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도언의 '프로이트 레시피'] 낯선 맛으로 옮겨가기

(3) 쓴 맛: 성장과 성숙

[정도언의 '프로이트 레시피'] 낯선 맛으로 옮겨가기

삶이란 익숙한 것에서 낯선 것으로 옮겨가는 경험의 끝없는 반복이다. 첫 경험은 ‘이유(離乳)’이다. 이유에도 이유(理由)가 있다. 아기의 소화기관은 아직 여려서 딱딱한 음식을 받아들일 수 없다. 이 없이 잇몸만 있으니 제대로 씹을 수도 없다. 엄마의 젖이 최고의 음식이다. 모유(母乳)는 영양이 우수하고 다량의 항체가 들어 있어 질병도 예방할 수 있다. 엄마젖을 먹일 수 없다면 젖소의 젖을 영양학적으로 강화해 만든 분유를 물에 타서 먹여야 한다.

모유이든 분유이든 달콤한 시절은 오래가지 않는다. 젖과 헤어져야 할 때가 오고야 만다. 그 헤어짐을 이유(離乳)라고 한다. 이때 어른이 먹는 음식으로 완전히 옮겨가기 전의 중간 단계로 이유식(離乳食)을 먹게 된다. 음식만 옮겨가는 것이 아니라 젖에서 숟가락으로, 엄마 무릎에서 식탁 의자로 옮겨간다.

세계보건기구에 의하면 이유는 생후 6개월경에 시작하는 것이 좋다. 아기가 일어나 앉고 기어 다니려면 많이 먹어야 한다. 근육이 커지려면 단백질이, 뼈와 치아가 자라려면 칼슘이 요하다. 이 무렵에는 태어나기 전부터 엄마에게 받아썼던 철분도 부족해진다. 계속 엄마 젖만 먹이면 아기는 영양 결핍에 걸린다. 젖병을 오래 쓰면 치아와 턱뼈 발달에 좋지 않고 충치가 잘 생긴다.

이유식은 반고체식이어서 아기에게 엄마의 젖과는 완전히 다른 세계로 다가온다.아기는 새로운 맛과 질감의 음식을 경험하게 된다. 반고체를 삼키는 것은 젖을 삼키는 것과는 아주 다르다. 이유식 속의 섬유질은 장을 자극해서 배변 습관을 도와준다. 아기가 두세 살이 되면 어른이 먹는 음식을 거의 다 먹을 수 있다.

이유는 쉽지 않다. 아기와 엄마 모두에게 스트레스가 될 수도 있다. 언제 이유를 시작할지 정하는 것도 쉽지 않다. 영양학적인 관점이 우선이지만, 젖을 물고 있을 때 아기가 느끼는 심리적 안정감을 가볍게 보고 쉽게 빼앗으면 안 된다. 우유병에 든 우유와 컵에 든 우유는 같은 우유지만 아기에게는 전혀 다르다. 이런 사실이 믿어지지 않으면 컵 대신 젖병에 따뜻한 우유를 넣어 고무 젖꼭지로 한번 빨아보시길. 엄마의 젖이나 젖병은 아기 마음의 전용 주차장이다. 익숙한 물건이 갑자기 사라지면 어른도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가! 엄마 젖이나 우유병에서 컵으로 당장 옮기지 말고 빨대 컵이라는 중간 과정을 활용하면 좋다. 이유식을 해야 할 때가 오면 아기가 직접 좋아하는 컵을 고르게 한다. 엄마가 컵에 있는 우유를 마시면서 시범을 보이는 것도 좋다. 아기가 컵으로 우유를 마신다면? 아이에게 엄청난 칭찬을 쏟아부어야 한다.

넓은 평원에 소를 풀어놓고 키우는 미국에서는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젖먹이 송아지가 6개월에서 9개월이 되면 어미 소와 강제로 떼어놓는다. 어미 소가 신체적인 부담을 덜고, 다시 새끼를 가질 수 있으며, 관리가 용이하기 때문이다. 송아지들도 전용 목장에 모여 크는 것이 좋다고는 하지만 알고 보면 ‘송아지 고아원’에서 크는 것이다. 어미와 억지로 떨어져 자라는 송아지들은 잘 먹지도, 잘 크지도 않는다. 스트레스와 질병에도 더 취약하다. 소고기는 그렇게 생산된다.

이런 이야기에 충격을 받아 갑자기 채식주의자가 되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 엄격한 채식주의자는 뼈에 구멍이 생기는 골다공증에 걸리기 쉽다. 그렇게 되면 작은 충격에도 뼈가 쉽게 부러진다.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정신분석학자 정도언]

-정신과 전문의, 수면의학 전문의. 프로이트 학파 정신분석가(교육 및 지도 분석가).

-국제정신분석학회 산하 한국정신분석연구학회 회장.

-서울대학교의과대학과 서울대학교병원에서 교수로 재직 중.

-저서로는 `프로이트 레시피(웅진리빙하우스, 2015.04)`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