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태의 IT경영 한수]<90>혁신의 첫 걸음은 기득권의 포기다

지금 우리 사회에 기득권이 만연하고 있다. 개인이든 조직이든, 지위가 높든 낮든, 잘살든 못살든, 자기가 지금 누리고 있는 권리, 권한에 무서우리만치 집착하고 있다. 마치 우리 사회에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 상시화되고 있는 느낌이다. 길거리에 붙어 있는 각종 민원성 플래카드며 신문 광고란에 나는 호소문이며 길거리에서 붉은 조끼를 입고 소리 지르는 사람들까지 다 따지고 보면 자기의 기득권을 건드리지 말라는 것이다.

기득권(旣得權)이란 무엇인가. 네이버 낱말 사전에는 ‘기득권은 법률에 의해 이미 주어진 권리’를 말한다. 법률에 의해 이미 주어진 권리니 사람들이 호락호락 내놓을 리 만무하다. 하지만 우리 주위에서 법률이 아니더라도 자기가 지금 누리고 있는 현재 상태에도 아주 민감하게 반응 한다. 그게 조금이라도 위협 받는다고 하면 오히려 법률로 만들어 보호해 달라고 요구한다. 아무튼 내 것, 내 가족, 내 조직의 권리는 어떠한 경우에도 양보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 기업에서 혁신이 어려운 것도 따지고 보면 다 기득권을 놓지 못하기 때문이다. 경영자든 노동자든 다들 자기 자신에게 미치는 득실만을 철저히 따진다. 회사가 변해야 한다는 것에는 모두 동의를 하면서도 막상 어떻게 변해야 할 것인지를 논의하다 보면 본래의 취지 금방 무색해 진다. 그렇기 때문에 총론에는 동의하면서도 각론에서는 딴소리를 하는 것이다. 이 모든 변화를 향한 저항이 근본적으로는 기득권에서 출발한다.

시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자기 사업 영역, 제품, 서비스에 집착하다 보면 시장 전체 흐름을 보지 못한다. 그래서 시장점유율 싸움에 일희일비하고 있다가 시장 자체가 사라지는 몰락을 겪게 되는 것이다. 점차 더워지는 물에서 안주하고 있는 개구리 얘기도 같은 맥락이다.

애플을 보자. 아이팟으로 한창 잘나가고 있을 때 대표적인 레드 오션인 휴대폰 시장에 뛰어 들었다. 노키아, 삼성, 블랙베리가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던 휴대폰 시장에서 디자인과 감성 터치로 아이폰을 성공시켰다. 만약 MP3시장 성공에 만족하고 있었다면 지금의 애플은 상상할 수도 없다. 어디 그뿐인가. 아마존도 서적을 온라인으로 팔다가 장난감, 의류, 식료품으로 영역을 넓혀서 지금은 클라우드의 강자로 변모했다. ICT 분야에서 잘나가고 있는 애플,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 모두 지금의 성공에 만족하지 않고 미래를 위해 수많은 프로젝트를 돌리고 있다. 이들은 시장에서의 기득권을 스스로 버리고 지속적으로 새로운 기득권을 만들어 가고 있다. 이게 진정한 파괴적 혁신이다.

혁신의 첫걸음은 기득권 포기다. 그게 개인이 됐든 부서가 됐든 기업이 됐든 기득권을 과감히 포기해야 변화의 길이 보이고 혁신의 시작이 가능해진다.

기득권을 어떻게 포기할 것인가. 우선 기득권이란 것이 자기가 생각하는 만큼 오래가는 것이 아니란 것을 알아야 한다. 물론 법으로 보호되고 있는 기득권은 제법 오래갈 것이다. 그러나 그 기득권이 오래가는 것이지 자기 자신이 기득권으로 보호 받는 것이 오래가는 것은 아니다.

우리 주위에서 법이나 제도와 직접 관련이 없으면서도 스스로가 기득권이라고 생각하는 권리가 많다. 스스로 완장 차는 사람들이다. 이런 자칭 기득권은 사회 전체 흐름이 바뀌고, 정권이 바뀌고, 스폰서가 바뀌면 하루아침에 날아간다. 법으로 보호되는 기득권조차 법이 바뀌는 때도 많다. 기득권이 법으로 보호가 되든 아니면 자칭 기득권은 시간이 지나면서 자기 자신의 기득권은 결국 사라진다는 것을 아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경제가 발전하면서 과실을 어느 정도 나눠먹을 수 있었을 때는 서로 살벌하게 싸우지 않아도 됐다. 그러나 저성장이 일반화된 뉴 노멀 시대에는 예전처럼 나눠먹을 양이 충분치 않으니 서로 자기 것을 챙기면서 싸움이 시작되는 것이다.

대학에서 경제학을 배울 때 부분 균형과 일반 균형을 배운다. 어느 재화나 시장이 다른 재화나 시장과 관련이 없다고 보면 부분 균형이고 관련이 있다고 보면 일반균형이다. 내 기득권과 다른 사람의 기득권이 서로 관련이 없다고 보면 부분 균형이고 전체적으로 관련이 있다고 보면 일반 균형이다. 경기가 좋을 때는 부분 균형으로도 사회가 굴러갈 수 있었지만 파이가 줄어든 불경기 때는 부분 균형이 존재할 영역이 줄어들게 된다. 가뭄에 악어떼가 강 가운데로 모여 드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래서 우리 사회에 지금 계층별, 지역별, 산업별, 직업별, 연령별 갈등과 긴장이 심각해지는 것이다. 예전에는 부분 균형으로 해결될 수 있는 것들이 이제는 부분균형 간 공간이 줄어들면서 모두가 일반 균형 관점에서 자기 기득권을 봐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우리는 부분 균형을 일반 균형과 조화시킬지 제대로 된 사회 프로세스도 없고 경험해 보지도 못했다. 그래서 로펌들만 호황이다.

우리 각자가 기득권이란 변하는 것이고 기득권을 누리기 위해서는 우리 스스로 끊임없는 업그레이드가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기득권을 사수하면서 혁신을 할 수는 없다. 기득권은 기본적으로 변화가 없을 때 보호가 되기 때문에 혁신과 기득권은 같이 존재할 수 없다.

우리 모두의 기득권이 정말 우리가 누리고 싶은 만큼 유지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역사적으로 기득권 위에서 안주하는 개인이나 조직은 예외 없이 망했다. 조직이 망하면 당연히 그 속에 포함돼 있던 개인들도 망한다. 기득권도 보호 받지 못한다.

지금은 초연결사회다. 규정이나 법률로 칸막이해줘서 신도 모르게 기득권을 누리던 시대가 지났다. 정보기술 발달로 사회는 투명해지고 공정해지고 있다. 정보가 빠르게 전파되는 시대에는 사회 한구석에서 기득권을 즐기기 어렵게 된다.

법으로 보호받고 있는 기득권이든, 아니면 스스로가 울타리를 치고 기득권이라고 하든 어떤 기득권도 오래가지 못한다는 것을 인식하고 기득권으로 자기 권리를 지킬 것이 아니라 자기계발과 학습으로 스스로를 업그레이드해서 지키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CIO포럼 명예회장(명지대 교수) ktlee777@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