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미국에서 열린 세계 로봇 경연대회에서 한국 휴머노이드 ‘휴보(Hubo)’가 우승했다는 낭보가 날아들었다. 휴보는 미국, 일본, 독일 등 세계 각국에서 온 경쟁팀을 제치고 1위에 올랐다.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휴머노이드 분야에서 개발 역사도, 자금도 부족한 한국 연구팀이 만든 쾌거였다.
미래 기술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로봇’. 가까운 미래에 우리 삶을 대체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면서 세계 각국이 개발 경쟁을 펼치고 있다. 로봇 중에서도 인간과 닮은 ‘휴머노이드’는 가장 관심을 받는 분야 중 하나다. 가장 먼저 휴머노이드를 개발한 일본부터 미국, 유럽 등 너도 나도 인간에 더 가까운 로봇을 만들기 위해 노력 중이다. 생체모사 컴퓨팅, 인공지능(AI), 클라우드 등 로봇 개발에 기반이 될 기술도 진화하고 있어 로봇이 그릴 미래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진다.
◇기적 보여준 휴보
한국과학기술원(KAIST·총장 강성모) 오준호 교수팀이 개발한 휴보는 지난 6월 5·6일 양일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포모나에서 열린 ‘DARPA 로보틱스 챌린지(DRC)’ 결선에서 최종 우승했다.
DRC는 미국 국방부 산하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이 개최하는 대회로 재난대응 분야 세계 최고 로봇을 가리는 대회다. 올해 대회에는 미국 항공우주국(NASA), 일본 산업기술종합연구소(AIST), 미국 방산업체 록히드마틴, 미국 카네기멜론대,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등 로봇 연구와 개발 분야에서 쟁쟁한 실력을 자랑하는 24개 팀이 참가했다.
각 참가팀이 주어진 8개 과제를 수행하면서 누가 가장 많이 또 빠르게 완료했는지로 우승팀을 가린다. 로봇이 수행할 과제는 가상의 재난을 해결하기 위한 것들로 설정했다. 로봇이 △운전해서 재난현장 도착하기 △차에서 내리기 △문 열고 들어가기 △밸브 잠그기 △벽에 구멍 뚫기 △돌발미션 △장애물 돌파해 빠져나오기 △계단 오르기다. 이 모든 과정은 원격조종으로 이뤄진다.
휴보는 첫날 7개 과제를 성공했고, 둘째 날에는 모든 미션을 44분 28초에 성공하며 우승의 영광을 안았다. 2위팀과는 약 6분, 3위팀과는 약 11분 차이가 있었다.
대회에서 우승하면서 KAIST팀은 200만달러(약 23억원) 상금을 받았다.
휴보가 세계적 연구소, 대학, 기업과의 경쟁을 뚫고 우승한 것은 상대적으로 짧은 로봇 연구 역사를 감안하면 매우 놀라운 일이다.
오준호 KAIST 교수는 “이번 대회는 완성된 로봇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완성까지 가는 단계를 보여주는 대회였다”면서 “우승은 시작일 뿐이고 다음 목표는 지금보다 더 완벽한 로봇을 만드는 것”이라고 밝혔다.
DRC 대회에서 우승하고 돌아온 휴보는 일약 스타 로봇이 됐다. SBS 예능 프로그램 ‘놀라운 대회 스타킹’에 출연해 자유자재로 움직이고, 밸브를 잠그는 모습도 선보였다. 지난달에는 방위사업청 홍보대사로 위촉됐다. 휴보는 홍보대사로서 국방로봇사업 홍보영상에 출연하고, 국방과학기술 관련 행사에도 나서는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칠 예정이다.
◇인간 닮은 휴머노이드, 글로벌 경쟁 치열
인간 형태를 한 휴머노이드 개발은 세계적으로 경쟁이 치열하다. 인간 생활을 돕거나 구조에 사용하는 로봇이 궁극적으로 휴머노이드 형태로 구현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휴머노이드 개발로 얻은 기술을 다른 분야에 활용할 수 있는 것도 이유다.
물론 휴머노이드에 적용할 기술을 개발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인간과 비슷하게 움직이려면 정밀한 인공관절을 구현해야 하며, 주변 상황을 인식하고 안정적으로 걸어가기 위한 각종 센서 기술도 요구된다.
가장 먼저 휴머노이드를 개발한 곳은 일본이다. 1973년에 가토 이치로 와세다대 교수팀이 개발한 ‘와봇1’은 천천히 걷고 말도 할 수 있었다. 당시 로봇이 말하는 것은 미리 입력된 질문에 간단한 대답을 하는 수준이었다. 이후 개발된 ‘와봇2’는 전자오르간 연주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진화했다.
일본은 이후에도 다양한 휴머노이드 개발을 진행했다. 우리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것은 혼다가 2000년에 공개한 ‘아시모(ASIMO)’다. 아시모는 신호에 반응하고, 사람 얼굴이나 음성을 인식했다. 평지를 걷는 것은 물론이고 계단도 걸어 다닐 수 있었다.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로봇이 개발됐으며 세계적으로 주목받았다.
아시모는 지난해 한층 진화한 모습을 공개했다. 2000년 처음 공개됐을 때보다 키가 10㎝ 커져 130㎝가 됐고 몸무게는 전과 비슷했다. 전보다 유연한 움직임을 보여줬고 이동하는 속도는 시속 9㎞로 빨라졌다. 인식과 대화 능력 등은 획기적으로 발전했다.
