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기술 보호 강화를 위한 조치가 시급하다. 국내외 기술유출 검거·적발 건수는 매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국가정보원에 따르면 산업스파이의 해외유출 적발은 2010년부터 2014년까지 5년간 누적 229건에 이르며, 과거 대기업·IT 분야 중심에서 중소기업·정밀기계 분야까지 확대되는 추세다. 경찰청 기술유출사범 검거 역시 2010년 40건에서 2014년 111건으로 크게 늘었다.
주요 산업 핵심 기술이 주변 기술경쟁국으로 유출되면 관련 산업 기반 경쟁력 약화 및 존립 기반 붕괴 위험이 높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산업현장에서 많은 기업이 적극적 대응과 적절한 구제를 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유출경로에서도 전·현직 임직원 등 내부인력 유출이 약 80%를 차지한 것으로 확인돼 산업기술 보호를 위한 교육 및 사회 전반 관심이 필요하다.
산업기술 유출 방지 및 보호를 위해 산학연관 전문가가 머리를 맞대고 그간 기술유출 실태와 기술보호 관련 법·제도, 정책 및 지원현황과 현안 등을 살펴보고 개선방안을 논의했다.
◆참석자(가나다순)
△김민배 한국산업보안연구학회장
△노영민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장
△육현표 한국산업기술보호협회장(에스원 대표)
△차동형 산업통상자원부 정책관
△한민구 산업기술분쟁조정위원장
※사회=김동석 전자신문 부국장
◇사회(김동석 전자신문 부국장)=최근 우리나라 기업이 보유한 첨단산업 기술 유출 문제가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 기술경쟁력이 높아질수록 산업스파이도 증가하는 추세다. 국가·기업 간 소리 없는 기술·경제 전쟁이라고 할 수 있는 현시점에서 기술유출의 가장 큰 원인은 무엇인가.
◇노영민 산업통상자원위원장=국가정보원에 따르면 최근 5년간 기술유출 피해가 확인된 것만 총 229건에 이른다. 이 중 중소기업에서 64%가 있었고 대기업·기타 연구기관 등에서 36%가 발생했다. 올해도 경찰이 검거한 산업스파이 65건 중 83%, 즉 54건이 중소기업이라고 한다.
중소기업은 CEO 또는 연구책임자가 기술보호에 관심과 보안인식이 낮고 기술유출 예방 방법과 기술유출 시 대응방법 등 정보가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또 여건상 보안전담인력이나 보안설비 구축 등 투자활동이 저조하고, 전·현직 임직원 등 인력관리 면에서 보안 역량이 매우 취약하다는 점이 기술유출의 가장 큰 원인이라고 볼 수 있다.
그간 산업부를 비롯한 정부 실태조사 분석에 따르면 중견기업도 중소기업과 유사한 문제점으로 인해 중소기업에 비해 그다지 높지 않은 보안수준을 보여준다.
◇육현표 한국산업기술보호협회장=과거에는 기술유출이 대기업, IT 분야에 집중됐다면 최근에는 중소·중견기업, 정밀기계 분야까지 확대돼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국가정보원 산업기밀보호센터에서 발표한 최근 5년간 산업스파이 기술유출 경로를 살펴보면 전·현직 임직원 등 내부인력 유출이 약 80%를 차지한다. 이들이 기술유출을 시도하는 동기로는 금전적 유혹이나 인사, 처우에 대한 불만 등으로 나타났다.
◇사회=전·현직 기술인력 국내외 이동으로 인한 기술유출이 현안이다. 이에 대한 정부의 정책과 지원제도를 먼저 살펴보겠다.
◇차동형 산업통상자원부 정책관=전·현직 기술인력 국내외 이동으로 인한 기술유출 문제가 심각하다. 정부도 지금 가장 고민하는 것이 기술인력 유출에 의한 보안문제다. 법률로써 인위적으로 인력 이동을 막을 수는 없겠지만 임직원 관리와 기업 보안 강화를 위해 여러 가지 지원제도를 마련하고 있다.
우선 기술보호 역량이 상대적으로 열악한 중소기업 네트워크보안, PC보안, 출입관리 등 보안설비 구축 시 사업비를 지원해주고 있다. 또 산업기술보호협회를 중심으로 중소기업 대상 24시간 상시 보안관제 서비스를 실시해 2013년 이후 현재까지 3500개 이상 기업이 수혜를 받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중소기업이 이러한 지원 사업을 모르고 도움을 받지 못해 안타깝다.
임직원 대상 맞춤형 방문교육, 보안책임자 보안 역량 제고 교육, 중소기업 CEO 대상 보안의식 제고 교육 등을 확대 실시해 지속적으로 기술유출 피해 심각성과 보안 중요성을 알리고자 노력하고 있다.
