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그리드는 기존 전력망에 정보통신기술(ICT)을 접목해 전력생산이나 소비 정보를 양방향, 실시간으로 교환함으로써 에너지 수요 관리를 최적화하는 차세대 전력망이다. 이 똑똑한 전력망은 전력 수요에 반응하는 사물인터넷(IoT) 기반 스마트가전이나 전력기기부터 스마트홈·빌딩·공장 등 새로운 산업으로 발전하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집집마다 일일이 방문해 검침했던 전기사용량은 원격검침인프라(AMI)를 거쳐 자동으로 실시간 수집되고, 수용가별로 전력사용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다. 또 전기차 충전인프라도 스마트그리드 기반 태양광·풍력 등 신재생에너지원과 접목되고 있다. 최근엔 버려졌던 전기를 담아 필요할 때 꺼내 쓰는 에너지저장장치(ESS)까지 등장하며 스마트그리드, 에너지 신산업이 더욱 탄력 받고 있다.
ESS는 이미 현대인이면 누구나 지니고 다니는 필수품이다. 스마트폰이나 각종 모바일기기에 들어 있는 리튬이온 이차전지가 소형 ESS인 셈이다. 전기차도 전기를 충전하고 방전하는 ESS로 활용될 정도로 스마트그리드 시대 ESS는 핵심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ESS용 배터리로 가장 널리 사용되는 리튬전지 완제품 기술은 우리나라가 세계 최고다. 이미 글로벌 ESS용 배터리시장에서 우리 기업 장악력도 독보적이다. 하지만 미래를 생각하면 아쉬움도 있다. 우리나라 ESS 설치 현황을 보면 지금까지 양수발전을 제외하고 전국에 설치된 ESS 79%가 리튬 전지를 썼다. 반면에 미국 에너지부(DOE)를 비롯해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집계에 따르면 세계적으로 리튬이온 전지를 활용한 ESS는 9% 수준에 불가하다. 미국도 11% 정도다.
결국 우리나라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리튬전지에 집중하고 있다. 전기 에너지를 저장하는 배터리는 리튬이온계뿐 아니라 공기아연전지, 레독스플로 등 비리튬계, 비화학계 전지를 포함해 30여가지에 달한다. 이 중 대다수는 이미 기술개발을 마치고 실증사업을 진행하는가 하면 일부는 상용화를 앞두고 있다. 반면에 우리는 리튬계 이외 다른 배터리를 활용한 개발 사업이나 실증사업은 찾아볼 수 없다.
우리나라 리튬전지 산업이 시작된 지 15년이 넘었다. 아직 전지분야 소재 기술은 일본이, 생산은 중국에 뒤처질 수밖에 없다. 완제품만 보면 우리나라가 1위지만 관련 부품과 소재는 국산이 아닌 게 더 많다. 우리에게 리튬전지 시장 1위 자리를 내 준 일본은 이미 나트륨황(NaS) 전지분야에서 독보적 경쟁력을 확보했다. 일각에선 이 기술이야말로 현존하는 ESS 분야 전지로 가장 성숙된 기술로 평가할 정도다. 레독스플로전지(RFB)도 마찬가지다. 일본은 몇 년 전 미나미하야기타 변전소에 대용량(60㎿h)급 레독스플로전지 기반 대규모 ESS를 운영하고 있다. 중국 역시 ESS용 전지 차별화에 한창이다. 자국 내 시장과 소재 경쟁력을 앞세워 인산철 배터리로 한국시장을 위협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프루던트에너지는 지난 2009년 캐나다 VRB파워를 인수하면서 레독스플로를 적용한 각종 ESS 사업을 정부와 함께 주도하고 있다. 나트륨황전지나 레독스플로전지는 에너지 방출 시간이 각각 6시간, 4시간으로, 평균 2시간 수준인 리튬전지보다 길기 때문에 활용분야가 다양하다. 또 리튬 전지에 비해 경제성도 뛰어나면서 오랜 시간 사용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물론 ESS 분야에서 리튬전지 강점은 여전히 많다. 안정적 물량 수급과 부피나 출력성능 등에 유리하다. 하지만 분명한 건 앞으로 ESS 시장은 리튬전지로 모두 채울 수는 없다는 것이다. ESS 활용이 늘어나면서 다양한 현장과 용도로 확대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비리튬계 전지 기술 확보에 나서야 할 때다. 조금 늦었지만 지금부터 준비하지 않으면 차세대 전지 시장을 위협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리튬전지만 아닌 비리튬계 기술에도 정부뿐 아니라, 관련 업계 노력으로 차세대 배터리 시장을 선도할 신무기를 개발해야 할 것이다.
홍유식 INI R&C 대표 harry@inirnc.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