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때 배운 부호인 ‘+(플러스)’는 생각보다 역사가 짧다. 그리스나 이집트 때부터 사용했을 것 같지만 1500년대에 만들어진 기호다. 우리가 생각하는 시대보다 훨씬 이후에 사용됐다는 이야기다. 세계 주요 문명지에서 더하기와 빼기 의미는 있었으나 기호는 중구난방이었다. 구텐베르크 인쇄술이 발달되고 책이 쏟아지지 시작하면서 로버트 레코드라는 영국 교재 집필가는 ‘+’와 ‘=’을 개발했고 기호는 직관성을 인정받아 널리 사용됐다.
갑자기 사칙연산을 말하는 이유는 초등학교 때 배웠던 사칙연산의 ‘더하면 많아진다’는 개념이 ‘더하면 많아지고 행복해진다’로 통용되는 사회 분위기를 다시 고민할 시기인 듯해서다. 사업가로서 30년 그리고 50년 넘게 인생을 살다 보니 사업과 삶에 적용되는 법칙을 발견했다. 법칙은 교실에서 배운 사칙연산과는 달랐다. 더한다고 풍족하거나 덜어낸다고 빈곤해지지 않는다는 것. 단순한 계산셈법이지만 사칙연산이라는 말 속에는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하는 중요한 교훈이 있다는 것이다.
대학교 시절, 스타트업을 시작하면서 끊임없이 더하는 삶을 살아왔다. 다양한 IT사업을 하는 동안 언제나 조급했고 매출을 더 올리기 위해 식사는 차 속에서 했다. 과도한 일정을 잡았고 안전보다는 속도를 중시하다 보니 교통사고로 한쪽 청력을 잃기도 했다.
혹독하게 더하는 삶을 살면서 깨달은 법칙이 있다. 더하는 것이 아니라 덜어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내가 가진 것들이 하나씩 없어지고 나면 오롯이 본인이 추구하는 것들이 드러나게 마련이다. 사업이든 인생이든 채움이 아니라 비워낼 때 더욱 가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는, 비움의 미학에 다가서게 됐다.
성인들은 비움의 미학을 당연하게 여긴다. 반면에 범인들은 비움의 가치를 알고는 있지만 내적으로 동기화하기는 녹록하지 않다. 그때 비움의 가치를 탐색할 수 있는 책을 읽으면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나는 여름휴가 때마다 동양 고전을 읽으며 묻는 작업을 되풀이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차 있을 때는 문제가 되던 것을 비우니 사라진다는 것을 깨닫는다. 욕심을 버리니 유혹에 덜 흔들리게 된다. 사업가로서, 한 명의 범인으로 정확한 판단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물론 덜어내는 작업은 간단치 않다. 단순히 덜어내는 게 아니라 지혜롭게 덜어내는 방법도 관건이다. 덜어냄은 관계 맺기에서 시작한다. 본인이 맺고 있는 관계는 본인이 투영돼 있다. 다른 사람을 비난하기 전에 나와 그 사람의 관계를 스스로 악화시킨 것은 아닌지 고민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작게는 가족과의 관계부터 회사와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직원에게 이해를 구하지 않고 고집스레 경영자 의견을 강요할 때, 회사 분위기는 수직적으로 변하는 것처럼 말이다. 협력업체와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협력업체와 손발이 맞지 않는다고 불평하기 전에 지나치게 영리를 추구하지는 않았는지 고민해봐야 한다.
사회와 관계도 마찬가지다. 간혹 한국사회의 분주함과 고단함에 지쳐 이민을 꿈꾸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사회의 분주함에 일조하지 않았는지 자기반성이 필요하다. 이웃의 열악한 상황에 관심을 가졌는지, 자타 구분을 넘어 타인 의견을 받아들였는지 등이다. 상황과 사회를 탓하기 전에 분주함을 덜어내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도 고민해야 한다. 이제 한 해를 마무리해야 하는 시기가 오고 있다. 연말에는 고전과 함께 덜어내는 작업을 하며 가족과 기업체 그리고 사회와의 관계 정립을 시도하려고 한다. 조금 더 많은 사람들이 고민을 함께했으면 한다.
김태섭 바른전자 회장(beccokr@bec.co.kr)
etnews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