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우의 성공경제]<6>우리 대기업이 위험한 진짜 이유는

[이장우의 성공경제]<6>우리 대기업이 위험한 진짜 이유는

지난해 국내 제조업 매출이 처음으로 감소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 감소 추세가 쉽사리 회복될 것 같지 않다는 우려다. 한국 제조업을 대표하는 대기업에 “우리는 과연 아직도 빠르고 미래지향적인가?”라는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이러한 질문 뒤에는 우리보다 더 빠른 의사결정과 과감한 투자로 압박해오고 있는 중국 기업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우리 주력인 IT산업만 해도 레노버, 화웨이, 샤오미, ZTE, 메이주, BBK 등 중국 기업 대약진에 기가 꺾여 있는 상태다. CEO는 마치 5년 전 빠른 의사결정과 과감한 투자로 글로벌 시장에 깊은 인상을 주었던 우리 대기업을 보는 것 같다고 한다. 더 빠르고 더 과감한 경쟁자가 앞길을 가로막고 있는 형국이다.

그러나 위기의 진짜 이유는 정작 우리 내부에서 찾아야 한다. 손자병법에서 보듯이 전쟁에 이기는 것은 상대방에 달려 있지만 지지 않는 것은 우리 하기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우리 대기업이 아직도 빠르고 미래지향적인지 스스로 엄정하게 따져봐야 한다.

인터브랜드 발표에 따르면 한국식 속도경영을 완성한 삼성전자의 브랜드 파워는 올해 GE를 앞서며 세계 7위 자리를 차지했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다른 기업이 몸을 사릴 때 과감한 투자로 성장 기회를 잡은 현대자동차 브랜드는 올해 처음으로 30위권에 진입했다. 그러나 이러한 눈부신 성과가 실현된 순간 곧바로 브랜드에 안주하려는 무사안일주의가 무수한 함정을 파놓게 마련이다.

5년 전 벼랑 끝에 서서 선발주자를 따라가야 했던 당시의 의사결정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절실했고 사소한 위험은 현장에서 감내할 정도로 과감했다. 그래서 아직 검증되지 않은 새로운 기술과 우수한 협력기업을 과감하게 채택할 수 있었다. 그러나 과거 소니, 노키아, 모토로라 사례에서 보듯이 세계적 브랜드로 성장한 후 위기가 닥치는 것을 보았다. 성공이 만들어낸 조직 경직성이 실패를 무릅쓴 혁신을 점점 더 어렵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성공 함정을 극복하고 대규모 혁신에 성공할 수 있을까. 1990년대 정보화 혁신 경험을 보자. 당시 국내시장 개방과 치열해진 글로벌 경쟁으로 한국 경제는 극도의 위기감에 빠져 있었다.

한국 기업은 특유의 ‘전근대성’ 때문에 환경 불확실성 대응 역량이 구조적으로 취약했다. 이러한 취약성은 1997년과 1998년 IMF 외환위기를 맞아 그대로 드러났다. 30대 대기업 절반이 무너졌다. 이들은 경직된 조직 문화 때문에 환경 변화를 제대로 감지하지 못하거나 감지해도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하지 못했다. 특히 구성원에게 스스로 주인의식을 가지도록 심리적 믿음, 임파워먼트를 하지 못했기 때문에 주어진 과업을 적극적으로 책임 있게 수행하도록 동기 부여하지 못했다.

그러나 혁신에 성공한 기업은 정보화 시대에서 새로운 기회를 잡았다. 이들은 유연성(Flexibility)과 민첩성(Agility) 그리고 임파워먼트(Empowerment)라는 환경대응 역량을 갖춤으로써 빠르고 미래지향적인 기업으로 거듭났다. 이렇게 혁신에 성공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동인은 회사 미래를 전적으로 책임지고 있는 리더가 그룹 차원에서 전략적 미래를 직접 관장함으로써 중간계층과 합의라는 시간 지연 없이 정면 승부로써 유연성을 확보했기 때문이다. 아울러 전사적 전략 이후 뒤따르는 많은 의사결정과 실천 문제는 전문경영인 제도를 강화함으로써 풀어나갔다. 비전 리더로 업그레이드된 오너 경영과 권한위임으로 임파워먼트가 된 전문가 경영이 융합함으로써 유연한 전략적 대응과 즉각적 실천 능력을 갖출 수 있었다.

그렇다면 경고등이 켜진 지금, 한국 제조업을 대표하는 대기업이 처한 진짜 위기는 무엇인가. 그것은 그들이 미래지향적인 기업으로 존속하는 데 필요한 새로운 경영이념과 비전 리더십을 제시할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

지금까지 한국식 경영혁신은 모두 비전 리더가 주도했다. 정주영, 이병철 등 1세대 기업인은 물론이고 이건희, 정몽구, 구본무로 이어진 2세대 후계자는 단순한 오너 경영인이 아니라 비전 리더였다. 그랬기에 다른 오너 그룹이 경영 위기를 극복하지 못하고 도산하는 절체절명의 시기에 새로운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때마침 3세대 경영 승계를 앞둔 후계자가 이러한 비전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지가 미래 성패를 판가름할 것이다. 30대 그룹 계열사 20%가 장사를 해서 이자도 못 내게 된 작금의 상황이 8년 전 IMF 경제위기 직전 데자뷔가 아니기를 바랄 뿐이다.

이장우 경북대 교수(성공경제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