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가 2030년까지 도내 37만여대 자동차를 전부 전기차로 바꾸는 원대한 도전에 들어갔다. 현재 보급 중인 평균 주행거리 150㎞ 정도인 전기자동차 쏘울로도 45㎞ 떨어진 제주시와 서귀포를 횡단하는 데 무리가 없고, 180여㎞인 섬 일주도 한 번 정도 충전이면 가능하다.
배터리에 축적된 전기로 모터를 회전시켜 자동차를 구동시키는 전기자동차는 1873년에 가솔린 자동차보다 먼저 개발됐다. 냄새와 진동이 적고 소음이 없는데다, 구조가 간단하고 기어를 바꿀 필요가 없어 운전하기 쉬운 점 등 여성용으로 인기가 있어 1912년에 생산과 판매가 정점에 달했지만 텍사스 원유 개발에 따른 휘발유 가격 하락과 내연기관 대량 생산에 따른 가격 차이로 1930년대에 시장에서 사라졌다. 다시 1990년대 이후 고유가와 배기가스 등 환경 규제가 강화되면서 개발에 속도가 붙었고 요즘 들어 급성장세다.
에너지와 전기자동차 전문가인 토니 세바 교수의 최근 저서 ‘에너지 혁명 2030’을 읽으면 정말 그리될 수 있을지 전율을 느낀다. 2020년이나 늦어도 2030년이면 휘발유 자동차 종말을 예견했다. 코닥 필름이 사라지고 디지털 카메라로, 우리 생활의 중심이 된 손안의 컴퓨터 스마트폰이 새로운 가치를 부여함으로써 기존 유선전화를 대체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전기자동차는 가솔린차와는 비교하기 힘든 높은 에너지 효율과 낮은 충전 비용, 저렴한 유지비, 가솔린차에서는 불가능한 5년 또는 6만마일 무료 연료제공이나 무료 유지보수 등 혁신적인 비즈니스 모델이 가능하다. 또 연간 원가개선 비율 16%를 고려하면, 현재 ㎾h당 400달러 수준인 배터리 가격이 2020년에는 휘발유차와 가격 경쟁력에서 우위에 서고, 2025년에는 100달러 이하로 떨어질 것으로 예측된다.
2017년 출시 예정인 테슬라 차세대 모델 ‘테슬라 E’ 신차 가격이 3만5000달러로 전망된다는 보도가 이를 입증하고 있다. 또 배터리 가격 100달러가 되면 3만달러에 포르쉐급 성능 전기차를 살 수 있는데 누가 일반 가솔린차를 사겠냐며, 가솔린차 시대가 끝날 것이란 합리적 가설까지 나온다.
2013년 ‘모터 트렌드’는 설립된 지 10년도 안 된 테슬라 ‘모델S’를 올해의 자동차로 선정해 우리를 놀라게 했다. 실리콘밸리 컴퓨터회사에서 시작한 테슬라는 전기자동차로 매출은 포드자동차의 1%에 불과하지만, 시가총액은 포드 4분의 1에 이르러 기염을 토한다. 지난번 미국 출장에서 들은 “모델S를 타는 것이 요즘 젊은이의 로망”이라는 현지 법인장 얘기가 새삼스럽다.
세계 자동차 산업에서 뒤진 것을 일거에 만회하겠다는 기세로 매진하고 있는 이웃 중국의 BYD를 비롯한 전기차업계 도약도 정말 대단하다. 중국 정부는 지난 5일 국무원이 새로 지어지는 주택 주차장은 반드시 전기차 충전시설을 함께 건설하거나 이를 위한 예비공간을 남겨 둬야 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전기자동차가 단순한 기계가 아니라 네트워크로 연결된 모바일 기기라는 점에서 성큼 다가 온 자율주행차량 시대에 가장 적합하리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어 보인다.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충전에 소요되는 시간과 일회 충전으로 주행할 수 있는 거리에 따른 ‘주행거리 불안증’도 조기 해소가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5∼10년 사이에 500∼1000마일 주행이 가능하고 완전 충전에 몇 분밖에 걸리지 않는 배터리 기술로 단계적 진전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테슬라 경영진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우리 삼성SDI나 LG화학 배터리 기술 개발 속도를 보면 충분히 짐작이 간다. 정말 무서운 혁신의 시대다.
우리 정부도 지난해 7월 에너지 신산업의 하나로 전기차 충전서비스 유료화 사업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지난 8월 한국전기차충전서비스가 전기차가 가장 활성화된 제주에서 출범했다. 한전, 현대·기아차, KT, 비긴스와 제주 스마트그리드협동조합이 출자해 설립된 한국전기차충전서비스는 2018년까지 제주도를 중심으로 3000여기, 전국 공공기관에 600여기 충전기를 설치할 예정이다. 또 개별 전기차 이용고객을 대상으로 한 홈 충전 인프라도 약 9만호에 설치하는 등 전기차 보급 추이에 맞춰 사업을 유연성 있게 운영, 충전 인프라에 따른 전기차 보급 지연이 없도록 최선을 다함으로써 창조경제 성과 창출을 견인하고자 한다.
최근 발생한 폭스바겐 사태로 디젤의 친환경성이 문제 되면서, 그 대안인 전기차 활성화를 위한 범정부 차원 법과 제도 정비, 연구개발 지원과 적정한 서비스 요금 체계의 조속한 확립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로써 충전기 이용 고객의 합리적인 소비가 가능하고, 관련 기업은 적정 수익을 기반으로 재투자함으로써 전기차 이용에 불편함이 없도록 충전 인프라를 확충해야 할 것이다.
앞서 예측에서도 알 수 있듯이 본격적 성장을 앞둔 전기차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을 떨쳐 버리고 민관이 힘을 합쳐 경쟁력 있는 전기차, 충전기술 개발과 관련 인프라 조기 보급을 통한 전기차 산업 생태계 조성에 총력을 기울여야 할 때다. 배터리를 포함한 우리 기업의 세계 시장 선도와 관련 기술, 시스템 수출도 기대해 본다.
박규호 한국전기차충전서비스 사장 khpark@kevc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