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33주년 특집]장수기업의 성공비결-머크(MERCK)

독일 머크(MERCK)는 올해로 창립 346주년을 맞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의약 및 화학 전문 기업이다. 지난 1668년 창업자 프리드리히 야코프 머크가 독일 중남부 헤센 소도시에 있던 작은 약국 하나를 인수한 데서 출발했다. 지난해 전 세계 66개국에서 약 115억유로 매출을 기록했다.

머크 로고.
머크 로고.

이 회사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사람’을 바탕으로 한 생태계다. ‘기업의 성공은 사람과 더불어 시작된다’라는 머크 가문 경영 신조는 이를 대변한다. ‘사람’에 대한 애정을 살펴볼 수 있다. 회사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을 존중하는 조직문화로 서로의 능력을 극대화해 훌륭한 사내 생태계를 만들었다는 평가다.

1853년 이 회사의 고용 계약서에는 직원이 계약 조건을 준수해야 일자리를 제공하며 최소 20년 이상 근무시 연금 지급, 의료급여 지불 등을 고용주 의무로 규정하고 있다. 무려 19세기에 종업원 복지 제도가 명문화된 셈이다. 뿐만 아니다. 300여년간 겪은 수많은 위기 속에서도 머크 경영진은 회사 직원을 최우선 순위에 뒀다. 조금이라도 실적이 부진하면 사업부 인력을 다른 부서로 전환배치하거나 구조조정하는 우리 기업들과는 반대다.

1900년대 초반에는 새로운 공장을 세우면서 인근 지역에 직원들이 편히 살 수 있도록 마을을 만들기도 했다. 마을에는 학교와 탁아시설도 포함됐다. 전쟁 후 식량, 물품 부족으로 직원들이 어려움을 겪자 양복, 빗, 손수건 등 생필품을 보급하고 점심 무료 제공 등도 실시했다. 이런 탓에 머크는 당시 인근 지역에서 ‘가장 일하고 싶은 기업’으로 손꼽히기도 했다.

직원들도 회사에 대한 사랑이 각별하다. 2차 대전 중이었던 1944년, 독일 담슈타트에 있는 머크 공장은 공습 후 80%가 무너지고 파괴됐다. 전쟁 후 미국 군대가 접수했지만 곧 전쟁을 피해 피난을 갔던 직원들이 제발로 돌아왔다.

머크의 ‘정신적 지주’라 불리는 하인리히 엠마뉴엘 머크가 가장 강조한 것도 ‘사람’이다. 그는 “나는 인간이 무엇을 해낼 수 있는지 몸소 깨달았다”며 “사람은 굳은 의지로 많은 것을 이뤄낼 수 있다”라는 말로 알칼로이드 사업에 대량생산 시스템을 도입했다. 이 결정은 회사를 약품 거래상에서 글로벌 업체로 만든 계기가 됐다.

머크의 ‘정신적 지주’ 하인리히 엠마뉴엘 머크. <자료=머크 홈페이지>
머크의 ‘정신적 지주’ 하인리히 엠마뉴엘 머크. <자료=머크 홈페이지>

특히 당시 하인리히 엠마뉴엘 머크는 광범위한 분야에서 높은 지식을 자랑하는 동료와 정보를 교환하며 당대 저명 학자들과 제품 개발을 위한 생태계를 꾸렸다. 이를 기반으로 오픈 이노베이션(개방형 혁신)을 몸소 실천했다. 새로운 약품, 방법론, 기술 등이 이 생태계 속에서 나올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현재도 옥스퍼드, 케임브리지 등 유명 대학 인근에 연구개발(R&D)센터를 세워 다양한 배경을 바탕으로 한 연구진들과 협업해 미래 기술 플랫폼을 탐구 중이다.

사람을 중심으로 한 생태계 조성에 앞장선 머크는 이를 기반으로 끊임없이 혁신을 추구해냈다. 지난 1999년 사내 혁신상을 제정해 변화, 혁신, 사업 탁월성, 고객 중심 등 4대 분야에서 높은 성적을 낸 직원을 뽑아 상을 준다. 전사적 아이디어 대회인 이노스파이어(Innospire)를 개최해 직원들이 신제품이나 다양한 아이디어를 제시하면 이 중 일정 부분은 실제 사업계획에 반영한다.

다섯 번의 화폐 개혁과 두 번의 전쟁에도 성장세를 멈추지 않았던 머크는 창업주 가문이 13대째 회사를 이끌고 있다. 가업승계 기업이라 자칫 내부 생태계가 굳어질 수 있었지만 이 회사는 다르다. 창업주 가문은 지난 1930년대 전문 경영인 체제로 바꿔 소유와 경영을 사실상 분리했다.

현재는 가족이 기업가로 활동하며 경영이 잘 이뤄지는지 살피고 보고받는 형태다. 이들은 스스로를 그룹의 ‘주인(Owners)’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대신 후대를 위해 신탁을 관리하는 사람들이라고 여긴다. 운영회사인 머크 최고경영진들도 머크 가문과 이 가문 소속이 아닌 ‘파트너’로 혼합 구성돼 있는 파트너위원회에서 뽑는다.

가족이라고 해서 마음대로 회사에 입사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머크 가문 사람들이 머크에 일할 수 있는 방법은 딱 하나다. 다른 회사에서 근무해 능력을 인정받은 다음 고위 직급에 지원하는 것이다. 제약이든 회계든 각자의 영역에서 역량을 쌓아 그 회사에서도 고위직 임원에까지 올라야 한다는 얘기다. 입사 시 평가도 비 머크가 사람보다 엄격하다.

김주연기자 pilla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