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YS) 전 대통령은 정치적 업적에서 여러 수식어가 붙었다. ‘최연소 국회의원’을 비롯해 ‘최장수 원내총무’ ‘최연소 당수’ 등 국내 정치사에서 수많은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또 투옥과 가택연금, 의원직 제명, 최장 단식 투쟁 등 우리 현대사의 험난한 역경을 헤치고 군사정부에서 문민정부를 탄생시킨 역사적 주인공이었다.
김 전 대통령은 1927년 12월 4일 경상남도 거제도에서 어부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1948년 서울대학교 문리대 철학과에 진학했다. 정치에 관심이 많았던 김 전 대통령은 1954년 5월 제3대 민의원 선거 때 고향인 경남 거제에서 자유당 후보로 나섰다. 그는 26세 젊은 나이에 국회의원에 당선되면서 정치에 입문했다. ‘최연소 국회의원’이라는 기록은 아직도 깨지지 않았다.
의원직 제명도 헌정 사상 최초다. 김 전 대통령은 제1야당 당수로서 뉴욕타임스와 한 인터뷰에서 박정희 정권에 대한 미국의 지지철회를 요구했고 이는 의원직 제명 발단이 됐다. 결국 박정희 대통령은 1979년 9월 김영삼 의원 제명 방침을 정하고 여당 의원 159명은 ‘김영삼 의원 징계안’을 처리했다.
당시 김 전 대통령은 의원직을 제명 당하면서 “나는 오늘 죽어도 영원히 살 것”이라고 말해 주목받았다. 또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유명한 발언도 이때 나왔다.
김 전 대통령은 23일간의 최장 단식 기록도 보유하고 있다. 그는 광주민주화운동 3주년이었던 1983년 5월 18일 민주화 5개항 수용과 야당인사 석방 등을 요구하다 신군부에 의해 가택연금됐다. 병원에서도 단식은 계속돼 총 23일간 단식투쟁을 벌였다. 이 단식은 추후 민주화 투쟁 기폭제가 됐고 직선제 개헌을 쟁취해내는 밑거름이 됐다.
최다선 기록도 보유하고 있다. 김 전 대통령은 1954년 3대 국회 때 자유당 의원으로 첫 등원한 이래 14대 대통령으로 당선되기 전인 1992년까지 3·5·6·7·8·9·10·13·14대 의원으로 지냈다.
3당 합당을 결행한 인물이기도 하다. 김 전 대통령은 소위 ‘구국의 결단’이라는 명분아래 3당 합당을 결행했다. 3당 합당 이후 군사정권 세력에 엄청난 견제를 당했지만 불굴의 투쟁 정신으로 위기를 돌파해 끝내 1992년 5월 민주자유당 대통령후보로 선출됐다. 1992년 14대 대선에서 고 김대중 전 대통령과 대결을 펼쳤고, 득표율 42%로 당선됐다. 민간인 출신 대통령이 탄생한 역사적인 날로 기록됐다.
김 전 대통령은 취임 직후 군부 사조직인 하나회를 해산시켰다. 금융실명제와 공직자 재산공개제도 등 부정부패 청산을 위한 혁신적인 정책을 도입했다. 전두환·노태우 전직 대통령 비자금을 수사하는 등 업적을 남겼다.
우리나라가 ‘ICT강국’으로 부상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정보통신부’를 만든 주인공이기도 하다. 그는 취임 2년째인 1994년 12월 연말 정부 조직개편에서 체신부를 정보통신부로 확대·개편했다. 국가정보화를 선도할 전담부처의 첫 탄생이다. 재임 기간 동안 정통부 주도로 무궁화 1호 위성 발사, CDMA(코드분할다중접속) 상용화 등이 이뤄졌다.
하지만 숱한 업적 속에서도 집권세력 내부 갈등, 불법 대선자금 수수 의혹 등으로 집권 기간이 순탄하진 않았다. 집권 말기엔 가시밭길이었다. ‘IMF를 불러온 대통령’이라는 꼬리표도 달아야만 했다. 아들 현철씨와 홍인길(한보사건), 장학노(이권청탁) 등 측근이 연루된 권력형 비리가 잇따라 터져 나왔고 기아자동차, 대우그룹 등 부도사태는 외환위기로 이어져 IMF 구제금융을 불러왔다.
퇴임 후에도 시련은 계속됐다. 하지만 굵직한 현안이 있을 때마다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거친 발언’으로 건재를 과시해 왔다.
22일 파란만장했던 김 전 대통령은 우리나라 역사에 많은 족적을 남기고 역사의 무대에서 내려왔다.
성현희기자 sunghh@etnews.com
◆김영삼 전 대통령 연보
▲1927년 12월 20일 경남 거제시 장목면 외포리 출생
▲1947 서울대 문리과대학 철학과 입학
▲1951 장택상(張澤相) 국회부의장 비서관으로 정계 입문. 손명순 여사와 결혼(슬하에 2남 3녀 둠)
▲1954 제3대 국회의원 당선(만25세 최연소 국회의원 당선, 이후 5,6,7,8,9,10,13,14대 9선).
▲1967 신민당 창당 참여
▲1969 박정희 대통령 3선개헌 반대투쟁 주도하다 초산테러 당함
▲1974 신민당 총재 선출(만45세 최연소 야당총재)
▲1981 민주산악회 발족
▲1983 민주화 요구 단식투쟁(23일간)
▲1987 제13대 대통령선거 출마(2위로 낙선)
▲1990 민주정의당-통일민주당-신민주공화당 3당 합당 선언
▲1992 제14대 대통령선거에서 당선
▲2015.11.22 서거
-
성현희 기자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