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우울제는 삶의 고민을 약으로 거뜬히 해결할 수 있다고 우리 귀에 속삭인다. 달콤하게 들린다. 많이 쓰는 항우울제의 정식 명칭은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이다. 신경전달물질 중 하나인 세로토닌이 뇌 속에 부족하면 우울증이 생긴다는, 우울증을 뇌의 생화학적 변화로 보는 이론은 설득력이 있다. 항우울제는 신경전달물질의 뇌 속 함량을 증가시켜 우울 증상을 호전시킨다.
항우울제를 복용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시장 규모도 엄청나게 커졌다. 다국적 제약회사들은 화학적 구조를 약간씩 비틀어서 만든 비슷한 약을 끊임없이 시장에 투입하고 있다. 하지만 우울증을 근본적으로 치료하려면 항우울제 복용과 정신치료psychotherapy를 병행해야 한다. 항우울제가 뇌에서 부족해진 세로토닌을 올려줄 수는 있지만 마음속 갈등을 해결해주지는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아기를 낳고 나서 우울증에 빠진 산모가 있다고 치자. 정신과 의사가 항우울제만 처방하고 보름 뒤에 다시 오라고 한다면 그녀가 임신, 출산, 양육으로 겪는 심리적인 상태는 뒷전으로 밀린다. 항우울제가 우울증의 증상을 다소 호전시킬 수는 있겠지만 그녀가 험한 세상에 벌거벗은 아이를 내놓은 것에 대한 끔찍한 두려움과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다면? 그 마음을 정신치료를 통해 다루지 않으면 우울의 고통에서 그녀를 건져낼 수 없을 것이다. 신경전달물질 부족과 신경세포의 기능 저하만으로 정신질환을 설명하는 이론은 정신과 의사인 내게도 미흡하고 불편하다. 우울증이 뇌의 생화학적 균형이 깨진 상태라는 주장이 정신질환에대한 사회적 편견을 덜어내는 데는 도움이 되겠지만 그것으로 우울증의 전부를 설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지금의 나는 내가 살아온 시간의 결과물이다. 지금 내가 겪고 있는 고통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신경세포에 작용하는 약물 외에도 내가 살아온 삶에 스스로 귀 기울이는 노력이 필요하다. 때로는 적극적으로 정신과 의사를 찾아 꾸준히 정신치료도 받아야 한다. 약이 증상을 크게 완화시킬 수는 있지만 마음의 움직임을 어찌 약으로만 다스릴 수 있겠는가.
예전에 한 잔의 설탕물이나 꿀물로 달래곤 했던 허기진 마음을 사람들은 병원에서 처방받은 항우울제나 항불안제로 달래려고 한다.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은 삶에 대한 성찰을 통해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여유를 우리에게서 빼앗아버렸다. 진료의 내용과 깊이까지도 의료보험제도가 친절하게(?) 정해주는 제도의 모순 속에서 환자의 삶에 대한 논의는 진료 현장에서 점점 모습을 감추어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면서 ‘빨리빨리’ 달려가고 있다. 그러면서 시간을 내야 하고 돈을 더 써야 하는 깊이 있는 치료는 외면당하기 쉽다. 서서히 고칠 수밖에 없는 문제를 빨리 고쳐야 한다고 이 병원 저 병원을 옮겨 다니는 환자들을 보면,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지 못하고 과자 조각으로 끼니를 때우는 것 같아 매우 안타깝다.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정신분석학자 정도언]
-정신과 전문의, 수면의학 전문의. 프로이트 학파 정신분석가(교육 및 지도 분석가).
-국제정신분석학회 산하 한국정신분석연구학회 회장.
-서울대학교의과대학과 서울대학교병원에서 교수로 재직 중.
-저서로는 `프로이트 레시피(웅진리빙하우스, 2015.04)`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