다. 경쟁력은 ‘사람과 기술’에서 나온다. 김준섭 대표가 회사명을 ‘사람(People)’과 ‘기술(Technology)’을 의미하는 피엔티로 지은 이유기도 하다. 230명에 이르는 직원 가운데 80%가 기술직이다. 관리·자금 부서 외에는 모두 기술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 대표의 독특한 인재론도 한몫했다. 김 대표는 “좋은 인재는 좋은 대학을 나온 인재가 아니라 적성에 맞으면서 오랫동안 좋은 기술을 습득한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타고난 두뇌도 중요하지만 끊임없이 자료를 수집하고 적응해 좋은 기술을 습득해야 좋은 인재라는 것이다. 해마다 10~15명씩 채용하는데 2년 정도 견뎌내면 적성에 맞는지 판가름 나고 고급 엔지니어로 성장할 수 있다는 게 김 대표의 지론이다.
피엔티는 창사 이래 매년 50억원 이상을 연구개발(R&D)에 투자했다. 매출액이 늘어나면서 R&D투자 비중이 다소 줄어들긴 했지만 매년 5~10%를 신기술 개발에 쏟아붓고 있다. R&D 투자를 지속함에 따라 지식재산권(IP)도 늘어났다. 특허는 이차전지와 디스플레이용 롤투롤장비를 중심으로 출원했다. 등록을 마친 특허가 30여건에 이르고 국제 특허를 포함한 60여건을 출원 중이다.
◇중국 공장을 글로벌 롤투롤 장비 기업 전진기지로
피엔티는 이르면 이달 안에 중국 시안 현지법인 ‘인과기계설비(시안)유한공사’ 공장을 완공할 예정이다. 지난해 설립한 현지법인에 공장 건설을 포함해 200억원가량을 투자했다. 공장용지는 국내 제2공장 네 배인 3만평이며 건평은 1만5000평에 이른다. 시안 공장에서는 롤투롤 장비뿐만 아니라 장비에 들어가는 부품도 직접 생산한다. 품질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사실 피엔티가 중국 공장에 투자를 결정하기까지 3년 걸렸다. 중국이라는 미지의 세계에 뛰어들기에는 위험부담이 컸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국내 시장만으로는 글로벌기업으로 성장하는 데 한계가 있었고 마침 중국 정부가 대기업과 함께 입찰을 붙이기에 계약서에 서명했다”고 밝혔다. 국내는 장비 가격경쟁이 치열한데다 해외에서도 중국 경쟁사와 경쟁하려면 중국 공장이 답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때마침 중국 롤투롤 장비 시장은 폭발적으로 성장 중이다. 디스플레이·이차전지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이차전지 생산업체만 200곳에 이르고 후발업체도 매출액이 1000억~2000억원에 이를 정도로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중국 정부가 환경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차전지 산업을 장려하고 에너지 저감 산업에 특혜를 많이 주면서 전기자동차용 이차전지 붐이 일고 있다.
김 대표는 “현지법인이 장비 생산을 시작하면 전체 매출의 40%를 차지할 것”이라며 “중국에서도 100년 이상 가는 기업을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포부를 밝혔다.
◇발로 뛰는 CEO
김 대표는 대기업 설비팀장 출신 엔지니어지만 회사 연구소에서 개발에만 매달리지 않는다. 최근엔 기술개발 못지않게 영업에 비중을 두고 있다. 틈나는 대로 신문·잡지에서 최신 기술동향을 수집해 제품 개발과 사업전략에 반영하고 나머지 시간은 밖에서 보낸다.
“회사에 가만히 앉아 있으면 불안합니다. 일단 나가야 마음이 편합니다. 일중독이라고 하지만 그게 낙입니다. 대표이사가 발로 뛰는 게 회사에 +α가 되기 때문이죠.”
영업과 정보수집을 위한 김 대표의 차량 이동거리는 연평균 8만~9만㎞에 이른다. 3년이면 이동거리가 30만㎞에 육박해 자동차를 바꿔 타야 할 정도다.
해외 영업도 빼놓을 수 없다. 최근엔 한 달에 두 세 차례는 비행기를 타고 해외영업을 다닌다. 글로벌 롤투롤 장비 기업으로 우뚝 서려면 해외 시장 개척이 필수기 때문이다.
