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재선의 '프로이트 레시피'] 낯선 음식이 주는 맛 이상의 위로

(3)쓴맛 : 성장과 성숙

[고재선의 '프로이트 레시피'] 낯선 음식이 주는 맛 이상의 위로

낯선 곳에서의 새로운 경험은 적당한 긴장감을 느끼면서 새로운 생각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일본에서는 `세토우치(瀬戸内) 국제예술제`가 3년마다 열린다. 예술제는 세토 내해에 흩어져 있는 12개의 섬에서 동시에 개최된다. 그중 테시마에 가면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Pritzker 상을 받은 니시자와 류에가 설계한 테시마 미술관이 있다. 특이하게도 그 미술관에는 그림이 단 한 점도 없다. 푸른 들판과 파란 바다를 배경으로 커다란 물방울 모양의 흰색 건물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유일한 작품이다.

나는 기대 반 호기심 반으로 건물에 들어가서 자리에 앉았다. 바닥에서 물방울들이 조금씩 솟아나와 이리저리 움직이며 이합집산을 반복했다. 나이토 레이의 모형이었다. 가운데가 뻥

뚫린 조개 모양의 지붕 아래에 앉거나 서서 바람소리와 새소리를 들으며 물방울들이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형상을 바라보는 것이 전부였지만 분주하고 고단했던 삶을 위로받는 느낌이 들었다.

테시마에 가려면 교통편이 불편한 것쯤은 감수해야 한다. 내가 섬을 찾았을 때 그곳에는 택시 한 대와 셔틀버스 한 대가 전부였다. 아버지의 대를 이어 운전한다는 택시 기사는 아버지와 자신의 운전 경력을 합하면 65년이 된다고 했다.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은 과거에 그 섬이 산업 쓰레기로 뒤덮여 있었다는 사실을 잊게 할 만큼 아름다웠다.쌀농사를 짓고,

소를 재배하고 과일나무를 키우는 그 섬에는 식재료가 풍부했다.

테시마 미술관만큼 유명한 ‘시마키친’을 찾았다. 감나무와 무화과나무만이 지키던 버려진 집을 건축가 료 아베가 전통 방식으로 개조해 만든 식당이다. 그곳 음식들은 모두 섬에서 태어나고 자란 주민들이 생산한 유기농 식재료로 만드는데, 시마키친은 음식과 건축 예술이 존하는 복합 문화 공간으로 손색이 없었다. 시마키친은 자연을 주제로 만든 음식을 예술로 승화시켜 사람들에게 기쁨과 감동을 주고 있다. 그곳 음식은 이미 국제예술제에서 미술, 건축, 역사와 함께 또 하나의 훌륭한 주제가 되어 있다. 사람들이 시마키친을 찾는 또 다른 이유는 다양한 공연을 함께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산업 쓰레기로 뒤덮여 오랫동안 관심 밖으로

밀려났던 섬이 이제 맛과 멋을 통해 다시 세상 사람들을 불러들이고 있다.

누구나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에서 한발 떨어져 자신을 돌아보고 싶을 때가 있을 것이다. 나 역시 직업의 특성 때문인지 스스로의 한계에 부딪치는 기분이 들 때가 자주 있었다. 그럴 때마다 가까운 사람에게서 위로를 받는 것도 좋지만, 한번도 가보지 않은 멀고 낯선 곳을 찾아가보는 것도 도움이 되었다.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해주는 음식까지 더불어 즐길 수 있었으니 감사할 뿐이다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필자소개/고재선

그래픽 디자이너로 국내외에서 활동해 왔으며 식문화에 대한 이론과 실제에 밝다. 음식을 맛 이전에 다양한 시각적 관점에서 접근하고 파악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글과 시각적 요소의 통합을 위해 직접 이 책의 북 디자인을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