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내년도 예산안을 발표했다. 벤처·창업 생태계 활성화에만 6조2955억원을 투입한다. 전국 17개 창조경제혁신센터를 지역, 중소기업 혁신 지원 거점으로 삼는다는 청사진도 밝혔다.
정부가 중견, 중소기업 성장과 벤처·창업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당연하다. 세계는 선진국부터 개발도상국까지 벤처 창업에서 새로운 경제동력 실마리를 찾고 있다. 동남아, 남미 등도 우리 정부의 이 같은 벤처창업 정책에 관심을 갖고 있다.
하지만 인위적 생태계 조성에 따른 부작용도 적지 않다. 정부 지원은 장기적 성장보다 즉각적 성과를 요구한다. 정부 사업이라는 명목 아래 성과를 낼 수 있는 분야에만 투자가 쏠린다. 문제해결 능력 함양, 협업과 같은 장기적 기업가정신교육부터 출발해야 할 대학생 창업교육도 재무회계, 투자, 마케팅 등 실전창업교육부터 진행된다. 제2의 스티브 잡스를 만들겠다고 초등학생에게 컴퓨터를 주며 당장 프로그램 언어부터 외우라고 등을 떠미는 셈이다.
이는 정부가 단기적 창업 성과 지표만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정부 지원 사업에 참여한 한 스타트업 대표는 각종 서류 작업에만 수일을 매달리고 있다고 토로한다. 정작 사업에 집중해야 할 중요한 시기에 정부 기준에 맞추느라 시간을 낭비한다는 것이다. 기업가에게 접근해 정부 지원 사업에 무조건 통과시켜주겠다면서 ‘족집게’ 컨설팅을 자처하는 사람도 등장했다. 기업 관계자는 정부 지원 사업이 ‘대외 보고하기 용이한 사업 지표로만 이뤄져 있다’고 꼬집었다.
벤처 창업은 대학수학능력 시험처럼 단 하루에 결정되는 시험이 아니다. 수년간 준비한 창업도 실패를 할 수 있고 거듭된 도전 끝에 급격한 성장을 이룰 수도 있다. 하지만 실패 경험은 서류에는 기록되지 않는다. 정부 사업에는 부정적 지표가 될 수 있다.
실패 없이 성공만 바라는 것은 요행이다. 정부는 모범생 성적표를 요구해서는 안 된다. 혁신의 길을 찾느라 어지럽게 그려진 모험가 지도를 찾아야 한다.
김명희기자 noprint@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