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이 고위급 접촉으로 정국 전환 계기를 마련했지만 아직 갈길이 멀다. 근본적 해결책을 만들지 못하면 언제든 남북 간 갈등이 다시 고조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남북은 지난 22일 김관진 국가안보실장, 홍용표 통일부 장관과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 김양건 노동당 비서가 참석한 1차 고위당국자 회의에 이어 23일 오후 2차 회의를 재개했다. 첫 회의는 자정을 넘겨 다음날 새벽까지 무박 2일에 걸쳐 진행했지만 결론을 내지 못했다. 2차 회의는 23일 오후 3시 30부터 열려 밤 늦게까지 진행됐다.
양측의 만남으로 최악 상황을 면했다는 점에서는 일단 긍정적이라는 평가다. 당초 북한은 우리 정부에 22일 오후 5시까지 대북 확성기 방송을 중단하지 않으면 군사 행동에 나서겠다고 통보했다. 북한은 앞서 포탄 사격을 했다는 합동참모본부 발표에 대해서도 “전혀 무근거한 거짓이고 날조”라며 전면 부인했다.
양측 긴장감이 최고조에 이른 상황에서 대화를 통한 해결 경로가 마련된 만큼 향후 남북 긴장완화에 긍정적인 전환점이 마련될 것이라는 기대섞인 목소리가 나왔다.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이 1차 회의 정회 직후 “최근 조성된 사태 해결 방안과 앞으로 남북관계 발전 방안을 폭넓게 협의했다”고 밝힌 대로 현 사태뿐 아니라 이산가족 상봉 재개, 대북제재 조치 해제, 경제협력 강화 등에서도 진전된 결과 도출이 가능하지 않겠냐는 것이다.
우려 목소리도 적지 않다. 10시간가량 마라톤 협상으로 진행된 1차 회의에서 뚜렷한 결과를 얻지 못할 만큼 양측의 인식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극한대결로 치닫던 남북이 접촉했지만 일단 현 위기 국면을 넘기는 단순 수습 차원에 머물 것이라는 지적이다. 이렇게 되면 향후 언제 어떤 상황에서 또 다시 유사한 충돌과 대립이 재현될지 모른다. 리스크 요인이 남아있는 한 이산가족 상봉 재개, 남북 경협 강화 등을 적극 추진하기는 어렵다.
자연스레 기대 수준을 낮추고 합리적인 대화 경로를 유지하는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일시에 모든 것을 해결하기보다는 가능한 것부터 하나씩 단계적으로 합의점을 찾아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고위급 접촉을 계기로 우선 군사적 긴장을 완화한 후 추가 대화로 남북 관계 전반에 걸쳐 협력 확대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유사한 사태가 벌어질 때마다 문제점으로 제기된 재발 방지 방안은 오랜 숙제로 남을 전망이다. 우리 정부와 국제사회는 과거에도 북측에 군사적 도발을 포함한 재발 방지를 강하게 요청했으나 잊을만하면 긴장감을 유발하는 일이 반복됐다. 이번 사태처럼 북측이 도발 자체를 극구 부인하는 상황에서는 공식 사과와 재발 방지 약속이 의미를 가질 수 없다.
정부는 남북 고위급 접촉을 진행한 주말 내내 비상체제를 유지했다. 기획재정부는 22일 오후 서울 광화문 정부서울청사에서 최경환 경제부총리 주재로 긴급 간부회의를 소집했다. 기재부는 지난 21일 긴급 거시경제금융회의 이후 관계기관 합동 상황점검반을 가동 중이다.
기재부는 금융·실물 시장 모니터링을 강화하면서 남북 관계 시나리오별 대응 계획을 논의했다. 시장불안 확산, 투자심리 위축 등 과도한 부정적 상황에는 선제 대응할 방침이다.
군 역시 남북 고위급 접촉 중에도 만반의 대비 태세를 유지했다. 군은 여러 곳에서 동시다발적 교전이 벌어지는 최악의 상황까지 감안해 경계를 강화했다. 최전방 11개 지역 대북 확성기 방송시설도 가동을 이어갔다.
이호준기자 newlevel@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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