일본은 혼다 아시모에 이어 도시바가 ‘아이보’를, 소프트뱅크가 ‘페퍼’를 선보이며 적극적인 로봇 개발 의지를 보여줬다.
소프트뱅크가 개발한 페퍼는 사람 표정과 목소리로 감정을 파악하는 것이 특징이다. 음성인식 등 정보는 클라우드 시스템과 연계해 계속 고도화하고, 기능을 향상시킬 수 있는 각종 앱도 쓸 수 있다. 페퍼는 지난 6월부터 200만원도 안 되는 가격에 일반 판매를 시작했다. 첫 일반 판매량 1000대는 1분 만에 완판돼 높은 인기를 보여줬다.
로봇 시장 성장에 대한 전망은 긍정적이다. 시장조사업체 마켓앤드마켓은 2014년부터 2020년까지 세계 산업용 로봇시장 규모가 연평균 5.2% 성장하며 400억8000만달러(약 47조4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같은 기간 서비스 로봇은 이보다 4배 이상 높은 연평균 21.5% 성장률을 기록하며 194억1000만달러(약 22조96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다. 국제로봇협회(IFR)는 세계 개인 서비스용 로봇시장이 매년 30% 성장하며, 2020년에는 536억달러(약 63조3900억원)에 이를 것이라는 더 큰 성장 전망을 제시했다.
로봇 시장이 커지고, 미래 성장성이 크다는 전망이 잇따르면서 구글, 아마존 등 글로벌기업도 로봇 개발에 뛰어들었다.
구글은 활발한 인수합병을 통해 로봇 개발기업과 관련 기술 보유 기업을 확보하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지난 2013년에 인수한 보스턴다이내믹스다. 최근 구글은 보스턴다이내믹스를 통해 개발한 휴머노이드 ‘아틀라스’가 산길을 걷는 영상을 공개해 화제가 됐다. 울퉁불퉁한 산길을 달리는 모습이 놀라웠기 때문이다. 아틀라스는 재난 구조로봇 등으로 활용하기 위해 계속 성능이 진화하고 있다.
아마존은 지난 2012년 키바시스템스를 인수하고 로봇 사업에 뛰어들었다. 아마존은 자율이동형 로봇 키바를 물류창고에 배치해 작업 효율을 개선했다.
◇로봇, 의외의 부작용 우려도
앞으로는 로봇이 감정을 인식하는 수준을 넘어 로봇 스스로 감정을 갖는 단계도 올 것으로 예상된다. 인공지능(AI) 기술이 빠른 속도로 진화하고 있어서다. 생체모사 신경기술을 통해 인간과 유사한 정보처리 기능을 갖추고, 인지와 인식기술이 결합하면 오감과 학습기능을 갖춘 컴퓨터 개발도 가능할 전망이다.
구글이 인공지능 전문기업 딥마인드를 인수하고, 페이스북이 인간 시신경을 모사한 소프트웨어 딥페이스를 개발하는 것 등도 AI를 고도화하기 위한 과정이다.
정두석 KIST 전자재료연구단 박사는 “신경모사 컴퓨팅기술은 뇌를 컴퓨터로 옮기는 것으로 전자공학, 신경과학, 재료공학, 전산과학, 물리학 등 다학제 간 융합연구가 필요하다”면서 “무인자동차, 자가학습형 CPU, 인공망막장치, 얼굴인식, 학습 소프트웨어 등 적용 분야가 많아 막대한 파급효과가 예상된다”고 말했다.
문제는 고도화된 인공지능과 로봇의 결합이 낳을 수 있는 부작용이다. 로봇이 인간과 대립하거나 전쟁을 일으키는 것은 공상과학(SF) 영화 단골 소재기도 하다. 대표적 영화가 지난 2004년 개봉한 ‘아이로봇’이다. 2035년을 배경으로 한 이 영화에서 인간은 지능을 갖춘 로봇으로부터 생활 편의를 제공받으며 살아간다. 그러다 로봇 지능이 계속 발전하면서 인간을 위협하는 존재로 변하는 내용을 담았다.
최근에는 기술 발전 속도가 빨라지면서 영화에나 나올 법한 일이 현실에서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실제로 지난 7월 28일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열린 ‘국제인공지능회의’에서는 세계적인 천체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을 비롯해 엘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 스티브 워즈니악 애플 공동창업자 등 1000여명 인공지능 전문가가 ‘국가 간 군비경쟁을 초래할 킬러 로봇 개발을 전 지구적 차원에서 막아야 한다’는 내용을 담은 공개서한을 제출했다.
이들 전문가는 스스로 공격 대상을 파악해 공격하는 자동화 무기 시스템이 암살, 국가 전복, 특정 인종에 대한 선택적 살인 등 임무를 수행하기에 최적화돼 있다고 밝혔다. 때문에 로봇 군대를 통한 군비 경쟁이 인류에 해가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킬러 로봇에 대한 우려가 과도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로봇 역시 도구일 뿐이고 이를 사용하는 인간의 문제이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즉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라 기술을 사용하는 인간의 윤리적 문제라는 의미다.
<주요 휴머노이드 현황>
권건호기자 wingh1@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