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덕이 만난 생각의 리더]<27>웹툰 세계화에 나선 오재록 한국만화영상진흥원장

오재록 원장은 “인터넷강국을 기반으로 세계 1위에 오른 한국 웹툰을 세계화하는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사진=박지호기자 jihopress@etnews.com
오재록 원장은 “인터넷강국을 기반으로 세계 1위에 오른 한국 웹툰을 세계화하는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사진=박지호기자 jihopress@etnews.com

만화는 시대의 거울이다. 광복 70주년을 맞아 8월 15일 오후 제18회 부천국제만화축제가 열리는 한국만화박물관에서 오재록 한국만화영상진흥원장을 만났다.

만화박물관 주변은 몰려든 사람들로 시골 장터를 방불하게 했다. 전국에서 몰린 코스튬 플레이어들이 시대를 초월한 만화 주인공으로 분장해 관람객의 시선을 끈다. 마치 동화나라로 추억여행을 온 듯했다. 박물관안 2층 만화열람실과 복도는 만화삼매경에 빠진 사람들로 꽉 차 지나가기조차 어려웠다.

축제를 주관한 오 원장은 “만화가 300명이 입주한 영상진흥원은 창조경제의 산실”이라며 “인터넷강국을 기반으로 세계 1위에 오른 한국 웹툰의 세계화에 적극 나서겠다”고 말했다. 그는 “만화를 창조경제 핵심 산업으로 육성하기 위해 불공정관행 근절과 지식재산권 보호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오 원장은 성균관대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노무현정부 시절 청와대 행정관으로 4년 6개월을 근무했다. 이어 한국만화영상진흥원 본부장을 거쳐 원장으로 일했다. 지난 7월 연임에 성공했다. 그는 국제만화가대회 사무국장도 겸하고 있다.

-반응이 어떤가.

▲기대 이상이다. 아침 10시 축제 개장인데 아침 7시 40분에 와서 기다리는 열성파도 있다. 인기작가의 사인회가 있는데 사인을 받기 위해 일찍 온 것이다.

-몇 명의 작가가 사인회를 하나.

▲‘미생’으로 유명한 윤태호 작가와 ‘냄새를 보는 소녀’ 만취 작가, 만화축제홍보 대사였던 김풍 작가, ‘키친’의 조주희 작가를 포함해 5일간 20명이 사인회를 한다. 작가 한 사람이 70명에게만 사인을 해주기 때문에 늦게 오면 사인을 받을 수 없다.

-부천 국제만화축제의 주요 내용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만화문화 확산이다. 다른 하나는 만화의 산업적 기반을 확충하는 일이다. 이를 위해 기획전시, 참여, 마켓, 학술 행사를 마련했다. 부천만화대상 작품인 ‘짐승의 시간’과 핀란드 작품 ‘무민70 시계태엽을 감다’와 ‘수짱 시리즈’ 같은 미공개 원화도 전시했다.

-올해 축제 주제인 ‘만화 70+30’은 어떤 의미인가.

▲광복 70주년을 맞아 지난 70년 삶에서 위안부 할머니와 6·25전쟁, 산업화, 도시화 같은 격동의 세월을 되돌아보고 앞으로 30년 삶을 조명해 보자는 의미를 담았다. 아이들에게 만화를 통해 역사와 미래를 이야기하고자 했다.

-해외에서 몇 개국이 참가했나.

▲일본과 체코, 핀란드를 비롯해 20여개국에서 만화가 300여명이 참석했다. 중국이 만화에 대한 관심이 높다. 이번에 중국 옌타이시와 웨이하이시, 광저우 세 곳에서 문화사절단 30여명이 와서 영상진흥원과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옌타이시는 한중 만화영상체험관을 12월까지 조성하기로 했다. 예산은 옌타이시가 부담하는데 중국진출의 교두보를 마련했다고 본다.

-올해 역점사업은.

▲웹툰 세계화 교두보를 마련하겠다. 이를 위해 해외 문화교류를 확대하고 아리랑이나 태권 같은 한국고유 브랜드도 널리 소개하겠다. 한국의 문화파워를 강화하는 일이다.

-왜 웹툰인가.

▲웹툰은 한국이 세계 1위다. 인터넷 기반 덕분에 한국이 웹툰을 처음 시작했다. 하루 접속클릭수가 1000만에 달한다. 웹툰 작가는 2000여명이다. 웹툰 시장 규모는 2018년이면 1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한다. 내가 윤태호 작가를 만나려면 한 달 전에 약속을 해야 한다. 그만큼 귀한 몸이고 바쁘다. 웹툰 플랫폼 업체만 40여개다.

-요즘 인기 웹툰은 무엇인가.

▲비정규직 문제를 다른 ‘송곳’이란 웹툰이 인기다. 최규석 작가 작품인데 모 방송사가 드라마로 제작하기로 결정한 상태다. 다른 웹툰도 영화로 제작한다.

-문화재로 등록한 만화가 있나.

▲넉 점이다. 1946년 나온 ‘토끼와 원숭이’인데 최초의 만화본이다. 1권이 경매시장에 나왔기에 진흥원 예산으로 1700만원에 구입했다. 다음은 최고 인기 만화로 김종래 작가의 ‘엄마 찾아 3만리’다. 김 작가의 가족이 원본을 기증했다. 김성환 작가의 ‘고바우 영감’과 김용환 작가의 ‘코주부 삼국지’가 문화재로 등록됐다.