◇사회=사전에 기술유출을 방지하고 예방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후 피해 구제도 제대로 이뤄져야 한다. 기술유출 사고 발생 시 중소기업에 적합하고 신속한 대응체계와 권리구제가 마련되어 있는지.
◇육현표=중소기업이 홀로 대처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산업기술보호협회에서는 기술유출·침해 사고에 기술적, 법률적 상담을 상시 지원하고 있다. 또 ‘산업기술의 유출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을 개정해 올해부터 시행된 ‘산업기술 확인제도’를 지원하고 있다.
산업기술 확인제도란 기업 등이 보유한 기술이 법률상 보호되는 산업기술에 해당하는지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에게 확인신청을 하면 산업기술보호협회가 지원해 이를 확인해주는 제도다. 산업기술 유출 사전예방 효과와 함께 침해·유출 시 사후구제 등에 대한 신속한 대응이 가능하다.
◇김민배 한국산업보안연구학회장=기술유출은 특성상 일단 발생하게 되면, 기업은 존폐위기와 직결될 정도로 큰 타격을 받는다. 많은 중소기업이 시간·경제적인 부담 때문에 소송을 아예 포기하거나, 소송을 제기해도 입증책임 어려움으로 충분한 보상을 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장기간 소송을 거쳐 이긴다고 하더라도 그동안 하락한 기업 이미지를 회복하고 재기하기란 쉽지 않다. 사후구제 방안도 사전예방만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문제다.
지금도 기술유출 사고 대응을 지원하기 위해 산업부 산하 산업기술보호협회 등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기술유출 사고 발생 시에 기업 현장을 방문해 진단·자문을 보다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할 것이다.
합법적으로 국내외 기술이 이전된 때라도 이후 다른 기술 유출 사례는 없는지 지속적으로 관리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한민구 산업기술분쟁조정위원장=기술유출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는 것을 꺼려해 신고를 미루다가 피해를 키우는 사례도 많은데 수사나 소송이 부담스러운 기업은 산업기술분쟁조정을 권장한다.
산업기술분쟁조정은 모든 과정이 철저히 비밀로 진행되기 때문에 공개를 원칙으로 하는 재판과정에서 또 다른 기술유출이 발생되는 문제와 기업 대외 이미지 실추 등 2차 피해 우려를 해소할 수 있다.
또 막대한 비용과 장기간 소요되는 소송에 비해 신속하고 편리하며 변호사·변리사 등 전문가인 조정위원 도움을 받아 조기에 쟁점을 명확하게 정리할 수 있어 추후 재판 진행이나 화해에도 도움이 된다.
산업기술분쟁조정위원회에서는 현재도 기술유출과 조정신청 관련 문의 상담을 지원하고 있다. 필요시 현장을 방문해 변호사·변리사 등 전문가로 하여금 사실조사도 실시한다. 최근 산업부 재정 지원으로 분쟁 조정에 참여하는 전문가 수준도 높아졌다.
◇사회=산업기술 확인제도나 산업기술분쟁조정제도는 아직 기업에 잘 알려지지 않아 보다 적극적으로 홍보해 활성화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밖에 산업기술보호 강화를 위해 어떠한 노력이 필요할까.
◇한민구=산업기술분쟁조정위원회를 비롯한 여러 전문기관에서 산업기술 유출 신속한 대응체계를 운영하지만 기업이 체감하기에는 홍보에서 아직 미진한 부분이 있다.
산업기술 유출사고 발생 시 피해를 최소화하고 재발방지를 위해 기업이 조치해야 할 ‘산업기술 유출 대응 가이드라인’을 개발해 보급하면 기업도 활용하기 쉽고 산재된 여러 제도를 한 번에 알리는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김민배=중소기업에 가장 필요한 것은 보안업무를 전담해줄 수 있는 인력이다. 산업현장에 지원해줄 산업보안 전문인력 양성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업계에서 수십년간 지식과 경험을 갖고 있는 퇴직자를 잘 활용해 이들의 해외 이탈을 방지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봐야 한다.
◇노영민=일반 국민과 기업 인식전환도 필요하다. 기업은 기술개발 인력이 외부 유혹에 쉽게 넘어가지 않도록 이들 처우를 개선해주거나, 직무발명보상제도를 도입하는 등 스스로 우수인력을 확보하는 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기술유출이 발생하면 그 사실을 숨길 게 아니라 수사기관이나 산업기술보호협회와 같은 전문기관에 적극 도움을 요청해 재발을 막아야 한다. 기술유출은 개인·기업뿐 아니라 국가안보와 경제성장을 저해하는 중대한 범죄라는 의식 전환이 필요한 때다.
