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는 기원전 37년 압록강 지류인 혼강 유역 졸본 지방에 주몽이 건국한 우리 민족 국가였다. 전국시대 이래 300년을 넘긴 왕조가 없는 중국과 달리 고구려는 AD 668년까지 705년간 실존했다. 그 강역은 동서 6000리에 달했다. 일찍이 기마민족 문화를 받아들여 한족의 북진을 제어하면서 동북아 교통요로를 장악했다. 고구려는 동북아를 지배한 강국이었다. 자랑스러운 우리 역사이자 소중한 우리 문화 원류로 남아 있다.
옛 사람들은 위세를 과시하기 위해 돌로 대형 구조물을 만들었다. 고대 메소포타미아는 지구라트라고 부르는 돌탑 피라미드를 쌓았다. 이집트는 죽은 왕을 위해 초대형 돌무덤 피라미드를 만들었다. 고구려도 광개토대왕을 비롯한 왕들은 물론이고 지배계층을 위해 무덤을 적석 피라미드로 만들었고 수천기가 지안 일대에 남아 있다. 고구려 피라미드는 지구상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엄청난 군집성으로 세계를 압도한다. 무엇보다 고구려 피라미드 벽화들은 아름답고 수월하며 풍성한 고대 아시아 이야기를 담고 있다. 고구려 힘과 문화의 깊이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동청룡, 서백호, 남주작, 북현무의 사신도(四神圖), 말 탄 채 활시위를 당기는 역동적 수렵도(狩獵圖), 삼족오, 두꺼비, 토끼가 그려진 일월성신도(日月星辰圖)들이 고구려 벽화에는 장엄하게 그리고 화려하게 그려져 있다. 아울러 신령도(神靈圖), 제륜도(製輪圖), 가무도(歌舞圖), 연회도(宴會圖), 접객도(接客圖), 악기도(樂器圖), 열선도(列仙圖), 역사도(力士圖), 공성도(攻城圖) 등등 무궁무진한 그림들이 기천년 전의 우주와 세상을 정치하게 보여주고 있다. 세계 어디에 내놔도 손색없는 걸작들이다.
지난 6월 평화오디세이와 함께 지안 우산분지를 찾았다. 꿈에 그리던 광개토대왕릉은 겨우 도괴를 면했으나 잡초가 무성했고, 정호석 하나가 사라진 장군총 피라미드는 힘겹게 버티고 서 있었다. 이들은 중국 변방 어느 소수민족 왕 무덤으로 소개되고, 광개토대왕비는 중국풍 비각 속에서 호태왕비로 불리고 있었다. 고구려 벽화 백미들이 모인 오회분(五會墳) 5호묘 천장과 벽은 결로로 인해 물이 줄줄 흘렀다. 채색화들은 퇴색되고 덧칠돼 있었다. 지안의 고구려 유산은 속병이 깊어 보였다.
2004년 유네스코는 지안과 평양의 고구려 피라미드와 벽화들을 세계문화유산으로 공동 등재했다. 국제문화기구 개입으로 유물 관리에 필요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는 마련됐다고 볼 수 있으나 현장 상황은 녹록하지가 않다. 경제적 사정과 우선순위 때문에 고구려 유산들이 지금보다 강력하고 확실한 과학적 보호를 받게 되리라는 장담을 하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우리에게는 민족 보물창고지만 중국이 서두른 동북공정을 보면 소극적 대처나 부작위가 결과적인 멸실을 초래할까 걱정하게 된다.
지안의 고구려를 위한 골든타임은 많이 남아 있지 않다. 훼손은 깨진 창 증후군처럼 가속화하기 때문이다. 남과 북은 고구려를 사랑하고 역사적 자존심으로 여기지만 중국을 제치고 손쓸 방법이 막연하다. 위기 타개를 위해 적극적 문화외교가 불가피하나 협상이 늘 그렇듯 빠르고 바른 성과가 나오기는 쉽지 않다. 차라리 지안의 유산을 세계적 명품으로 거듭나게 하고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만들면 오히려 적극적 보전과 복원에 도움이 될 것이라 확 뒤집어 생각해 본다.
콘텐츠 테크놀로지가 좋은 처방일 수 있다. 고구려 로고스를 재정리하고 그리스 로마와는 질적으로 다른 고구려 신드롬을 만드는 일이 출발이다. 광개토대왕 정복기가 반지의 제왕보다 흥미진진한 사가임을 세계는 모른다. 고구려 개마무사가 세계 철갑무사들을 압도하는 게임은 모두를 신나게 만든다. 날렵한 고구려 기갑부대의 우주 판타지는 스타워즈를 능가할 수 있다. 싸이의 고구려 스타일과 소녀시대의 무용총 리바이벌은 금상첨화가 된다. 벽화 속 첨단 생활양식이 리메이크돼 한류로 뜨고, 지안이 새로운 문화 중심으로 부상할 수 있게 된다. 고구려 테마파크가 지안에 세워지고 조선족이 운영에 나서면 걱정은 빠르게 사라질 것이다.
김종민 전 문화관광부 장관/한국콘텐츠공제조합이사장 kimzongmin@hotmail.com
-
이경민 기자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