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 생명 그 자체

프랜시스 크릭 저. 김명남 옮김. 김영사. 264쪽. 1만3천800원.

‘지구의 생명체는 40억년 전 외계인이 우주선에 실어 보낸 생명의 씨앗에서 시작됐다.’

이 책 ‘생명 그 자체’(The Life Itself, 1981)의 결론이다.

일견 과학소설(SF)처럼 황당해 보이는 저자의 주장에는 분명 미싱 링크가 있다. 하지만 단순히 웃어 넘기기엔 너무나 유용하고도 진지한 많은 과학적 탐구와 성찰이 담겨있다.

저자 프랜시스 크릭(1916~2004)은 1953년 토머스 왓슨과 함께 DNA의 이중나선 구조를 발견했고, 그 공로로 노벨상을 수상한 과학자다. 그는 생화학자 레슬리 오겔과 함께 그 위대한 연구성과에서 좀더 나아가기로 했다. 지구의 생명체가 도대체 어떻게 생겨났는지에 대한 의문 풀기에 나섰고 이 책은 그 결실이다.

그의 정향 범종설(directed panspermia)에 따르면 지구 생명체의 씨앗은 그냥 지구에 퍼진 것이 아니다. 고도로 발달한 문명을 가진 외계의 지적생명체가 특정한 의도를 갖고(directed) DNA를 담은 생명의 씨앗을 우주선에 실어 보낸 것이다. 이들이 진화를 거듭해 오늘 날의 지구 생물계가 만들어졌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저자는 프롤로그에서 “이 책의 내용은 대부분 페르미 논증의 각 단계를 자세히 따져보는 것이다”라고 쓰고 있다.

이태리의 천재 물리학자 엔리코 페르미(1901~1954)의 주장이란 무엇이었던가?

페르미는 1950년 친구들과 식사를 하면서 우연히 외계인에 대한 얘기를 하다가 방정식 계산을 통해 무려 100만개의 문명이 우주에 존재해야 한다는 가설을 도출했다. 하지만 그처럼 수많은 외계문명이 존재한다면 어째서 인류 앞에 외계인이 나타나지 않았느냐며 “(그래서) 그들은 어디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이른 바 페르미역설(Fermi Paradox)이다.

프랜시스 크릭은 자신의 주장을 과학적으로 입증하기 위해 생물학은 물론 우주의 시간과 거리, 우주와 별과 행성의 형성 기원, 그리고 외계 지적 생명체가 만들었을지 모르는 우주선에 대해서까지 고찰한다.

그는 “허버트 웰스, 쥘 베른은 소설에서 인간의 달 탐사, 놀라운 잠수함 등을 묘사했는데 이런 것들은 결국 현실이 되었다. 한편 과학자들은 미래를 잘 내다보지 못한다”라며 상상이 현실로 된 이야기를 들어 반대론자들에 반박하기도 한다.

다만 그는 신들의 수레(CHRIOTS OF THE GODS?)같은 책을 쓴 에리히 폰 데니켄의 외계인 지구방문설에 대해서는 부인하면서도 결과적으로는 상상력을 발휘하자며 그 존재를 인정한다.

프랜시스 크릭. 사진=위키피디아
프랜시스 크릭. 사진=위키피디아

끊이지 않는 외계 지적 생명체 존재 논쟁 속에서도 프랜시스 크릭의 저서는 여전히 흥미롭게 읽힌다.

정향범종설은 한낱 공상에 빠진 과학자의 주관적인 견해일 수도 있다. 다만 프란시스 크릭의 저서 이후 등장한 놀라운 우주 탐사 성과들이 너무나도 흥미롬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일례로 지난 20년 간 다른 태양계에서도 지구처럼 생명체가 살기 좋은 환경을 가진 외행성(골디락스)이 계속해서 발견됐다. 이는 외행성에 (반드시 지적생명체는 아닐지라도) 최소한 생명체가 존재할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최근 화성에서 소금물이 흐르는 흔적이 발견된 것도 화성의 생명체(미생물) 발견 가능성에 대한 기대감을 높여 주고 있다.

프랜시스 크릭은 책 후반부에서 `100만광년 쯤 되는 곳으로 이동하기 위해 외계지적생명체가 직접 나서지 않고 100kg정도 되는 미생물을 우주선에 탑승시킬 수 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흥미롭게도 그의 아이디어들은 지난 해와 올해 상영된 우주 소재의 영화 속에도 스며 들어가 있다.

도입부에서 외계에서 온 지적생명체에 의한 지구생명체 탄생설을 암시하는 영화 `프로메테우스’(2014)가 그 중 하나다. 또한 지구밖 식민지를 건설하기 위해 인류를 통째 이주시키는 대신 수정란을 우주선에 실어 보내는 내용이 들어간 영화 ‘인터스텔라’(2015)도 맥을 같이하고 있다. 미생물이 수정란으로 바뀌었을 뿐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프랜시스 크릭의 주장을 반드시 액면 그대로 받아 들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여기에서는 재치 넘치는 우주학의 스승 칼 세이건박사(1934~1996)가 그의 저서 코스모스(1980)에 쓴 글을 참고하면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우주에는 은하가 대략 1천억개 있고 각각의 은하에는 저마다 평균 1천억개의 별이 있다...... 게다가 각 은하에는 적어도 별의 수만큼의 행성들이 있을 것이다. 이토록 어마어마한 수의 별들 중에서 생명이 사는 행성을 아주 평범한 별인 우리 태양만이 거느릴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코스모스의 어느 한 구석에 숨은 듯이 박혀있는 우리에게만 어찌 그런 행운이 찾아 올 수 있었을까? 우리의 특별한 행운을 생각하는 것 보다 우주가 생명으로 그득 넘쳐난다고 생각하는 편이 훨씬 더 그럴 듯 하다. 그러나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 우리는 아직 모른다.”

전자신문인터넷 이재구국제과학전문기자 jk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