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최근 추진하는 반도체 국산화 정책이 과거 30여년 전과 달리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상당히 공격적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반도체 기업이 ‘중국에서’ 사업을 하는 것을 넘어 ‘중국과’ 손을 잡아야 상생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압히짓 마힌드루 맥킨지앤컴퍼니 연구원은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가 14일 서울 코엑스에서 개최한 회원사의 날 행사에서 ‘중국 반도체 정책’을 주제로 이같이 발표했다.
중국 정부는 지난 1986년 12억달러(약 1조4100억원) 규모 국가전자개발펀드를 설립하고 가정·산업용 전자기기, 소프트웨어, 반도체 산업 등에 걸쳐 3000개 연구개발(R&D)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이후 1996년부터 1999년까지 10억달러 정부펀드를 조성해 후아징일렉트로닉스와 후아홍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의 6~8인치 생산 설비를 지원했다.
2002년에는 6억달러 규모 국가특별펀드를 조성하고 100개 연구개발 프로젝트를 추진했으며 2005년에는 2억5000만달러 펀드를 조성해 직접 연구개발 보조금에 투입했다. 2011년에는 반도체 기업을 위한 세금 면제 정책을 펼치기도 했다.
반도체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중국 정부가 오랫동안 공을 들였지만 목표치 대비 성과는 미미했다. 2005년 당시 수립한 10번째 5개년 계획은 당초 목표한 110억달러 규모를 모두 달성했지만 2010년 기준으로 11번째 5개년 계획은 460억달러 목표치 대비 220억달러 달성에 그쳤다.
기술 개발도 목표치에 근접하지 못했다. 반도체 디자인은 2010년까지 90~130나노미터(㎚) 수준을 목표했지만 실제로는 250㎚에 그쳤다. 반도체 생산은 2010년까지 12인치 웨이퍼에 90~65㎚ 달성을 목표로 내걸었지만 실제로는 130~90㎚에 머문다.
이에 대해 마힌드루 연구원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투자해야 할 금액 대비 실제로 투입한 투자금이 적은 게 주효했다”고 분석했다. 연구개발 투자금이 실제로는 367억달러가 필요했지만 실제 정부 펀딩은 6억달러, 현지 기업 투자금은 31억달러에 그쳐 무려 330억달러 차이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현지 기업이 연평균 60% 성장해야 달성할 수 있는 목표인데 실제로는 25% 성장에 그친 것도 목표 달성에 실패한 주원인이다.
반면에 지난해 중국 정부가 새로 수립한 반도체 산업 육성책은 상당히 다르다. 일단 투자금 규모가 과거 대비 약 40배 늘고 투자 접근방식과 집중도가 달라졌다는 분석이다.
1996년부터 2003년까지 투자금은 30억달러였지만 2014년부터 2019년까지는 중앙정부(220억달러)와 지방정부(960억달러)가 함께 1180억달러(약 139조4000억원)를 조성했다. 세금 감면과 환급을 활성화하고 정부 자금 70% 이상을 연구비로 투자하는 것도 바뀐 모습이다. 인수합병과 하이엔드급 제품 생산을 위한 설비 확충에 투자한다.
무엇보다 정부가 인수합병을 장려하는 것은 가장 두드러지게 바뀐 모습이다. 내부 기업 간 통합은 물론이고 외부 글로벌 수준 리소스까지 확보해 인수하는 데 속도를 낸다.
지난 17년간 2000개 프로젝트에 투자했지만 이제는 각 분야별 우수 기업을 집중적으로 지원하는 전략으로 바뀌었다. 중국 현지에서 각 분야 1등 기업 하이엔드급 제품을 생산하는 전략으로 방향을 선회한 것이다.
새로운 전략을 바탕으로 중국 정부는 이미 지난 8개월간 전체 1180억달러 펀드 조성 계획 중 20%인 220억달러(약 26조원) 조성을 구체화했다. 1%인 18억달러(약 2조1200억원) 투자를 이미 집행했다.
맥킨지앤컴퍼니는 중국 산업 육성 전략이 목표를 달성하려면 더 많은 인수합병이 필요하지만 실제로는 해외 기업의 인수합병 승인 규제, 미국과 중국 반도체 경영진 간 인식 차이 등의 문제를 겪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마힌드루 연구원은 “새로운 제품과 시장을 개척하는 ‘새로운 게임’ 전략으로 가야 성공할 수 있다”며 “퀄컴, ASML, 인텔, TSMC, 어플라이드머티리얼즈, 샌디스크 같은 기업이 이런 전략으로 성공한 사례”라고 설명했다.
또 “현지 기업과 합작법인을 설립해 포트폴리오 전략을 극대화하고 자산을 다양화하는 것, 가치있는 비즈니스 모델을 함께 개발하고 설비·장비 등에 대한 연구개발 가능성을 함께 발굴하는 등 중국 현지기업과 외부 기업이 함께 윈윈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배옥진기자 witho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