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 태어난 아기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엄마의 보살핌이다. 엄마 젖은 아기에게 세상의 전부다. 아기에게 ‘좋은 젖’은 배가 고플 때 금방 나타나는 젖이다. ‘나쁜 젖’은 울고 있어도 나타나지 않는 젖이다. 한동안 아기는 그 둘이 같은 엄마의 것인지 모르고 ‘좋은 젖’과 ‘나쁜 젖’을 나누어 별도로 생각한다.
아기가 자라면서 좋은 젖과 나쁜 젖, 즉 좋은 엄마와 나쁜 엄마가 같은 엄마임을 알게 된다. 이러한 통합적 사고는 어른이 되어서 세계관의 기본이 된다. 어른이 되어서도 세상을 흑과 백으로 나누어 보는 사람은 같은 엄마를 좋은 엄마와 나쁜엄마, 두 사람으로 나누어 보는 아기와 같이 미성숙한 사람이다. 성숙한 사람이라면 세상사의 흑과 백 사이에 존재하는 다양한 톤의 색조와 명암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흑과 백 사이에 있는 검은색에 가까운 회색부터 흰색에 가까운 회색까지도 모두 볼 수 있는 사람이 성숙한 사람이다.
다른 사람을 잘 믿지 못하는 성향이 있다면 어려서 구순기 발달에 장애가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배가 고파서 우는데도 엄마가 제때 젖을 물리지 않는 일이 자주 있었다면 세상이란 믿을 수 없는 곳이란 생각을 하며 자랐을 것이다. 그렇게 쌓인 불신은 쉽게 녹여내기 어렵다.
여성의 사회 진출이 늘어나면서 모든 엄마가 아기에게 모유를 먹여 키울 수는 없게 되었다. 모유냐, 우유냐의 문제보다 더 중요한 것이 아기와 엄마 사이에 이루어지는 마음과 몸의 소통이다. 우유병을 물리더라도 아기와 눈을 맞추고 편안한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면 원만한 성격 발달에 도움이 된다. 아기에게 젖을 물린 채 핸드폰으로 통화를 하고 문자를 하는 엄마는 상상하고 싶지 않은데, 생각보다 그런 일이 흔하다.
구순기 아기에게 쏟는 엄마의 사랑은 모자라도, 넘쳐도 다 문제다. 모자란 사랑을 채우기 위해 아기가 구순기에 계속 머물려고 하는 것을 고착(fixation)이라고 한다. 반대로 힘들 때 극복해 나가기보다 사랑이 넘쳤던 구순기로 다시 돌아와서 아기 같은 행동을 하는 것은 퇴행(regression)이라고 부른다. 고착되면 성격 발달이 원만하지
못하고, 퇴행하면 정신이 이상해진다.
사랑에도 정량을 지켜야 한다. 영국의 정신분석가 보울비(Bowlby)는 아기가 엄마와 정서적으로 연결되는 현상을 ‘애착(attachment)’이라고 하고 어려서 애착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원만한 성격 발달에 매우 중요하다고 했다. 그렇지 않으면 정신적 장애가 오게 됨을 장장 세 권의 책으로 펴내서 강조한 바 있다. 엄마의 사랑을 충분히 받으면서 자라면 안정적인 애착이 이루어지고 그런 아이는 커서 주변 사람과도 원만하게 지내며 쓸데없이 눈치를 보지 않는다. 어려서 엄마의 사랑이 변덕스러웠거나 냉대를 받았다면 애착이 불안하게 형성되고커서도 대인관계에서 심각한 장애를 겪게 된다. 어려서 ‘마음의 밥’을 제대로 먹었는지, ‘식은 음식’으로 겨우 허기를 면했는지, ‘굶기’를 반복했는지에 따라 어른이 되었을 때 몸은 자랐지만 마음은 미처 못 자랐을 수도 있다.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정신분석학자 정도언]
-정신과 전문의, 수면의학 전문의. 프로이트 학파 정신분석가(교육 및 지도 분석가).
-국제정신분석학회 산하 한국정신분석연구학회 회장.
-서울대학교의과대학과 서울대학교병원에서 교수로 재직 중.
-저서로는 `프로이트 레시피(웅진리빙하우스, 2015.04)`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