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여보, 아버님 댁에 보일러 놓아 드려야겠어요!”라는 TV 광고가 주목을 받았다. 도시에 사는 아들네가 시골 부모에게 장작불 대신 보일러로 겨울을 나게 해주려는 대표적인 ‘효(孝)마케팅’ 사례다. 하지만 이 카피 문구는 머지않아 이렇게 바뀔 것이다. “여보, 아버님 댁에 전기 300㎾h 보내야겠어요! 심야시간에 충전했던 싼 전기로 겨우내 따뜻하게 지내시라고요.”
2003년 토머스 프리드먼은 지구온난화 문제 해결책 중 하나로 ‘에너지 인터넷’ 등장을 예견했다. 에너지를 데이터처럼 원격으로 주고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로부터 10여년이 지난 지금 세계는 스마트그리드 기반 스마트시티 구현을 놓고 경쟁하고 있다. PC가 서로 연결된 인터넷으로 정보통신사회가 완성됐듯이 신재생 발전원과 전기저장장치 등이 지능화된 전력망과 연계돼 에너지 공유체제가 갖춰진 스마트시티가 등장했다.
스마트그리드는 송배전전력망에 신재생발전원, 전기저장장치(ESS), 전기자동차(EV)와 충전설비 그리고 지능형전력량계(AMI)를 비롯해 스마트콘센트와 같은 센서장치 등이 하나로 연결되는 신에너지관리체계다. 우리나라는 이미 2009년부터 정부주도로 실증을 거쳐 상용 기술을 확보하고 있다.
스마트그리드 기반 스마트시티 진화는 4단계로 진행된다. 먼저 가정이나 건물이 지능화된 ‘스마트홈’, 2단계는 스마트홈이 그룹화된 ‘스마트타운’, 3단계는 스마트타운이 모인 ‘스마트시티’ 그리고 마지막은 스마트시티가 융합된 ‘스마트스테이트’ 즉, ‘에너지 스마트국가’다. 이것이 완성되면 에너지 생산과 소비가 가장 최적화된 국가 단위 지능형 에너지관리체계가 만들어진다.
이 같은 목표 달성을 위해 다섯 가지 요소가 필요하다. 그중 세 가지는 한국전력 인프라를 이용해 시범 완료됐고 나머지 두 가지는 진행되고 있다. 완성된 첫째는 전기사용량과 피크를 절감할 수 있도록 에너지시설을 지능화하는 스마트그리드스테이션(SGS)이다. SGS는 이미 29개 사업장에 들어섰고 연말까지 73개가 추가로 구축된다. 두 번째는 ESS로 발전설비 가동률을 향상시키는 주파수조정(FR)용이다. 지난해 52㎿ 규모로 설치돼 올해는 8개 지역에 200㎿로 추가 확대된다. 세 번째는 EV충전인프라 구축이다. 한 번 충전에 150㎞씩 전국 어디든 연달아 갈 수 있는 ‘스타네트워크’가 이달 초 완성됐다. 주요 거점지역마다 충전소가 들어서고 제주도에는 전기차 충전회사도 출범했다.
그리고 추진 중인 사업은 ‘스마트 홈 EMS’다. IPTV와 융합해 가정에서 사람 대신 에너지소비를 최적 관리하고, 외출 시에도 가정의 에너지 과소비 여부를 알 수 있다. 마지막은 모든 스마트그리드 구성장치를 전력망과 연계해 운전하는 통합운영시스템 진화가 남았다.
스마트시티는 언제 어디서나 전기사용량을 모니터링하고 각각의 운영시스템에서 구성장치별로 최적 관리한다. 전기를 ESS에 충전했다가, 피크시간이 되면 자동으로 전력회사와 거래할 수도 있고, 멀리 사는 친척에게 송금하듯 전기를 보내줄 수 있다. 시시각각 수집되는 에너지 빅데이터는 폭우나 태풍, 화재와 같은 재난 시 사태파악은 물론이고 사고나 피해 확대를 예측해 적기에 대처할 수 있다.
한전은 최근 인구 5만명 도시를 대상으로 스마트시티 추진을 위한 사업을 검토 중이다. 도시의 전력망 운영손실은 최소하고, 신재생발전원과 ESS를 연결해 에너지를 효과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 안정적인 에너지 수급과 이산화탄소 배출 문제 해결이 세계적 최대 관심사인 만큼 우리 기술을 기반으로 인력, 기업, 기관이 협력해 그 어떤 나라보다 앞서서 에너지 신산업 시장을 주도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이 스마트시티 큰 그림을 그리고 추진하기 위한 선제적인 실행이 필요한 때다.
황우현 한국전력 SG&ESS 처장 hblue@kepc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