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태의 IT경영 한수]<85> 대기업 후계자는 왜 꼭 아들이어야 하나?

[이강태의 IT경영 한수]<85> 대기업 후계자는 왜 꼭 아들이어야 하나?

우리나라 사업가들은 왜 자기가 피땀 흘려 일군 기업을 자기 자식에게 물려주려 하는가. 자기 기업은 자기 인생 그 자체기 때문에 너무나 소중해서 직계 가족이 아니면 안 된다고 생각할까. 왜 아들에게 물려주면 자기보다 더 기업을 발전시킬 것이라는 생각하는가. 아들의 경영능력이 아버지에게서 유전이라도 된다고 믿는 건가. 나중에 은퇴를 하더라도 아들은 최소한 핏줄이니 배신은 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하는 건가. 내가 그동안 충분히 경영수업을 시켰으니 누구보다도 아비 뜻을 잘 받들어 기업을 더 발전시킬 것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아니면 망하더라도 내 자식이 망치면 덜 억울하다는 생각인가.

재벌 2세가 해외에서 공부하고 들어오는 사례도 많다. 그리고 아버지 기업을 물려받자마자 아버지보다 더 경영을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에서 공격 경영이니 업종 다각화니 새로운 먹거리 사업이니 하면서 벌이다가 회사 망친 때도 많다. 아예 큰 재벌은 그래도 가신이 있어서 이리저리 조언도 하고 안정된 주력회사 수익이 있어 신임 회장이 헛손질을 해도 그런대로 버텨내지만 중소기업 쪽으로 가면 신임회장의 폼 나는 경영 덕분에 한 방에 가는 일이 허다하다.

지난번 칼럼에서도 얘기했지만 회장이나 최고경영자 역할은 치명적일 만큼 중요하다. 몇 천명에서 몇 만명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회장 자리에 누가 오는지가 그 기업 명운을 결정한다. 회사는 회장의 그릇만큼 성장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중요한 자리의 회장을 선정하면서 일단 내 아들이어야 한다는 조건을 걸고 후계자를 물색하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된다. 당연히 가장 잘 경영할 사람을 오랜 기간 폭넓게 찾아야 한다. 그래도 내 아들이 그 중 제일 낫다면 시켜도 된다. 그러나 아들을 먼저 후계자로 찍어 놓고 아들을 잘 교육시켜서 훌륭한 경영자로 만들겠다고 하는 접근 방법은 정말 잘못된 것이다.

나도 내 아들이 소중하고 예쁘다. 뭐든 원하는 대로 해주고 싶고 뭘 줘도 아깝지 않다. 그러나 예쁘고 사랑스러운 것과 내 기업을 물려주는 것은 별개 문제다. 재산을 물려주는 것과 기업을 물려주는 것은 구별해야 한다. 재산은 줘도 된다. 재산은 안정적으로 조심해서 투자하면 크게 망할 일은 없다. 재산은 조금 게을러도 스스로 굴러 가면서 수익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기업은 매 순간 경쟁해야 하고 경쟁에서 지면 망한다. 기업이 망하면 딸린 식솔 생계가 막막해진다. 도대체 무슨 근거로 내 아들이 우리 회사 내부의 오래된 임원보다 또는 다른 전문경영인보다 더 잘 경영할 것이라고 믿는가. 외국에서도 전통적으로 가업을 이어받는 일이 있지만 이들도 다 확실한 검증 절차를 거친다. 확실한 경력과 업적과 평판이 있다면 아들에게 물려 줘도 된다. 그렇기 때문에 아들에게 물려주기 위해서는 충분한 검증절차를 거쳐야 한다. 그런 치밀한 검증절차 없이 아들을 우선적으로 선정하고 밑바닥 일부터 안 시키고 외국 지사에 보내고, 30대도 안 돼 임원으로 진급시키고, 기획부서에 배치해서 실적과는 거리가 먼 곳에 두고, 경력에 흠이 없도록 보호해 가면서 회장을 시키면 그런 아들이 경영을 빼어나게 할 가능성은 극히 적다. 현장과 세부 사업을 모르는 회장은 실행에 약할 수밖에 없다. 회장 입장에서는 아들을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다른 임원을 아들처럼 애정 어린 눈으로 보고 육성하면 솔직히 아들보다 경영 못할 임원은 거의 없다.

아들이 다른 곳에서 일할 능력이 없고 아버지 일이라도 감지덕지 받고자 한다면 할 수 없겠지만 대기업은 속 깊은 효심과 착한 심성만 가지고 경영하기에는 너무나 복잡하고 너무나 위험이 크다. 그런데도 대기업 회장이 일단 아들을 왕세자로 선정하고 선왕이 가신들에게 후사를 부탁하듯이 이사회에 무조건적인 신임회장 지원을 요청하는 것은 정말 시대착오적이다.

외국은 이사회가 잘 발달돼 있어서 대표이사 독주를 견제하고 또 중요 결정사항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서 회사가 바른 방향으로 가도록 하는 견제와 균형 기능을 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이사회는 전부 회장 사람으로 채워져 있고 이들은 사외이사로 선정해 준 회장님께 은혜를 입고 있는 지인들이어서 견제, 균형과는 거리가 멀다. 이러니 신임회장 경영능력에 더욱더 그룹 명운이 달려 있는 것이다.

창업자 공과는 후계자 선정에서 완결된다. 후계자 선정과 후계 프로세스에서 참고할 만한 사례를 소개한다. 월마트를 위키피디아에서 찾아 보다가 다음과 같은 문구를 발견했다. 옮기기는 조금 긴 문장이지만 내용 중 뺄 게 없어서 그대로 인용하고자 한다.

월마트의 급성장은 ‘샘 월턴 창업자-데이비드 글래스-리 스콧으로 이어지는 CEO 승계를 단 한 번의 실수도 없이 완벽하게 해냈기에 가능한 일”이라는 게 전문가 평가다. 리 스콧 사장은 2001년 3월 27일 월스트리트 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월마트의 성공적인 CEO 승계 5대 비결’을 소개했다. 첫째, CEO 후보를 선발한 뒤 여러 분야를 경험시켜라. 전임 CEO였던 글래스는 퇴임 5년 전부터 후보자를 선별, 다양한 분야 일을 맡기면서 경영자 훈련을 시켰다. 둘째, CEO 후보를 이사회와 최대한 많이 접촉시켜라. 이사회가 원하는 리더십, 기업 방향이 무엇인지 일찍부터 깨닫고 이를 준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셋째, 전임 CEO와 충분한 대화를 나눠라. 글래스는 CEO 퇴임 전후에 오랜 승계기간을 갖고 스콧 사장과 끊임없이 대화했다. 서로의 장단점, 예상되는 문제점을 짚어본 덕분에 승계에 따른 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 넷째, 부하 직원 보고를 받을 때는 CEO 책상이 아닌 편한 장소를 택하라. 스콧 사장은 취임 초기 CEO 책상에 앉아서 딱딱하게 보고받는 일을 피했다. 부하 직원들이 긴장을 풀고 편하게 새 CEO를 맞이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다섯째, 겸손하라. 명령만 내리면 모든 일이 이뤄질 것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직원을 통하지 않고는 아무 일도 이룰 수 없다. 월마트는 사외이사 16명이 전문경영인이거나 투자자, 은행가 등으로 구성돼 있으며 교수는 단 한 명도 없다.

CIO포럼 명예회장(명지대 교수) ktlee777@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