◇사회=산업보안 전문인력 양성 방안 중에서 마이스터고 졸업생 등 고등학생 전문인력 양성 방안은 어떻게 활용될 수 있는가.
◇김민배=실제로 마이스터고 등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산업 현장에서 일정 기간 근무한 전문인력을 대상으로 대학 등에서 정원외로 진학과 교육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 있다. 현장에서 일하는 학생 의사를 확인해본 결과 지식재산권(IP)과 보안 분야를 가장 배우고 싶어 했다. 현장에서 기술을 습득했는데 이를 어떻게 지키고 발전시킬 수 있는지 관심이 많은 것이다. 이처럼 산업체 출신 학생 진학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확대할 필요성이 있다.
장기적으로 산업현장에 있는 사람을 산업보안과 연결하는 것은 중요하다. 국내는 산업보안하면 CCTV 정도만 생각하는데 해외는 1000억달러 이상 이를 정도로 산업보안 시장 규모가 매우 크다. 최근 국내 대학도 산업보안 전문인력 양성에 관심이 높아 학과 개설이 활발하게 이뤄지는데 이 역시 시장과 사회 요구가 반영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회=정부뿐만 아니라 민관이 모두 각자 위치에서 해야 할 일이 많아 보인다. 정부는 제도 보완과 예산 확보 등 기술보호 지원을 확대할 계획이 있는가.
◇차동형=정부도 기술유출 피해 심각성과 기술보호 중요성을 충분히 공감한다. 산업부는 현재 ‘산업기술 유출방지 및 보호에 관한 종합계획’을 수립 중이다. 종합계획은 2016년부터 2018년까지 산업기술보호 비전과 목표, 추진방향을 제시하는 정부 중기전략으로서 세부추진과제와 실행계획이 수록될 예정이다.
산업 현장 목소리를 많이 듣고 보다 현실적이고 실효성 있는 정책을 잘 마련해 산업기술보호에 사회적 공감대가 더욱 확산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사회=마지막으로 오늘 논의에 추가로 제안할 내용이나 조언을 부탁드린다.
◇육현표=한국산업보호기술협회에서는 산업기술 보호를 위한 이해와 관심에 공감해주는 분들이 국회, 정부, 학계에 많은 것이 힘이 된다.
◇한민구=산업기술 보호를 위한 정책 집행에 있어 효율성을 제고하면 좋겠다. 예를 들어 중기청은 집행기관이고 산업부는 정책기관인데, 고난도 정책일수록 정책기관에 예산을 집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산업부에 산업보호기술 정책을 일원화하는 방안 등 심도 있는 논의가 있었으면 한다.
◇차동형=산업기술 보호를 위한 예산만 보면 산업부와 중기청에 나뉘어 있는 것이 맞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예산은 증액 추세다. 큰 틀에서 보면 산업기술보호를 위한 관련법이 있고 중소기업을 위한 중기 관련 법이 있는데, 이를 서로 차별화할 수 있도록 정리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김민배=산업보호기술기본법을 만드는 것을 제안한다. 자꾸 특별법으로 만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최근 방산 관련 법을 개정하는 것을 방사청이 추진하니 국방부는 상황이 다르다고 했다. 당연히 부처가 청보다 크다. 이는 국가 핵심 기술을 어떻게 설정하고 컨트롤하는 것을 봐야 하는데 정책 혼선이 생기지 않게 산업보호기술기본법을 만들어 부처와 청의 역할을 명확하게 나눠야 한다.
◇차동형=산업부도 많은 투자를 한다. 기본적으로 산업기술 연구개발(R&D)을 지원하고 사후관리 보안도 담당하는데, 정책 핵심은 개발에 있지 보안에 있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보안 중요성을 알고 있으며 지원을 늘릴 방안을 모색 중이다.
◇노영민=정부예산만 고려하면 산업부, 미래부, 교육부가 원천기술 R&D에 연간 18조원씩 쏟아붓는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낸 산업기술 보호유출 방지 예산은 연간 100억원이 조금 넘는다. 많은 시간과 재정을 투입해 개발해낸 국가 핵심기술이 한순간에 유출되는 것을 생각하면 핵심기술 유출은 국가 존망이 달린 문제다. 국가와 국민 모두 관심을 가져야 하고 국회와 정부 모두 그 부문에 지원을 훨씬 강화해야 한다.
현재 매년 예산이 30% 증가한다는 것이 관심이 있고 노력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니 긍정적으로 바라봐야 한다.
정리=
김명희기자 noprint@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