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표준 선점’ 글로벌 전력산업 제패 열쇠

[월요논단]‘표준 선점’ 글로벌 전력산업 제패 열쇠

다음 달이면 우리나라가 국제표준화기구(ISO)에 가입한 지 52년 만에 처음 ‘ISO 총회’를 서울에서 개최한다. 이번 ISO 서울총회는 국제 표준화 분야에서 한국의 위상을 높이는 동시에 표준의 중요성을 재환기시키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표준화’라는 개념이 일반인에게는 다소 추상적으로 느껴질 수 있지만 교통카드, A4 용지 심지어 와인잔까지 ‘표준’이 있을 정도로 표준은 우리들의 삶 구석구석에 자리 잡고 있다.

최근 표준 분야에서 가장 많은 변화의 바람이 분 곳 중 하나가 바로 국제전기전자위원회(IEC)다. 전력 산업의 표준은 지난 100년간 변화가 없었다. ‘전력’은 여느 산업과는 달리 국가 인프라라는 특수한 분야기 때문에 최대한 보수적인 측면에서 표준에 접근할 수밖에 없는 특수성을 지닌다. 하지만 ‘스마트그리드’시대가 본격화되면서 IEC는 지금과는 다른, 새로운 방식의 표준접근체계를 만들어내고 있다. 그것은 바로 ‘표준의 시스템적 접근’이다.

기존 방식은 단순히 특정기술 분야의 제품 위주로 표준을 개발하는 것이었지만, 다양한 산업과 기술의 융합 그리고 전기와 통신이 융합된 스마트그리드는 이 같은 표준개발 방식으로는 해결이 불가능했다. 이 때문에 국제적으로 스마트그리드 시스템에서 활용가능한 표준을 분석하는 동시에 필요한 표준을 확인하기 위해 ‘스마트그리드 개념 모델’을 설계하고 있다. 이를 통해 다양한 시스템으로 구성돼 있는 스마트그리드 시스템이 상호운용성(Interoperability)을 만족해 ‘플러그 앤드 플레이(plug & play)’ 방식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표준을 개발해 나가고 있다.

우리나라도 국제적 트렌드에 발맞춰 표준화된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약 4년에 걸쳐 스마트그리드 국가표준 코디네이터 제도 등을 운용하며 체계적으로 스마트그리드 표준 개발을 추진해 현재 6종의 국제표준 개발을 주도하고 있다. 지난 10년을 돌아봤을 때 괄목할 만한 성과지만, 표준에 대한 인식과 관련 전문가는 여전히 부족해 표준화에 좀더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는 어두운 현실 역시 상존한다.

우리나라 에너지 분야 R&D와 에너지신산업은 ‘비즈니스 모델 창출을 통한 해외 수출시장 확대’라는 확고한 공통 목표를 가지고 있다. 이 같은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국제표준 기반의 비즈니스 모델’을 만드는 것이 필수다. 좋은 기술과 서비스로 레퍼런스를 확보했다고 하더라도 국제 표준에 부합되지 않으면 갈라파고스제도와 같은, 우리만 사용하는 ‘동네 기술’ 정도로만 남게 될 것이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자료에 따르면 표준과 기술규제가 무역에 미치는 영향은 80%에 달한다고 한다. 가장 큰 수출입국인 중국은 표준기술규제 파급효과가 8637억달러에 이른다. 무역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가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표준을 더욱 효율적으로,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선제적 표준 선점은 곧 세계 시장 경쟁 우위 확보의 열쇠다. 전 세계 에너지 분야 선두 기업이 앞다퉈 국제표준화 회의에 모이는 이유 역시 다르지 않다.

불과 십수년 전만 해도 글로벌 시장에서 주목을 끌지 못했던 LG·삼성 전자제품이 극적으로 반전한 계기는 바로 ‘디지털’이었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전환되는 트렌드 변화에 발 빠르게 대응하며 ‘글로벌 톱’ 지위를 차지할 기회를 잡은 것이다. 지금 스마트그리드로 인해 100여년 만에 불어온 글로벌 전력산업계 표준 변화 바람은 우리나라가 ‘팔로어(follower)’에서 ‘퍼스트무버(First Mover)’로 발돋움해 새로운 전력산업 흐름 중심에 설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이는 아마도 우리 생에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세계 전력산업 제패 기회가 될 것이다. ISO 서울총회가 훗날 대한민국이 스마트그리드 넘버원 컨트리로 도약하는 첫발을 내디딘 의미 있는 날로 기억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구자균 한국스마트그리드협회장(LS산전 회장) jakyun.koo@l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