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대중국 전략 필요
중국 기업 성장세는 스마트폰 분야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중국 시장에서 지난해 1분기 압도적 1위를 차지했던 삼성전자는 지난 2분기 5위로 내려앉았다. 샤오미, 화웨이는 물론이고 비보 같은 신생업체에도 추월당했다. LG전자는 10위권 내에도 들지 못했다.
지금까지 중국 스마트폰 제조사 급성장 요인은 가격경쟁력으로만 치부됐다. 하지만 최근 출시되는 중국 스마트폰은 국내 프리미엄 제품과 맞먹는 성능과 가격경쟁력으로 무장하고 있다. 중국 시장점유율 1위 샤오미는 제한된 시간에 제한된 제품을 파는 헝거마케팅, 주문자생산방식(OEM)과 온라인 소비자 직접 판매를 통한 원가절감으로 고객을 늘리고 있다.
결국 국내 제조사는 중국 제조사의 마케팅 전략과 시장 소비 패턴 변화를 읽는 데 실패했다. 삼성전자가 지난해부터 대형 유통망 위주 전략을 소규모 판매점, 온라인 강화로 손질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처럼 중국 현지기업과 협력해온 대형 유통망을 삼성전자가 직접 관할하면서 현지 유통 파워가 일시적으로 약해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새로운 협력 비즈니스 전략을 짜야 한다는 목소리가 제기되는 이유다.
스마트폰뿐만 아니다. 통신 분야 전반에 걸쳐 중국과 협력을 비롯해 새로운 대중국 전략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협력 여건은 조성됐다
한국과 중국은 지난해 11월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한중 정상회담에서 양국 FTA 협상이 실질적으로 타결됐다고 공식 선언했다. 양국은 협정문 제10장에서 통신 서비스 무역에 대한 포괄적 내용을 규정했다.
통신 분야에서 독립챕터 형태의 통신 서비스 협정문을 채택한 것은 중국 FTA 사상 최초다. 통신은 국가 기간망이기 때문에 그동안 중국은 통신 분야에 엄격한 잣대를 규정해왔다. 업계는 이번 협정문 채택으로 중국 내 통신규제 관련 무역장벽이 완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양국은 상대국 사업자가 서비스를 공급할 때 합리적이고 비차별적으로 공중통신 망과 서비스에 접근하고 이용하도록 보장하는 데 합의했다. 규제는 각국 통신규제 기관의 결정 근거 등을 신속하게 공개하도록 해 그동안의 통신규제(관시) 투명성과 예측가능성이 증대될 전망이다.
협력 분야에서 양국은 과학기술과 ICT 분야 공동연구와 전문가 교류 활성화에 협력을 약속했다. 5세대(5G) 이동통신 등 양국 통신기술 교류 활성화 기반이 조성됐다.
FTA뿐만이 아니다. 한국은 중국 주도 아시아 인프라 투자은행(AIIB) 창립회원국 참여를 신청했다. AIIB는 아시아 저개발 국가 인프라를 조성하는 자금을 모으는 투자은행이다. 기존 미국과 일본 중심 아시아개발은행(ADB) 등 국제금융기구에 대응하기 위한 조직이다. 우리나라와 중국 간 경제협력이 한층 강화될 전망이다. AIIB 내 한국 지분율은 3.81%로 전 회원국 중 5위다.
◇5G 중심 협력 분야 늘어
한중 FTA와 AIIB 참여 등으로 양국 간 경제협력 분위기가 무르익으면서 통신 분야 협력도 급물살을 탈 전망이다. 5G 시대 개막에 앞서 통신 서비스와 통신 장비 분야에서 활발할 교류가 예상된다.
5G는 어느 한 단체나 국가가 독자적으로 개발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니다. 이미 노키아, 에릭슨을 비롯해 글로벌 통신장비, 이통사 간 협력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화웨이 등 중국 장비업체는 2G와 3G 시대를 거쳐 LTE 시대로 접어들면서 서서히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했다. 5G 시대 주도권을 잡기 위해 연구개발(R&D) 투자규모를 늘리고 있다.
현재 두 나라 이통·장비업체가 주로 협력하는 분야도 5G R&D 분야다. LG유플러스는 지난해 7월 화웨이와 모바일혁신센터(MIC)를 설립, 협력 관계를 공고히 하고 있다. KT는 화웨이, ZTE를 포함한 6개 장비업체와 5G R&D센터를 구축해 테스트를 시작했다. KT는 지난 4월 화웨이와 다중안테나(매시브 미모) 실외 시연을 세계 최초로 시연하기도 했다.
향후엔 단순한 R&D 협력을 뛰어넘어 공동 개발 후 해외진출 등 실질적인 움직임이 이어질 전망이다. ZTE는 국내 중소 장비업체와 제품을 개발해 제3국에 수출하는 협력 방식을 택했다. ZTE 글로벌 영업력과 국내 기술력이 만나 시너지를 발휘할 것으로 기대된다.
통신과 통신 간 협력 외에도 다른 산업과 협력도 늘고 있다. 핀테크가 대표적이다. LG유플러스와 KT는 국내 카드사, 중국 유니온페이와 손잡고 모바일 결제 서비스를 출시했다. 국내 중국 관광객 서비스는 물론이고 중국 모바일 결제 시장 진출을 위한 기반을 마련했다.
◇골든타임 얼마 안 남아
중국은 그동안 자국 ICT 기업 육성과 시장 보호를 위해 다양한 규제를 시행해왔다. 여전히 외국 기업에 대한 다양한 규제는 위협으로 작용하고 있다. 중국 특유의 관계 문화를 일컫는 ‘관시’로 인해 중국 진출이나 중국 기업과 협력에 어려움을 호소하는 업체가 많았다. 중국 ‘보안 리스크’나 여전히 중국 제품을 ‘저품질’로 인식하는 시각은 중국과 협력 걸림돌이다.
하지만 ICT 분야에 대한 중국 투자와 발전상을 감안하면 중국과 협력할 기회를 잡을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국내 기업이 중국 기업보다 조금이라도 차별화된 역량을 가지고 있을 때가 아니면 향후 그들과 협력은 더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컨설팅 업체로 중국에서 활발한 사업을 추진하는 이화식 엔코아 대표는 “다윗이 골리앗을 이길 수 있었던 것은 골리앗에는 없는 민첩성이 있었던 덕분인데 골리앗이 민첩성마저 확보하면 상대가 될 수 없다”며 “우리가 아직 이점을 갖고 있을 때 중국 업체와 협력해 글로벌을 공략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그는 이를 위해서 중국의 배타적 정책인 ‘죽의 장막’을 뛰어넘을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는 게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경쟁보다는 그들의 어깨에 올라타는 전략을 취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KT 경제경영연구소는 최근 발표한 ‘ICT 인 차이나’ 보고서에서 “올해는 중국 ICT 산업이 LTE의 급격한 확산과 콘텐츠 소비 빅뱅을 바탕으로 비약적 성장을 기록하고 양국 간 FTA 시대가 열리는 중요한 시점”이라며 “글로벌로 진출하는 중국에 핵심 부품이나 솔루션을 공급해 경제적인 실익을 확보하는 ‘가마우지 전략’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안호천기자 hca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