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타결 후 한국이 참여하지 않은 것에 실기론이 끊이지 않는다. 박근혜 대통령이 방미 기자회견에서 TPP 협력을 언급할 정도로 관심이 높다. 이에 자극받아 대형 FTA인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협상도 속도를 내고 있다. RCEP는 한국이 참여해 조명받는다. TPP와 RCEP는 많은 나라가 참여하고 파급력이 크다는 점에서 닮은 꼴이다. 반면에 출범 배경과 참여국 면면을 들여다보면 다른 모습을 지녔다. 세계 통상지도를 뒤바꿀 양대 ‘메가 FTA’를 살펴본다.
TPP는 지난 5일 미국에서 최종 타결됐다. 2006년 뉴질랜드·싱가포르·칠레·브루나이를 시작으로 미국·호주·베트남(2010년 합류), 캐나다·멕시코(2012년), 일본(2013년) 등 12개국이 참여한 역대 최대 규모 FTA다. 전체 회원국 GDP 규모가 세계 GDP 40%에 육박한다. 교역 규모는 세계 교역 4분의 1에 달한다.
미국과 일본이 협상을 주도하면서 개방 폭이 넓다. 상품 양허뿐만 아니라 비관세장벽에 해당하는 규범 협정도 높은 수준에서 마련됐다.
RCEP는 2012년 11월 동아시아 정상회의를 계기로 출범했다. 아세안(ASEAN) 10개국과 한국·중국·일본·호주·뉴질랜드·인도 총 16개국이 참여했다. 2013년 5월 공식협상 개시 후 열 차례 공식협상과 세 차례 장관회의가 열렸다.
RCEP는 TPP에 빠진 중국·인도 등이 포함돼 규모에서 뒤지지 않는다. 회원국 GDP와 교역이 세계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모두 29.0%다. GDP 비중은 TPP를 밑돌지만 교역 비중은 TPP를 웃돈다.
한국의 RCEP 회원국 상대 수출액은 2868억달러로 TPP(1876억달러)보다 많다. 수출·교역 상대 1위 국가인 중국 효과다.
RCEP는 TPP에 비해 진행 속도가 더디다. 회원국은 당초 2015년 실질적 타결을 기대했으나 사실상 물 건너갔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기본적으로 참여국이 많다. 상당수 회원국이 개도국이어서 눈높이를 맞추기 쉽지 않다.
지난주 부산에서 열린 10차 협상에서 ‘실질적 시장접근’ 협상을 시작한 것은 성과다. TPP 타결에 자극받은 회원국이 보다 빠른 진행 의지를 보였다.
RCEP는 상대적으로 개방 수준이 낮다. 이른바 ‘CLMV(캄보디아·라오스·미얀마·베트남)’ 국가에 예외를 인정했다. 중국은 자국 산업 보호에 민감하고 인도 역시 높은 자유화가 부담스럽다. 서진교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무역통상실장은 “TPP와 RCEP는 체급이 다르다”고 말했다.
RCEP가 무의미하다는 뜻은 아니다. 서 실장은 “RCEP가 TPP에 비해 개방수준이 낮지만 우리가 아세안 등과 맺었던 기존 FTA에 비해서 업그레이드되는 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은 RCEP 회원국 중 일본을 제외한 모든 나라와 양자 FTA를 체결했다. RCEP 개방 수준이 TPP만큼 높지 않더라도 기존 양자 FTA보다 한걸음 더 나아갈 것이라는 전망이다. 회원국 간 누적원산지가 적용되는 것도 중요한 실익이다.
RCEP 가장 큰 문제점은 개방 수준이 아니라 협상 동력에 있다. RCEP 핵심 국가는 중국과 일본이다. 중국이 TPP 대항마 차원에서 RCEP를 주도한다는 분석이 있지만 현실은 다르다. 종전까지 중국은 RCEP를 적극적으로 이끌지 않았다. 일본과 정치적 관계 등이 맞물린 탓에 중국 뜻대로 할 수 있는 그림도 아니다.
한국은 TPP와 RCEP를 놓고 고민이 많다. TPP는 쫓아가는 형국이다. 한국은 TPP 출범 초기에는 FTA 국민 공감대 부족, 이후에는 중국과 FTA에 주력하느라 참여 기회를 놓쳤다. 지금은 대통령이 직접 ‘TPP 이익론’을 언급할 정도로 참여를 희망하는 상황이다.
전반적으로 TPP 참여가 우리 수출에 도움된다는 기대가 높다. 뒤늦은 가입으로 인한 ‘통행료’가 관건이다. 통행료가 기대이익보다 높은 것으로 판단되면 RCEP를 비롯해 대기 중인 다른 메가 FTA로 보완하는 전략도 필요하다.
RCEP는 다자 FTA에서 미흡했던 정부 통상 전략을 재검증할 수 있는 기회다. TPP와 RCEP 회원국 중 우리에게 가장 민감하면서도 중요한 나라는 일본이다. 일본이 FTA를 확대해 앞서 나가는 것을 막는 동시에 한일 간 FTA 득실을 면밀히 분석해 대응해야 한다.
이호준기자 newlevel@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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