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회사가 지속적으로 혁신을 시도한다. 그러나 성공한 회사는 드물다. 혁신에 성공한 회사도 조금 시간이 지나면 과거 성공에 집착하다가 다시금 정체와 퇴보의 길을 걷는다. 어쩌면 혁신은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처럼 끊임없이 도전하고 노력해야 하는 기업의 숙명과도 같은 것이다.
우리의 경영환경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 변화 속도는 우리가 생각하는 속도보다 항상 빠르다. 잠깐 한눈팔면 바로 뒤처진다. 환경이 빠르게 변하기 때문에 우리도 그 변화에 맞춰 변해야 생존하고 번영한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빠른 자가 살아남는다고 하지 않는가.
지금 경영 환경이 지향하는 바는 명확하다. 디지털이다. 디지털 파괴(Digital Disruption)를 통해 각 산업이 유동화(Liquidation)되고 있다. 지금 모든 산업에서 파괴적 혁신이 진행되고 있다. 공공·금융·의료·교육·제조·물류·유통 모든 분야에서 IT를 바탕으로 하는 융합이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상품, 서비스, 시장, 고객이 창출되고 있다. 분명한 것은 지금의 모든 혁신은 디지털 파괴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융합도 서로 다른 산업을 IT로 엮어야 가능하다. IT를 통한 디지털 혁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면 경쟁에서 이길 수 없다. 당연히 혁신의 시작점과 속도도 매우 중요하다.
깨어 있는 회사는 어떻게든 혁신함으로써 변하려고 하고 있다. 대개는 회장이나 최고경영자가 전면에 나서서 혁신 필연성을 주창한다. 그리고 전략 컨설팅을 받고 SI회사를 불러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고 임직원을 교육한다. 홍보팀에서는 부지런히 회장이 혁신 필요성을 임직원에게 직접 설명하는 사진을 언론에 내보내기도 한다. 2, 3년 부지런히 혁신을 밀어 보지만 그 뒤에는 곧 잠잠해진다. 그동안 정부 정책도 바뀌고, 경영진도 바뀌고, 기술도 변하고, 경영환경도 변하기 때문에 2, 3년 전 그림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밀어붙이기가 힘겹게 된다. 그러면 경영 초점이 곧바로 혁신에서 운영으로, 변화에서 생존으로 다시 되돌아 가버린다.
우리나라에서 혁신에 성공한 대기업을 찾아보기 힘들다. 반면에 중소기업에는 많은 사례가 있다. 그 이유는 조직이 커지면 뭘 해도 속도가 날 수 없기 때문이다. 혁신에서 중요한 포인트는 방향과 속도다. 그래서 기업이 커가더라도 항상 몸집을 가볍게 가져가야 한다. 한번 커지면 다시 줄이기가 무척 힘들다. 우리나라는 더욱 그렇다. 기업의 초기부터 혁신이 기업 DNA에 입력돼 있어야 한다. 기업 성장 단계별로 다양한 혁신 프로그램이 상시로 돌아가야 한다. 지금 우리나라 매출 상위 500대 기업 10%가 돈 벌어서 이자도 못 내는 좀비 기업이다.
그동안 시도한 많은 혁신이 용두사미로 끝난 이유가 뭔가. 혁신을 임직원 정신 재무장으로 보기 때문이다. 변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임직원을 위협했지만 막상 어디로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 명확하게 보여주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다가 다른 큰일 터지고, 사장 바뀌고 나면 흐지부지된다. 혁신은 시작도 중요하지만 마무리 역시 매우 중요하다.
그럼 혁신은 무엇으로 완결되는가. 혁신을 처음 기획하고 계획하고 추진했었을 때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것은 새로운 비즈니스 프로세스가 정착돼 잘 운용되는 것이다. 혁신을 통해 예전 프로세스의 비합리적이고 비효율적 부분을 합리적, 고효율로 고친 새로운 비즈니스 프로세스가 기존 프로세스 위에 새롭게 잘 장착되도록 해야 한다. 새로운 프로세스를 지원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IT시스템이 잘 개발되고 운영돼야 한다. 새로운 IT시스템이 제대로 지원하지 못하는 새로운 비즈니스 프로세스는 사상누각이다. 새로운 비즈니스 프로세스로 정착되지 못한 혁신은 혁신이 아니다. 말과 구호만 무성하고 실제로는 변한 게 없는 혁신을 한 것이다.
혁신의 큰 그림을 그리는 컨설팅 회사와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하는 회사가 다른 때도 많다. 한 회사에서 조차 책임지는 두 임원의 생각이 서로 다른 경우도 허다한데 하물며 서로 다른 회사는 혁신 목표와 잘 정렬(Alignment)된 시스템을 구축하기 어렵다. 그래서 시작은 창대했지만 결과는 미미한 수많은 혁신사례가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혁신은 단순히 매출을 늘리거나 비용을 절감하자고 하는 수익극대화 작업이 아니다. 기존 상품, 서비스, 시장, 고객이 아닌 새로운 상품, 서비스, 시장, 고객을 창출해 내기 위한 새로운 차원의 파괴적 도전이다. 그냥 말로 하는 뼈를 깎는 아픔도 아니요 마른 수건 짜기도 아니다. 전혀 다른 회사로 변신을 도모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만큼 위험도 따른다. 우리가 수시로 자주하는 존속적 혁신이 아닌 파괴적 혁신을 해야 한다. 그 파괴적 혁신도 회사의 기본 문화로, 최고경영자 철학으로 자리잡고 있어야 한다.
혁신은 새로운 IT시스템 정착으로 완결된다. 혁신을 임직원 정신 재무장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혁신을 더 열심히 일하자는 다짐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 그러면 임직원이 혁신을 마지못해 따라가기만 한다. 다들 뒷전에 서서 웅성거리기만 한다. 굳이 자꾸 변해야 한다고 윽박지를 필요 없다. 벤처나 중소기업이 아니면 대기업 임직원 의식을 개조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의식개혁 대신에 시스템을 바꾸면 된다. 그들이 매일 사용했던 익숙한 시스템을 전혀 새롭게 바꿔버리면 된다.
혁신 정신과 목표에 부합하는 IT시스템을 잘 구축해서 혁신이 새로운 비즈니스 프로세스로 돌아가고 있으면 임직원도 자연스럽게 혁신에 참여하게 된다. 참여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 혁신이 단계별로 완결되게 된다.
혁신은 우리가 경험한 것처럼 ‘시작은 쉽고 완결이 어려운 것’이 결코 아니다. 오히려 ‘시작은 어렵고 완결이 쉬운 것’이다. IT를 매개(Leverage)로 하면 그렇게 된다.
CIO포럼 명예회장(명지대 교수) ktlee777@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