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폭스바겐, 세계 최고 기술력이 `사기극` 도구로 활용

이번 배출가스 조작 파문은 자동차 소프트웨어(SW) 기술이 악용된 대표적 사례다. 폭스바겐은 배출가스 시험 상황을 파악하는 SW 기술을 사용했다. 문제는 이 기술이 폭스바겐 정도 되는 회사에는 최첨단 기술이 아니라는 점이다. 전자제어장치(ECU)에 내장된 임베디드 SW 하나로 세계를 속였다. 누가 언제 어떻게 이 SW를 개발해 내장했는지가 향후 핵심 쟁점이 될 전망이다.

미국 환경보호청(EPA)에 따르면 폭스바겐은 디젤 배출가스 환경 기준을 만족하기 위해 폭스바겐 및 아우디 디젤차에 배출가스 저감장치 작동 유무를 결정하는 ‘차단장치(defeat device)’ SW를 설치했다.

SW 역할은 간단하다. 스티어링휠 위치와 차량 속도, 엔진 지속 시간, 대기압 등 정보를 파악한다. 또 배출가스 시험 환경을 미리 입력해 차량이 ‘테스트’ 중인지 ‘주행’ 중인지 판단한다. 예컨대 조향이 제한적으로 이뤄지면, 테스트 환경으로 인식해 저감장치를 최대로 가동하는 식이다. 반대로 공도 환경처럼 조향이 불규칙적이라면 일반 주행 상황으로 인식, 저감장치 작동을 중지시킨다. 이를 통해 엔진 출력과 연비를 끌어올렸다. 저감장치가 작동하지 않으면 환경에 치명적인 질소산화물(NOx) 배출량은 최고 40배나 증가한다. 폭스바겐이 내세운 ‘클린 디젤’은 시험실 내에서만 가능했던 것이다. 앞으로 배출가스 사후 검증을 실주행 방식으로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일반적으로 자동차 SW는 지능형운전자지원장치(ADAS)와 엔진 및 조향, 제동장치 제어에 사용된다. 폭스바겐은 이 분야 최고 기술력을 보유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이번에 드러난 SW 기능은 안전 및 성능 향상과 아무 관련이 없다. ‘눈속임용’ SW인 셈이다. 이 때문에 폭스바겐이 고의로, 그것도 공을 들여서 속임수를 썼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이번에 적발된 차종들에만 이 기술이 사용됐는지도 아직 불명확하다. 개발 난이도가 높지 않고 차종별로 적용이 제한될 이유도 없기 때문이다. 각 국 정부가 조사 대상 차종을 확대하려는 움직임도 이 때문이다.

국내 자동차 SW 전문가는 “차량이 테스트 중인지 일반 주행 중인지 파악하는 SW 기술은 결코 어려운 기술이 아니다”며 “폭스바겐이 사용한 방법 외에도 시험에 사용되는 진단기를 인식해 정상적 시험을 회피하는 것도 기술적으로는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남은 쟁점은 ‘왜’다. 면밀한 조사 과정에서 폭스바겐 스스로 실토하지 않으면 명확히 규명되기 어렵다. 적은 비용으로 디젤 승용 한계를 극복하고 각국 환경 규제를 충족하려 했다는 추정만 제기된다.

질소산화물과 미세먼지(입자상물질·PM)는 디젤 엔진 최대 약점이다. 가솔린 엔진보다 열 효율과 토크, 연비가 뛰어나지만 필연적으로 오염 물질이 발생한다. 미세먼지는 DPF(Diesel Particulate Filters), NOx는 선택적환원촉매제(SCR)를 장착해 줄일 수 있지만 비용이 든다.

이들 장치가 없더라도 디젤 엔진은 가솔린 엔진보다 비싸다. 대중차 브랜드를 지향하는 폭스바겐에는 큰 부담일 수밖에 없다. 격화되는 시장 선점 경쟁, 강화되는 환경 규제를 ‘꼼수’로 뚫어보려다 들통 난 셈이다.

송준영기자 songjy@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