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서버 업계 진출은 국내 컴퓨팅 시장 변화 예고다. HP와 델 등 미국 기업이 주도해온 시장에 강력한 경쟁자로 부상하고 있다. 동시에 이는 우리나라 기업에 위기 신호다. 가뜩이나 글로벌 기업과의 경쟁이 힘에 버거운 상황에서 또 다른 공룡을 상대해야 하기 때문이다.
국내 서버 시장은 연간 1조원 규모에 이른다. 서버와 함께 핵심 인프라로 꼽히는 스토리지까지를 포함하면 국내 컴퓨팅 장비 시장은 연간 1조5000억원대로 추산된다.
매년 1조원이 넘는 이 시장을 글로벌 기업이 95% 이상 독식했다. HP만 해도 서버 시장 절반가량을 사실상 독점한 실정이다. 스토리지 업체 EMC 시장 점유율도 40% 이상이다. 이는 민간 영역뿐 아니라 공공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로 공공기관 컴퓨팅 장비 95%가 외산으로 채워져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거대 중국 기업까지 몰려온다면 국내 기업 입지는 위협 받을 수밖에 없다.
업계 관계자는 “가뜩이나 경쟁이 힘겨운 상황에서 가격 경쟁력이 앞서는 중국 업체까지 가세하면 국내 기업은 샌드위치 신세가 돼 설 자리가 점점 더 없어질 것”이라며 “최악의 경우 국내 제조 근간이 모두 사라질지 모른다”고 말했다.
국내 제조사는 보호 장치가 절실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부, 지자체 등 공공 부문이라도 국산 장비를 구매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중소기업 숨통을 열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제조사 단체인 한국컴퓨팅산업협회는 이 같은 이유에서 서버·스토리지가 ‘중소기업자 간 경쟁제품’으로 지정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중기경쟁제품은 국내 제조 기반을 둔 중소기업을 공공시장에서 우대하는 제도로, 3년마다 품목을 지정하는데 중기경쟁제품이 되면 대기업과 외국계 기업은 해당 제품을 공공기관에 판매할 수 없다. 국내 제조 기반을 갖춘 중소기업만 공공기관 판매가 가능하기 때문에 중소기업으로서는 일정 판로 확보가 가능하다.
하지만 이 역시 시행이 쉽지 않다. 반대가 적지 않아서다. 국내 제조사는 외산장비 의존도가 심각해 서버·스토리지 중기경쟁제품 지정이 시급하다고 주장하는 반면에 외국계 기업은 외산 제품 차별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동안 외산 제품을 유통해온 국내 협력사는 또 다른 중소기업 피해를 야기한다며 반대하고 있다.
공공기관에 외산 서버를 납품해온 A업체 대표는 “몇 안 되는 국내 제조사를 위해 서버·스토리지를 경쟁제품으로 지정하는 것은 또 다른 특혜 시비가 될 것이고 그동안 외산 제품들로 사업을 해온 국내 중소기업을 고사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윤건일기자 benyun@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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