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소·중대형 이차전지 분야 시장점유율에서 지난 2011년 일본을 추월한 후 선두권을 유지하고 있다. 당시 국산 스마트폰 판매 호조가 시장 1위를 점하는 데 주효했고, 최근엔 다수 완성차 기업의 전기차 배터리 공급권까지 확보하며 탄력을 받고 있다. 당분간 시장 우위를 유지하겠지만 향후 시장 전망은 밝지 않다. 미국과 유럽·일본 등은 리튬 고갈을 우려해 리튬계 배터리 성능을 능가하는 비리튬계, 비화학물질 등 차세대 전지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 한국을 방문한 임레 국 미국 에너지부(DOE) 에너지 프로그램 본부장은 “한국은 당장 코앞의 시장에만 급급해 보인다”며 “이차전지 관련 산업을 주도하기 위해서는 리튬 배터리만 고집해서는 안 되며 다양한 배터리 기술 확보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와 관련 산업계 모두 차세대 배터리 개발을 위한 조짐이 보이지 않고 있다. 배터리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정부 주도 연구개발(R&D) 사업 중 리튬전지 관련 과제가 175건 진행됐다. 반면에 공기-아연, 공기-알루미늄, 마그네슘, 레독스플로 등 차세대 전지 개발·상용과제는 9건에 불과했다. 리튬계 과제는 기존 리튬전지 성능과 구조 개선이 대다수로 새로운 활물질 개발과 폭발 등 안정화, 가격 경쟁력 향상을 위한 게 대부분이다. 우리나라 기업이 주도하는 기존 제품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과제에는 공감하지만 리튬계에 지나치게 편중돼 있다는 지적이다.
반면에 미국은 이미 차세대 전지 상용화에 근접해 있다. 스탠퍼드대학은 음극에서 리튬이 석출되면서 부피가 팽창해 음극이 파괴되는 현상을 막는 기술을 개발했고 MIT는 최근 공기-리튬전지를 개발 중이다. 또 미군은 이미 리튬계 전지 대체 목적으로 공기-아연전지 상용화에 돌입했고, 후발업체들은 공기-알루미늄, 공기-마그네슘 전지 개발에도 나서고 있다. 화학전지를 벗어난 토륨 핵전지 개발도 시작됐다. 토륨은 우라늄보다 방사선 누출량이 훨씬 적고, 자체적으로 핵분열을 일으키지 않아 연쇄반응이 일어나지 않으므로 상대적으로 안전하다. 미군은 1회 장입으로 30년 이상 작동하는 군용 차량과 장비 개발을 목표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그 밖에도 단백질에서 발생하는 생체전류를 이용하는 바이오전지, 사람 움직임이나 장치 움직임에서 전류를 유도해내는 키네틱전지, 누름 압력으로 발생하는 전류를 이용한 압전 발전, 온도차로 전류를 생산하는 열전쌍 발전 등도 연구 중이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리튬전지는 우리나라가 시장을 주도하며 일본 소니나 산요 등이 전지사업을 중국으로 이전하거나 철수하게 만들 정도로 압도하고 있다”며 “하지만 리튬전지는 폭발적으로 증가하다가 고갈 이슈에 따른 원료가격과 제품수요 비대칭으로 어려움이 예상되는 만큼 포스트 리튬전지 개발에 정부가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박태준기자 gaius@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