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 1편이 개봉한 이후 최근 ‘터미네이터 제니시스’까지 30년 동안 터미네이터 시리즈는 대표적 액션·공상과학(SF) 영화로 자리 잡고 있다. 다섯 편 중 가장 수작으로 평가받는 것은 1991년 개봉한 ‘터미네이터2, 심판의 날’이다.
아널드 슈워제네거의 대사 ‘아 윌 비 백(I’ll be back)’은 전체 시리즈를 대표하는 명대사로 남았다. 개봉한 지 24년이 됐지만 각본과 연출, 시각과 음향 효과, 컴퓨터 그래픽 등 흠잡을 데가 없는 것으로 평가받는다.
불사신 같던 액체금속 로봇 ‘T-1000’ 등장은 당시로서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T-1000은 몸을 자유자재로 변형하는 살인 병기다. 아무리 총을 맞아도 순식간에 원상 복구되며 주인공을 괴롭힌다.
T-1000의 유일한 약점은 극저온과 극고온에서 기능을 상실한다는 점이다. 액체질소로 냉각돼 얼음 깨지듯 산산조각이 나기도 한다. 파편이 용광로 열기로 녹아 뭉쳐지면서 액체금속이 다시 본모습으로 복구되는 모습에서 긴장감은 극에 달한다.
액체금속은 꿈의 신소재로 세계 각국에서 꾸준한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이를 활용한 로봇 제작은 아직 먼 훗날의 일이다. 액체금속은 실용화하는 데 여러 제약이 따른다. 현재까지 액체금속 성질을 가장 비슷하게 구현하는 금속은 형상기억합금이다.
형상기억합금은 일정 온도에서 본래 형상을 기억한다. 힘을 주어 변형을 해도 동일한 온도에서 다시 본래 형태로 돌아간다. 형상기억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1930년대 형상기억 효과가 처음 발견됐고 1960년대 형상기억합금이 개발됐다.
1963년 미국 해군병기연구소에서 바닷물에 썩지 않는 새로운 합금을 개발하다가 니켈과 타이타늄 배합비를 달리하던 도중 우연히 개발에 성공했다. 해군병기연구소는 이 합금이 이름을 ‘니티놀’이라고 붙였다.
니티놀은 1969년 아폴로 11호 파라볼라 안테나에 쓰이기도 했다. 평소엔 우산처럼 접혀 있다가 주변 온도가 달 표면과 같아지면 지름 2m가 넘는 안테나로 변하도록 만들었다. 휴대성을 높이기 위해서다. 이후 보이저 2호, 갈릴레오 탐사선 등에도 사용됐다.
형상기억합금은 전투기 파이프 이음쇠와 온실 창 개폐장치, 의료 분야 등에 폭넓게 사용된다. 스포츠 브래지어나 내의 등에도 접목이 이뤄지고 있다. 최근에는 3D프린팅 재료로도 쓰인다. 가격을 낮춰야 하는 것은 해결 과제다.
형상기억합금과 액체금속로봇인 터미네이터 T-1000 기술은 아직 비교가 어렵다. 인공지능(AI)을 비롯한 복잡한 시스템을 갖추고도 원래 모습을 복원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액체금속이 쓰일 수 있는 다양한 산업 분야를 고려하면 기술 개발과 투자 가치는 충분해 보인다.
안호천기자 hca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