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신규 확진자가 한 달 넘게 발생하지 않고 있다. 추가 돌발 상황만 없다면 공식 종식 선언도 다음 달 중순쯤에는 이뤄질 전망이다. 발생 초기 매 시각은 그 상황을 달리하며 촌각을 다퉜지만 상황 종료를 눈앞에 둔 지금은 꺼져가는 불꽃 심지처럼 미약하나 길고 지난한 시간으로 남아 있다.
아직 완전한 종료 상황은 아니지만 그간 환자관리 체계에서 긴밀한 이해와 협조로 함께한 경기도와 성남시에 감사함을 전한다. 국립대병원 구성원으로서 전심을 다한 직원과 의료진의 헌신, 무엇보다 내원객과 지역 주민 성원이 큰 힘이 돼 의무를 다할 수 있었음을 지면으로 짧게나마 감사 인사를 한다.
위기는 말 그대로 모든 것을 무너뜨리는 계기일 수도 있지만 동시에 환골탈태 기회기도 하다. 메르스 사태가 진정된 지금 돌이켜 당시 여론 동향을 살펴보면 국민이 공포감을 느낀 것은 세포 분열하듯 퍼져가는 감염 양성 환자보다 세월호 때와 다를 바 없는 정치적 갈등이다.
컨트롤타워 부재도 공포감을 느끼게 한 원인이다. 그 낙담이 일찌감치 지자체나 정부 존재 자체를 부인하고 스스로 지켜내야 한다는 생각에 각종 유언비어를 낳았다.
메르스와 유사한 사태 재발을 막기 위해 조선시대 실학자 이익 선생 말씀처럼 ‘쇳덩이를 용광로에 녹여 새 그릇을 만드는 것’ 같은 근본적인 고민이 필요하다. 그런데 ‘그저 있는 물건을 두들겨 다듬는 대장장이 짓’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최근 지뢰폭발 사고 같은 안보 분야만큼이나 초당(超黨)적 대응이 필요한 것이 보건의료 분야다. 특히 메르스 같은 국가재난 앞에서는 정치인과 정책 입안자가 열린 리더십과 당을 초월한 집단지성 힘을 발휘해야 애꿎은 국민이 피해를 보지 않는다.
이 때문에 메르스 후속 대책은 응급실 구조 개선이나 감염관리 경각심을 일깨우는 계기가 돼야 한다. 더 중요한 것은 더는 기존 구도 속에 누리고 있는 이득이나 권한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이른바 ‘기득권 지키기’에 매몰되지 않도록 지금이라도 끊임없이 경계하고 고민해야 한다. 기득권 지키기는 개인이나 특정집단에 당장의 작은 이익일 뿐 미래에는 오히려 국민 전체가 부담해야 하는 빚으로 남는다.
보건의료는 국민을 질병으로부터 보호하고 국민 건강을 향상시키는 것이 존재 이유다. 새로운 테크놀로지(그것이 ICT융합 헬스케어든, 원격의료든, 유전체 의학이든)를 적용해 새 판을 짜려 할 때 보건의료의 근본 존립 이유부터 염두에 두고 다시 생각해보자.
그랬을 때 지금보다 보건의료가 존재하는 목적을 더 충실하게 달성할 가능성이 있다면 우선 최소한 정말 그러할지 지역적으로나 부분적으로 적용해봐야 한다. 서로 다른 집단의 이해득실을 걷어내고 보건의료 존재 목적을 달성하는 데 새로운 테크놀로지가 도움이 될 것인지 객관적인 평가를 할 수 있어야 한다.
보건의료계의 기존 구조를 구성하는 모든 구성원이 이익 선생 말씀을 다시 새겨봐야 할 때가 아닐까. 신뢰를 회복하는 일에 지름길은 없다. 근본이 서야 길이 열리고 올바른 길이 펼쳐지면 국민이 산다.
무엇이 옳은 것인가. 어느 쪽이 미래를 향한 것인가. 무엇이 국민을 행복하게 하는 것인가.
이철희 분당서울대병원장 chulhee@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