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스바겐그룹 배기가스 조작 사태가 발생한 지 50여일이 가까워오고 있다. 세계 전체가 경악한 이유는 인체 유해물질인 질소산화물 배출량을 시험 과정에서만 축소시키는 소프트웨어를 의도적으로 2009년부터 약 1000만대 차량에 장착했다는 사실이다. 그 장본인이 올 상반기 세계 자동차 판매 1위에 오른 폭스바겐그룹이라는 점에 다시 한 번 놀랐다.
세간의 관심은 폭스바겐그룹의 총 리콜비용과 유동성 위기, 디젤차 판매 급감과 경쟁업체 반사 이익 등에 집중돼 있다. 그러나 그 파장은 훨씬 광범위하고 심각하다. 사태 본질이 과거 단순 기술 결함에 따른 안전 위험 리콜과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는 대기 오염을 야기해 불특정 다수 인류 건강을 해치는 심각한 문제다. 더구나 각국 정부와 소비자를 속여 자동차 업계 전체 신뢰까지 붕괴시켰다.
핵심은 자동차 업계가 소비자 건강과 안전을 위해 각종 규제를 성실히 준수할 것이라는 기본 가정이 무너진 것이다. 자동차 업계가 친환경 기술이라고 홍보했던 클린 디젤 기술이 신뢰를 상실해 향후 출시될 어떤 친환경차 기술도 의심의 눈초리로 볼 가능성이 높다. 자동차 업계 대응 여하에 따라 최대 위협 요인으로 부상할 위험 요소들이다.
예컨대, 각국 정부는 그 반작용으로 디젤차 배기가스 시험 절차 강화에 나섰다. 미국은 이미 실제 도로주행을 포함한 배기가스 시험을 시행하고 있다. 유럽연합도 2017년으로 예정된 실제 도로 주행 포함 배기가스 시험을 앞당겨 시행할 가능성이 높다. 다른 나라도 배기가스 시험 절차 강화를 검토 중이다. 그 파장은 일파만파로 확산될 전망이다.
배기가스 시험 절차 강화로 디젤 엔진 원가는 대당 평균 300달러 상승하게 된다. 가솔린 엔진과 원가 차이가 1300달러에서 1600달러로 더 확대돼 디젤차 판매 감소 추세가 더욱 가속될 수밖에 없다. 유럽 내 판매 차량의 평균 CO₂ 배출량 기준을 현재 1㎞당 130g에서 2021년 95g으로 대폭 강화한 차기 규제치 충족도 불가능해진다.
따라서 디젤차 의존도가 높은 유럽 자동차 업체는 친환경차 전략 중심을 디젤차에서 전기동력차로 전면 수정해야 한다. 디젤차 판매 급감 충격을 완화하면서 차기 CO₂ 규제 충족을 위해서는 전기동력차 출시가 시급하기 때문이다. 푸조와 르노, 피아트는 유럽 내 소형 디젤차 판매 비중이 40~60%인 데다 전기동력차 모델마저 부족해 더 시급하다.
그 여파로 향후 전기동력차 개발과 출시 경쟁은 한층 더 격화되고, 전기차 시장은 조만간 급성장 계기를 맞을 가능성이 높다. 시기별로는 우선 기존 기술을 최대한 활용한 가솔린 엔진 기반 마일드 하이브리드카나 플러그인하이브리드카 개발과 출시가 증가하고, 장기적으로는 양산 차종 순수 전기차 개발과 출시가 증가할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유럽 자동차 업계는 전기동력차 본격 출시 전까지 고전을 면치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 디젤차 판매 급감 영향으로 시장 점유율이 상당 기간 하락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 반사 이익을 누릴 미국과 한국, 일본 업체 중 향후 시장 변화 추세에 적극 대응하는 업체는 시장 점유율 상승을 넘어 세계 업계 판도 변화까지 주도할 가능성이 있다.
또 다른 초대형 파고들도 자동차 업계 앞에 줄줄이 대기하고 있다. 각국 정부가 배기가스 심사 절차 강화에 이어 잇달아 도입할 연비와 안전규제 심사 절차 강화다. 소비자 눈높이도 한층 더 높아져 자동차 업계가 앞으로 출시할 신차 실제 성능에 대해 까다로운 잣대를 갖고 검증하는 것은 물론이고 작은 오차에도 집단소송을 불사할 것이다.
이에 대한 자동차 업계 대응 전략은 의외로 간단하다. 그 출발점은 과거는 물론이고 앞으로도 폭스바겐그룹 같은 기만행위는 결코 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우고 실천하는 일이다. 순간의 비용 절감 유혹 또는 품질 적당주의를 원천적으로 타파해야만 실추된 명예와 신뢰 회복이 가능하다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이성신 비엠알컨설팅 대표, samleesr@gobm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