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영동의 사이버세상]<17>스스로 가치를 창출하는 사물인터넷

[손영동의 사이버세상]<17>스스로 가치를 창출하는 사물인터넷

네트워크로 연결된 모든 사물이 각각의 목적을 내재화해 살아있는 생명처럼 진화한다. 사물인터넷(IoT)에 접목된 디지털 기기가 사람 개입 없이도 각종 센서를 통해 보고 듣고 느끼기 시작했다. 크고 작은 수많은 기기들이 또 다른 스마트 기기와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면서 세상을 놀랍게 바꿔나가고 있다.

사물인터넷 연결 대상과 범위가 전방위로 확대되면서 방대한 데이터를 실시간 처리해 패턴을 찾고 유의미한 가치를 창출해내고 있다. 인류가 직면하거나 미지 영역 위협을 예측해 문제 해결 실마리를 제공하고, 다용도 센서와 관련 기술이 예상치 못한 위기를 감지해낸다.

쓰나미와 같은 자연재해를 인위적으로 막을 수는 없지만, 위험신호를 감지해 사고가 나기 전에 선제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 지진감지기는 사람이 진동을 느끼기 이전에 미약한 지진파를 잡아낼 수 있으며, 재난대응시스템은 감지한 지진파를 분석해 가스나 전력을 차단하는 조치를 취하게 된다. 지진으로 건물이 무너지는 1차 피해도 크지만 건물 붕괴로 인해 2차적으로 발생하는 가스나 전기 폭발로 입는 피해가 더 심각하기 때문이다.

가정에선 말로 하거나 상품 바코드만 갖다 대면 필요한 물품이 알아서 주문된다. 이와 같이 사물인터넷을 가장 잘 활용하는 분야가 유통 분야인데, 좀 동떨어져 보이는 석유 분야에서도 사물인터넷 활용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세계 최대 석유회사인 로열더치셸은 석유시추시설 수천 곳에 센서를 부착했다. 본사 센터는 센서로 작업현장 전반 상황을 확인하고 굴착기, 드릴과 같은 모든 기계장치를 제어한다. 현장이 아니면 알 수 없었던 정보를 듣고 볼 수 있게 되면서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높이고 있다.

기업들은 기술 자체보다 가치로 접근하고 있다. 운동화로 운동량을 체크하고 젓가락 움직이는 각도와 속도를 분석해 비만을 관리한다. 운동화는 발을 보호하는 신발 기능을 넘어섰고 젓가락은 음식을 먹기 위한 도구에서 벗어나 우리 건강을 관리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사물인터넷은 무수한 센서와 기기, 소프트웨어를 넘나들며 데이터가 공유된다. 디지털 기기와 트래픽이 늘어난다고 시장이 성장할 것으로 보기는 섣부르다. 정보공유를 위한 플랫폼 표준이 선행돼야 하기 때문이다. 인텔·구글·아마존·IBM·마이크로소프트와 같은 글로벌 IT기업은 각자 이해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협업과 표준화를 추진하고 있다. 시장선점을 위해 동맹관계를 구축하고 협업의 빈틈을 스타트업 합병으로 채워나가고 있다.

사물인터넷 산업구조가 기업이 감당하기 어려운 난제가 도처에 깔려 있다. 예컨대 센서가 자동차와 도로에 부착되면 더는 차를 운전하지 않아도 된다. 그런데 우리는 무인자동차를 허가해 줄 법이 없고 10년 전에 개발된 핀테크 관련기술이 금융규제에 막혀 빛을 보지 못했다. 정부가 앞장서 사물인터넷 산업발전을 저해하는 규제와 제약을 걷어내야 한다. 기업과 상생의 생태계를 조성해 국제표준 확보에도 적극 나서야 한다.

대한민국은 최고 수준의 인터넷 인프라를 갖췄고 스마트폰 보급은 포화상태다. 무선네트워크 밀도가 높아 전국 어디서나 통신 사각지대가 거의 없어 세계 사물인터넷을 선도할 수 있는 기반을 갖추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제경쟁력이 뒤떨어져 있는 것으로 평가됐다. 지난 2월 컨설팅업체 액센츄어가 국가별 사물인터넷 준비상황을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은 52.2점으로 주요 20개국 중 12위에 머물렀다. 하지만 1위인 미국도 64점에 불과해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것을 시사한다.

사물인터넷이 세상을 바꿀 무한한 가능성의 원천이라고는 하지만 여전히 안갯속이다. 오늘날 물질계의 사물 중 서로 연결된 것은 1%도 채 되지 않는다. 나머지 99%가 모두 연결된다면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 될 것이다. 2020년 500억개 이상 기기가 인터넷에 연결될 것이라 가정하면 그 데이터 양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다.

인간은 가르쳐주지 않아도 자신을 둘러싼 환경이 보내는 신호를 오감으로 감지하는 능력을 타고났다. 이러한 인간이 가지고 있는 지각력을 스마트 기기가 대신하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우리가 일상에서 착용하거나 가지고 다니는 기기는 우리 개개인의 행동, 습관, 기호, 소비성향과 같은 생활패턴을 우리 자신보다 더 잘 알게 될 것이다. 분명한 것은 인간이 외부의 기기에 더욱 의존해가는 반면에 사물인터넷을 구성하는 스마트 기기는 스스로 데이터를 분석하고 추론할 수 있는 인공지능과 결합하면서 인간의 논리적 한계를 극복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손영동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초빙교수 viking@par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