-국제만화축제를 세계축제로 발전시키기 위한 구상은.

▲지난해는 해외전시를 한 개만 했다. 올해는 네 개로 늘렸다. 앞으로 각국 전시회를 특화할 방침이다. 이를테면 중국만화특별전, 미국만화특별전이다. 오는 9월에 알제리에서 국제만화축제가 열린다. 이곳에서 위안부 할머니를 다룬 만화를 소개하고 웹툰 특별전도 열 예정이다.

-만화박물관이 보유한 만화책은.

▲26만권이다.

-만화박물관은 유료인가.

▲올해부터 유료화했다. 그동안은 무료였다. 만화도 돈을 내고 즐겨야 하는 창작물이라는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서다. 입장료는 5000원이다. 특별전시전은 2000원이다.

-입장객은 얼마나 되나.

▲연간 28만명에 달했다. 올해는 유료화해서 어떤 영향이 있을지 모르겠다(축제는 8월 12일부터 16일까지 열렸다. 주최 측은 축제기간에 13만여명이 관람한 것으로 집계했다).

-입주한 만화가는 몇 명이나 되나.

▲작가만 300명이다. 애니메이션과 출판사 매니저먼트 회사도 입주해 있다. 이들을 포함하면 500명 정도다. 만화는 창의력과 아이디어로 부를 창출할 수 있는 창조경제의 핵심이다.

-입주비는 무료인가.

▲임대료를 받는데 저렴하다. 입주자의 말을 빌리면 홍익대 주변에 비해 5분의 1 정도라고 한다. 입주 경쟁률이 높다. 지방에서 상경해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도 있다.

-대상을 받은 윤태호 작가의 ‘인천상륙작전’은 어떤 작품인가.

▲광복에서부터 6·25전쟁에 이르기까지 한국 근현대사를 통해 우리 사회 갈등의 근원을 찾아보려는 작품이다.

-국내 만화시장 규모는.

▲현재 1조원 규모로 본다. 만화출판만 7000억원이다. 아직 정확한 통계는 없다. 만화산업 범위를 어떻게 정하는지가 학계 이슈다.

-국내 만화가는 몇 명이나 되나.

▲현재 2500명 정도로 본다. 만화가와 웹툰 작가를 겸하는 이가 다수다.

-저작권 보호와 불공정거래에 어떻게 대응하나.

▲한국만화가협회와 표준계약서를 마련해 시행토록 했다. 만화가는 1인 창조기업이다. 자칫하면 2차 저작권을 통째로 넘기는 구조적인 취약점을 안고 있다. 진흥원에 헬프데스크를 설치했다. 저작권 전문변호사 네 명과 계약을 맺어 만화가들이 계약할 때 사전에 상담을 하도록 했다. 세무나 회계 질문도 받는다. 불공정거래를 크게 줄일 수 있다고 본다.

-코스튬 플레이어들이 많던데.

▲이들에게 고맙게 생각한다. 진흥원에서 해주는 건 무료 입장뿐이다. 만화 속 등장인물로 분장하는데 닷새간 3000여명이 자발적으로 참여했다. 경남 창원에서 온 사람은 찜질방에서 자면서 활동했다. 학사장교로 훈련 중인 대학생은 광복군 장교복장으로 태극기를 들고 광복 70주년을 빛나게 했다.

-전국에 만화인력 양성을 위한 학과는 몇 개인가.

▲만화와 애니메이션 관련 학과는 전국에 20여개다.

-만화가를 꿈꾸는 청소년이 늘어났나.

▲과거에는 아이가 만화가가 되고 싶다고 하면 부모가 극구 말렸다. 지금은 정반대다. 서울 강남에 만화학원까지 등장했다. 얼마 전만 해도 아들이 만화학과에 실기시험을 보러 가면 버스타고 가라고 했는데 요즘은 부모가 자가용으로 데려다 준다고 한다. 그만큼 만화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다. 경기예고에 만화창작과가 있는데 경쟁률이 3.8 대 1이다. 해마다 여름이면 진흥원에서 만화아카데미를 연다. 모집 인원이 40명인데 경쟁이 치열하다.

-평소 만화책을 좋아하나.

▲어릴 적부터 만화책을 즐겨 읽었다. 부모님이 문구점을 운영하셨는데 ‘새소년’ ‘어깨동무’ ‘소년중앙’ 같은 월간지도 판매했다. 만화를 잘 그리지는 못했지만 엄청 좋아한다.

-좌우명과 취미는.

좌우명은 ‘모든 건 지나가리다’다. 텃밭 가꾸기가 취미다. 부천시가 분양한 네 평가량의 텃밭에 가지와 쌈채소, 감자, 토란을 심었다.

박물관 앞에서 고교생 코스튬 플레이어를 만났다. 검정색 교복에 고(高) 배지를 단 모자를 쓴 게 영락없는 과거 우리 모습이었다. 이제는 되돌아갈 수 없는 꿈 많고 어리던 고교 시절을 회상하며 박물관을 나섰다.

이현덕대기자 hd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