피엔티는 일반포장용 롤투롤 장비로 시작해 LCD와 이차전지용으로 사업 범위를 넓혔고 반도체와 도금 롤투롤 장비 시장에 뛰어들었다. 장비산업은 산업 경기 영향을 받기 때문에 기복이 심한 편이지만 피엔티는 꾸준한 투자로 포트폴리오를 갖춰 위험요소를 최소화했다.
지난 6월엔 국책연구과제인 ‘5미크론급 미세패턴 롤투롤 연속 패터닝 장비 개발 사업’ 주관기관으로 선정돼 개발에 착수했다.
과제는 사물인터넷(IoT)을 구현하는 스마트 센서나 웨어러블 소자 같은 유연전자소자를 저렴하게 생산하는 롤투롤 연속 인쇄시스템이다. 정밀 미세패턴과 고중첩 정밀도 성능을 만족해야 하는 게 생명이다. 유연전자소자는 유연디스플레이나 유연태양전지는 물론이고 웨어러블 스마트 디바이스와 IoT 실현을 위한 다양한 스마트 센서 제품을 포함한다.
최종 목표는 유연전자소자 핵심 요소인 유연기관 전자회로 금속배선을 직접 형성할 수 있는 정밀 미세패턴(5미크론 이하), 다층 회로 구성을 위한 고중첩정밀도(±10미크론) 성능을 만족하는 롤투롤 연속·다층 정밀 인쇄시스템 기술 개발이다.
롤투롤 양산 장비 국내 1위 기업 피엔티가 주관기관을 맡고 미세 패턴 리버스 오프셋 관련 장비와 핵심요소·공정기술을 확보한 기계연구원이 참여한다. 다양한 형태의 롤투롤 정밀 이송제어 기술을 확보한 LG전자 생산기술원, 미세패턴 리페어 원천기술을 보유한 생산기술연구원이 합류했다. 여기에 다양한 기술력과 노하우를 가진 제주대·창원대·대구경북과학기술원·순천대 등이 가세해 산학연 협력 체제를 구축한 것이 특징이다.
기술 개발을 완료하면 2019년부터 상용화에 착수해 2021년에는 기계연구원이나 생산기술연구원이 기술을 이전해 2022년부터는 양산 장비를 본격적으로 공급할 계획이다.
김준섭 대표는 “올해부터 4년에 걸쳐 수행하는 이 프로젝트를 완료하면 또 다른 산업혁명을 일으킬 양산설비 기술을 확보하게 된다”며 “5년 후면 피엔티 매출 절반가량을 이 장비로 벌어들일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CSP LED칩 테이핑 장비는 CSP(Chip Scale Package) LED칩을 캐리어 테이프에 고속으로 테이핑해 표면실장기술(SMT) 장비로 작업할 수 있게 하는 장비다. 칩을 BIN 플레이트나 웨이퍼링 형태로 적재한 후 장비에 장착하면 한 장씩 자동으로 웨이퍼 스테이지에 올리고 개별 칩을 하나씩 집어 캐리어 테이프에 삽입한다. 칩을 삽입한 후에는 커버 테이프로 마감한 후 릴로 감는다.
디스플레이에 빛을 비춰주는 백라이트유닛이나 조명 생산에 사용한다.
이 장비는 생산관리시스템(MES) 및 매핑 기능 등 생산정보 관리 기능을 기본 탑재했고 웨이퍼 자동 전환 기능과 작업 완료한 캐리어 테이프 자동 커팅 기능도 있다. 칩 하나를 테이핑하는 시간은 0.27초 수준이고 시간당 생산개수는 1만3000개 이상이다.
피엔티 관계자는 “이 장비는 칩을 테이핑할 때 충격이나 스크래치 같은 불량이 발생하지 않아 경쟁 제품보다 품질 안정성이 뛰어나고 불량 제품을 원천 차단하는 기능을 적용했다”고 설명했다.
피엔티는 이 테이핑 장비를 제1 공장에서 연간 150대 규모로 생산해서 공급한다.
<피엔티 연혁>
구미=주문정기자 mjjo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