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태의 IT경영 한수] <81>핀테크가 이렇게 진행되면 안 된다

[이강태의 IT경영 한수] <81>핀테크가 이렇게 진행되면 안 된다

핀테크라는 생소했던 말이 이제 우리 주변에서 일상적인 용어로 자리 잡았다. 그래서 그런지 덕분에 갑자기 ‘페이’ 종류가 많아졌다. 30가지가 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삼성 페이, 카카오 페이, 시럽 페이, 네이버 페이, 스마일 페이, 페이 나우, SSG 페이, 엘 페이, 등등 카드사, 통신사, 유통회사, VAN, PG사 거의 모두가 각자 페이 솔루션을 내놓고 있다. 자기 페이 솔루션이 없는 게 오히려 이상하기까지 하다. 이제는 각자가 자기 자신의 솔루션을 가지고 있으니 서로 치열하게 경쟁하는 수밖에 없게 됐다. 이게 정말 잘하는 건가.

본래 핀테크가 나오게 된 배경은 간편결제 때문이 아니다. 금융부문에서 정보기술, 예를 들어 IoT, 클라우드, 빅데이터, 모빌리티를 활용해 새로운 시장을 개발하고 고객 경험을 증진시키고자 하는 새로운 추세였다. 우리나라에서는 금융 부문에 끼어들고 싶어도 온갖 규제가 버티고 있어 쉽지 않았다. 그리고 시장도 작았다.

그동안 온라인에서 신용카드 결제 모듈을 설치하려면 얼마나 짜증스러웠던가. 10여 단계 등록 절차를 거쳐서, 또 가끔 시스템을 껐다 다시 켜라는 지시를 받아 가면서, 어렵게 어렵게 모듈을 설치해도 아뿔싸! 가끔 쓰는 모듈이라 비밀번호도 잊어버리고, 그래서 다시 본인 인증을 받았던 거의 고통에 가까웠던 기억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 10여 단계 등록 절차가 처음 한 번만 등록해놓으면 결제할 때 비밀번호만 넣으면 된다고 하니 얼마나 좋아지는 것인가.

얼핏 보면 우리나라에서 핀테크가 발달하고 건강한 생태계가 형성되는 것처럼 보인다. 일단 참여자와 핀테크 관련 세미나도 많아지고 창업도 당연히 늘었을 것이다. 아마도 창조경제 실적에 목말라 하는 정부관계자는 흐뭇해할지도 모르겠다. 핀테크가 활성화되면 관련 벤처 창업이 늘고 그래서 일자리가 창출된다는 논리로 현 상황을 고무적인 것으로 볼 것이다. 과연 그럴까.

우선 소비자 편에서 보자. 간편결제라는 것이 뭔가. 자기가 가지고 있는 신용카드를 한번만 등록해 놓으면 쓸 때 생체인증을 하든, 비밀번호를 넣든, 사인을 하든 바로 한번에 결제를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런데 결제 모듈을 각각 개발해 놓으면 소비자는 가맹점 모듈별로 각각 등록을 해야 한다. 자기가 원하는 페이를 골라서 거기에만 등록하면 된다고 얘기하지만 그 페이가 모든 곳에서 다 쓰이지 않기 때문에 최소한 서너 개는 등록해 놓아야 낭패를 당하지 않는다.

또 가맹점 쪽에서 보자. 각종 페이 내용은 다들 비슷비슷한데 이른바 API(Application Program Interface)가 다르다. 그러니 제휴를 해서 결제 모듈을 연결해도 따로 테스트를 다 해봐야 한다. 비대면 결제를 하는 온라인은 결제모듈이 거의 생명과 같다. 자칫 오류가 생기거나 정보유출이라도 되면 그 사이트는 그날로 끝이다. 오프라인 가맹점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가맹점 POS(point Of Sale) 터미널 결제모듈에 끼어 넣어 줘야 하고 테스트도 해야 한다. 주로 영세가맹점의 POS는 VAN대리점이 관리하고 있다. 이들은 굳이 새롭게 돈 들여 새 모듈을 설치할 이유가 없다. 그러니 각종 간편결제 앱이 우후죽순처럼 개발돼도 실제로 설치돼 활발하게 쓰이지 않는 이유다.

이렇게 페이 종류가 많아지게 된 것은 오프라인에서도 우리나라 결제 프로세스가 수평적 협업이 아닌 수직 계열화돼 있기 때문이다. 은행, 카드사, VAN이나 PG, 대리점, 가맹점으로 이어지는 결제 프로세스에서 각 플레이어가 자기 영역을 지키고자 노심초사하고 있다. 모두 중간자( Intermediate )들이기 때문에 산업 구조가 바뀌면 자신의 부가가치를 입증하기 힘들게 돼 있다. 예를 들어 모든 가맹점이 모든 카드사와 각각 가맹점 계약을 하고 있다. 그것도 1년 단위로 계약을 하고 있다. 서로가 공유하면 될 가맹점 망도 마케팅을 이유로 따로따로 관리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카드사 마케팅은 대형 가맹점에서만 실시된다.

글로벌 IT 강자들은 플랫폼을 구축하고 여기에 많은 관련회사를 참여케 한 회사들이다. 애플이 그렇고 아마존이 그렇고 구글이 그렇다. 플랫폼을 통해서 고객의 자발적 클릭을, 자발적 참여를 유도해서 성공한 기업들이다.

우리나라에서 핀테크 결제 플랫폼을 구축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누가 플랫폼을 만들고 주도하는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서로 협업을 하고 상생해야 플랫폼이 만들어지고 시너지가 나기 때문이다. 플랫폼에 참여하면 내 존재감이 없어진다든지 내 사업 영역이 없어진다고 우려되는 플랫폼은 플랫폼이 아니다. 예전 아날로그 시대 패러다임에 사로잡혀서 서로 주도권 싸움을 하고 서로 내 것이 더 뛰어나니 너는 내 것을 써야 한다고 덩치로 밀어붙이기 때문에 플랫폼이 형성되지 못한 것이다.

우리나라 같이 작은 시장에서 서로 내가 잘났다고 따로따로 시작해서 나를 따르라고 한다면 독불장군이 될 가능성이 크다. 과문한지 몰라도 미국에서는 애플페이, 페이팔, 중국에서는 알리페이와 텐페이 정도가 페이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세계 어느 나라도 우리나라처럼 20여개 페이가 내가 제일이라고 다투지는 않는다. 시장 초기라 그렇다고 하지만 다들 목욕탕 물에 손가락 넣어 보듯이 간 보기로 시장에 참여해서는 안 된다. 눈치 보면서 남 따라 할 그런 시장이 아니다. 이미 알리페이가 우리나라에 상륙하지 않았는가.

지금이라도 핀테크 관련 협회나 포럼들이 많은데 서로 모여서 각자 개발하지 말고 API표준화를 하고 공동으로 모듈을 쓰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중국이나 미국시장에 진출해야 한다. 대단한 기술도 아니고 복잡하지도 않는 결제모듈을 가지고 국내에서 서로 PR에 주력 하는 사이 외국에서는 생태계를 형성해서 플랫폼을 만들어 거대한 결제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다. 우리 IT업계가 또다시 골목대장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있다.

CIO포럼 명예회장(명지대 교수) ktlee777@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