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거래시장이든 시장 지배력이나 주도권은 협상력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시장 내 거래당사자 간 정보가 제대로 공개되거나 유통되지 않을수록 자원이 효율적으로 배분되지 않는 게 일반적인 시장 모습이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전문가가 유료방송시장 지속가능한 생태계 구현과 시청자 복지를 위해 시장 플레이어들 간 조정과 협상 필요성, 정부의 유료방송시장 적극 관여를 요구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년 전부터 지상파 재송신 저작권 사용료 및 대가를 둘러싼 분쟁은 결국 법원 판단에 의지한 채 첨예한 대립을 멈추지 않고 있다.
유독 유료방송시장에서 법률적 소송이 줄을 잇는 원인은 무엇일까. 다른 산업은 관련 법령이나 제도에 거래당사자 간 대가 산정 가이드라인이 구체적으로 명시돼 있다.
즉, 소프트웨어 사업 각종 대가 지급, 주파수 할당 대가 및 비용 산정, 전기통신설비 상호접속료 산정 등이 이미 ICT 관련 산업에서 사용되고 있는 대표적인 대가 산정 예들이다.
방송시장은 산업성보다는 공익성 개념에 치중해 대가 산정 논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재전송 이슈를 좀 더 개선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다음 사항을 고려해보자.
첫째, 행정부가 마련한 재송신협의체에 이해관계자가 모여 원가든 콘텐츠사용료든 제대로 계산해볼 필요가 있다. 통신에 비해 방송사업자는 회계분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원가검증이 어렵긴 하지만 ‘디지털 상품 가입자의 채널당 월 수수료(CPS) 금액수준이 적정한지’ ‘지상파 재송신이 유료방송 가입자 유치에 도움이 더 되는 것인지’, 반대로 ‘재송신을 통한 지상파 광고 유치가 더 큰지’ 공개적으로 데이터를 갖고 따져봐야 한다.
둘째, 과연 이 분쟁이 법원 법리적 판단에만 의존해야 하는지 문제다. 방송사업자가 이해관계에 따라 어떨 때는 방송 공공성이나 공익성 논리를, 반대로 그렇지 않을 때는 방송 산업성을 언급하며 정부 관여 여부를 유리하게 제시하는 경향이 있는지 자성할 필요가 있다. 정작 중요한 것은 방송상품을 이용하는 시청자 권익이 가장 중요한 이슈임에도 이를 사적 분쟁으로 여겨 민형사소송 건수가 56건에 이른다는 것은 방송시장 생태계를 구성하고 있는 구성원으로서 더 나은 방법이 없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셋째, 재송신 대가가 현재 정액제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데 이는 각 사업자 규모나 수신료 매출 등을 고려해 정률제로 수정할 필요가 있다. 일대일 시장이 아니라 멀티 플레이어가 참여하는 시장에서는 정액제로 하는 것은 비합리적이다. 지금처럼 정액제 강요와 무리한 요금인상을 지속적으로 요구하면 결국 유료방송사업자는 시청자에게 요금을 전가할 수도 있다.
즉 규제산업에서 도매요금을 과도하게 규제하면 풍선효과(ballon effect)가 발생할 가능성이 우려된다.
넷째, 방송시장에서 지상파재전송 대상 프로그램은 통신시장과 연계해 보면 전기통신사업법상에서 정의하고 있는 필수설비 개념과 유사하다. 유료방송사업자가 지상파재전송을 이용할 필요성이 있고(필수성), 지상파방송 3사 콘텐츠 시장 지배력이 있고(독점성), 아직까지 유료방송사업자가 지상파방송 수준 콘텐츠 생산 가능성이 부족하기 때문이다(실현 가능성). 이런 맥락에서 보면, 필수설비 제공과 관련해 제공의무나 제공대가 간에 차이가 있는지 차별금지도 따져볼 수 있다.
다섯째, 정부가 여러 가정이나 논거를 떠나 시청자 권익을 위해 적극적인 개입이나 조정이 필요한 부분은 관련 법령을 만들어서라도 분명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주어야 한다.
그러나 여전히 규제기관에 의한 합리적 정책 조정기능은 현실적으로 상당한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유료방송시장이 하나의 선순환적인 생태계임을 고려할 때 서로 간 장기적 발전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서 지상파재송신 대가 산정 기준을 이제는 명확히 마련해야 한다. 따라서 현재 방송시장의 상호 공존과 상생적 발전을 위해 더욱더 플레이어 간 지혜와 정부의 적극적 조정역할을 기대한다.
최정일 숭실대 경영학부 교수 jichoi@ss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