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수금은 없다. 패소시 소송비용 전액을 부담한다.”
국내 한 변리사가 굴지의 글로벌 업체와 체결한 계약서 일부다. 강압이 아닐까 의심될 정도다. 불리한 문구 일색이나 변리사가 자청해 이뤄진 계약이었다.
더욱이 소송 상대는 지멘스·김앤장 연합. 이 골리앗을 상대로 ‘다윗’을 자처한 이는 바로 석기철 5T국제특허법률사무소 변리사(공학박사)다.
발단은 지난 2011년 포스코의 한 프로젝트. 이탈리아 철강사 다니엘리는 포스코가 발주한 프로젝트에 입찰 참여했지만 포스코는 입찰자 명단에서 다니엘리를 뺐다. 지멘스 보유 특허(제174627호)를 침해했다는 이유에서다.
미국에서 이미 같은 종류 제품을 생산·납품한 바 있는 다니엘리는 지멘스 특허를 무효화할 묘책이 필요했다. 다니엘리의 선택은 석 변리사였다. 석 변리사가 국비 유학 시절 2년간 직무연수를 받은 이탈리아 특허법률사무소가 중간다리 역할을 했다.
하지만 특허심판원(1심)은 지멘스 손을 들어줬다. 포기하려는 다니엘리 측을 오히려 설득한 건 석 변리사다. 그의 표현대로 ‘세상에서 가장 멍청하고 전무후무한 계약서’도 바로 이때 체결됐다.
결국 지난 2013년 9월 특허법원(2심)은 ‘발명 목적’과 ‘청구항 구성 1항’ 모두에서 지멘스 특허가 진보성이 없다고 판결했다.
배수진을 친 변리사 1명이 변호사 3명과 변리사 4명으로 중무장한 김앤장을 앞세운 지멘스에 승리한 순간이다. 지멘스는 대법원에 상고했지만 3개월 뒤 이를 취하하면서 3년여에 걸친 소송은 최근 막을 내렸다.
특허소송이 늘면서 전문성 제고가 중요해졌다. 여기에 지지 않겠다는 ‘집념’과 믿음에 보답하겠다는 ‘열정’이 보태진 결과가 바로 이번 승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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