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태의 IT경영 한수]<87>이사회는 왜 존재하는가

애플이 또 사상최고 실적을 올렸다.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22%, 순이익은 31%, 판매량은 36% 증가했다. 알리바바도 실적이 좋고, 아마존도 주가가 급등했다. 미국 ICT기업 실적은 이렇게 좋은 데 왜 우리 기업은 부러운 눈으로 쳐다만 봐야 하는가? 미국은 금리를 올려야 한다고 할 정도로 경기가 좋은데 우리는 연일 확대 재정을 써서라도 경기를 활성화 하겠다고 난리인가? 어쩌다가 한국 기업이 예전 역동성을 잃고 힘없이 구조조정 대상이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많은 전문가가 정부 정책적 지원 부족, 강성 노조 횡포, 재벌의 불투명한 지배구조를 손꼽고 있지만 내가 보기에는 이사회가 제 역할을 못하기 때문이다. 이사회 주요 기능은 △경영목표와 전략 설정 △경영진 임면 및 경영진에 대한 감독 △경영성과 평가와 보상구조 결의 △주요 경영사항에 대한 의결이다. (기업지배구조센터 이사회 운영 가이드라인)

애플 기사를 검색해 보면 애플 이사회 의장은 바이오 기업 제넨택 CEO 출신인 아서 레빈슨이고, 이사회 멤버로는 엘 고어 전 부통령, 밥 아이거 월트 디즈니 회장, 앤드리아 전 전 에이블 화장품 회장, 수전 와이어 투자 전문가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반면 삼성전자는 이사회 9명 중 4명이 사내이사다. 애플에서는 사장을 몰아낼 수 있지만 삼성은 불가능하다. 미국은 사외이사가 이사회 80%를 차지하고 대부분 기업인으로 구성되어 있다.

다시 원론으로 돌아 가보자. 이사회는 시장에서 영리활동을 추구하고 공개기업 경영에 있어 가장 핵심적인 기능을 담당하는 기구이다. 기업이 달성하고자 하는 장단기 목표, 경영 철학, 비전을 수립하고 기업 경영에 필요한 수많은 의사결정을 마무리 짓는 조직이며, 자본주의 사회의 가치창출 주체인 기업의 두뇌와 같은 매우 중요한 인적 집합체이다. (기업지배구조센터 이사회 운영 가이드라인)

주인 없는 회사에서 일한 적이 있다. 주인 없는 회사 일수록 경영 중심을 잡아 주는 이사회가 더욱 중요하지 않겠는가? 사외이사들이 정말 사회적으로 비중있는 분들이다. 그러나 안건을 심의하다 보면 거의 질문이 없다. 당연히 토론도 없다. 그리고 반대도 없다. 법적으로 이사회 승인사항이 많기 때문에 항상 안건이 많다. 안건이 많으니 빨리빨리 핵심만 보고하라고 재촉한다. 일 많이 하는 CEO가 있으면 이사회 안건이 많아지고, 일 안 하는 CEO가 있으면 이사회 안건이 별로 없는 법이다. 정부, 학교, 법원에서 일하셨던 분들이 복잡한 기술, 재무, M&A 분야 안건에 대해 깜깜일 수밖에 없다. 이사회 2, 3주 전에 실무임원이 일일이 찾아가 내용을 설명하기는 하지만 찬성하라고 설명을 하는 데 반대하겠다는 명분을 비전문가가 찾아내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항상 마지막에 하는 소리가 ‘안건을 올린 임직원이 우리보다 더 잘 검토했을 것으로 믿고 승인’한다고 덧붙인다. 승인은 하지만 문제가 생기면 더 잘 검토하지 못한 너희들 책임이라는 뜻이다. 결과적으로 주인 없는 회사의 새로운 회장은 이사회와 전혀 관계없이 항상 낙하산으로 온다. 이사회가 살아있으면 낙하산으로 오실 때 눈치라도 좀 볼 텐데 이사회가 제 기능을 못하니 낙하산이 당당하게 등장하는 것이다. 이사회의 슬픈 역설(Sad Paradox board governance)이 있다. 능력 있는 이사회가 필요한 회사일수록 이사회가 무능하며, 이사회가 별로 필요치 않는 회사일수록 이사회가 유능하다. (로저 마틴 토론토대 경영대학원교수)

사장 입장에서는 사외이사가 모든 안건에 대해 사사건건 물고 늘어지고 시급한 사항에 대해 승인을 미루면 경영의 스피드가 떨어지는 문제점이 있기는 하다. 그렇다고 해서 회장의 독단적인 경영을 무작정 지원하고 도와줘야 한다는 것이 정당화 될 수는 없다. 요즈음 경영은 불확실성 속 백척간두에 서서 신중하고 신속한 결정이 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사외이사의 다양한 경험과 직관을 통해 객관적인 시각으로 CEO에게 수시로 조언해 주는 것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최근 1년간 한번이라도 안건에 반대한 사외이사는 그렇지 않은 사외이사에 비해 다음해 교체될 확률이 2배 이상 높다는 통계도 있다. 사외이사를 찾을 때 같은 고향, 같은 학교 출신을 선호한다. 그러나 그렇게 우호적인 이사회를 구성했을 경우 CEO 입장에서는 우선은 편하겠지만 나중에 자기 자신에게 모든 책임이 돌아 올 수 있다. CEO는 일 하는 동안 배임에 항상 신경을 써야 한다. 나중에 문제가 되었을 때 이사회에서 충분하고 심도있는 논의가 있었으면 배임 의혹에서 쉽게 벗어 날 수 있다. 큰 조직 CEO는 반대의견도 경청할 줄 알아야 하고, 반대자를 치밀한 논리로 설득할 줄도 알아야 한다. 잘못된 결정을 신속히 하고 빨리 실행하는 것은 빨리 망하는 지름길이다.

세계경제가 디지털 경제로 이전하고 있다. 우리나라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파괴적 혁신을 통해 디지털 경제로 빨리 전환을 해야 한다. 이사회는 주주를 대신해서 회사가 장기적으로 올바른 방향으로 가도록 하고, 경영자에게 정책적 제언을 하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있는 지 눈을 부릅뜨고 감시하고 견제해야 한다. 디지털 경제에 대해 전혀 모르고 세계적인 경쟁 기업 방향에 대해 무관심한 사외이사들이 모든 안건에 대해 항상 100% 찬성해 주고, 경영자 승계 프로그램이 회장 손가락 끝에서 결정이 되고, 분식회계를 한 재무제표를 무사통과 시켜주는 그런 이사회를 가지고는 세계적 ICT기업과 경쟁해서 이기기 힘들다. 당연히 주가가 낮을 수밖에 없다. 어느 주주가 의사결정 과정이 불투명한 기업에 자기 돈을 투자 할 것인가?

이사회는 퇴임한 고위관리, 학교 동창, 친한 교수, 유명한 법조인과 같은 명망가로 채워진 멤버십 클럽이 되어서는 안 된다. 더더군다나 사외이사 자리가 서로 품앗이 하는 자리가 되어서도 안 된다. 우리가 이 시점에서 시급하게 해야 할 일은 우리나라 기업 이사회를 활성화시키고, 사외이사들이 까다롭게 안건을 심의하고, CEO가 사외이사 조언을 경청하도록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앞으로도 선진 기업의 최대 실적을 우리나라 기업이 부러운 눈으로 쳐다만 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CIO포럼 명예회장(명지대 교수) ktlee777@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