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 전 대통령이 22일 새벽 서거했다. 향년 88세다. 제14대 대통령을 지낸 김 전 대통령은 이날 새벽 0시 22분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서울대병원 중환자실에서 숨을 거뒀다. 패혈증과 급성 심부전 등 오랜 지병으로 인한 합병증이 원인이다. 산업계는 정보통신부를 만들어 국내 정보통신기술(ICT) 산업 발전을 꽃피운 김 전 대통령 서거에 애도했다.
김 전 대통령은 임기 중인 1994년 정통부를 설립해 우리나라가 ICT 강국으로 도약하는 노둣돌을 놓았다. 전전자교환기 대중화를 시작으로 1995년 무궁화 1호 위성 발사, 1996년 세계 최초 코드분할다중접속(CDMA) 상용화, 초고속인터넷망 구축 등 국책 사업으로 ICT 강국 기초를 다졌다.
정통부 출범은 많은 반대에도 ICT를 국가발전 전략산업으로 집중 육성해야 한다는 김 전 대통령 뚝심의 결과물이었다. 정통부는 기존 체신부에 과학기술처, 공보처, 상공자원부 정보통신 관련 기능을 흡수·통합해 출범했다. 초대 장관은 경상현 현 한국정보방송통신대연합(이하 ICT대연합) 회장이 맡았다.
김 전 대통령은 당시 “세계가 급변하는 상황에서 조금만 경쟁에 뒤처지면 영원히 낙오할 수밖에 없다고 판단해 컴퓨터와 정보통신, 그리고 변화와 개혁에 정부가 나섰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역대 대부분 정부 개편이 출범과 맞물려 인수위원회 개편안에 따라 진행되는 것과는 달랐다. 정통부는 김 전 대통령 집권 2년차인 1994년 말 조직됐다. 임기와 관계없이 우리나라 정보통신 산업에 대대적 변화가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정통부 출범 당시 전파기획과장을 맡았던 황중연 ICT대연합 부회장은 “다음 정부로 미룰 수도 있었지만 김 전 대통령은 임기 중간에 과감한 변혁을 단행했다”며 “우리나라가 산업화는 늦었지만 정보화는 늦지 말자는 의지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회고했다.
컨트롤타워 역할을 할 전담부처가 생기면서 일관성 있는 ICT 정책 추진이 가능해졌다. 국책과제 추진에도 힘이 실렸다. 초기 연구가 진행되던 CDMA 상용화 추진이 본격화됐다. 2세대(2G) CDMA 세계 최초 상용화(1996년)는 이후 3G, 4G 와이브로와 롱텀에벌루션(LTE)으로 이어지며 우리나라 무선통신이 세계 최고 수준을 이어가는 기반이 됐다.
1995년에는 무선통신망 기반인 초고속정보통신망 구축사업을 시작했다. 초고속 인터넷 기술개발을 주도하고 전국에 광케이블을 설치해 가정과 공공기관에 초고속 인터넷이 도입되는 기반을 마련했다.
전화 모뎀을 사용해 최대 속도 2400bps에 불과하던 국내 유선인터넷은 초고속정보통신망 사업을 통해 메가(Mbps)급을 거쳐 현재 기가인터넷까지 발전했다. 세계 최고 수준 초고속 인터넷 인프라는 네이버, 다음 등 벤처 신화를 탄생시켰고 ICT 산업의 급속한 발전을 가져왔다.
김 전 대통령 임기 중에 대전 세계박람회 개최, 케이블TV 본방송으로 다매체 다채널 시대 개막, 정보화촉진법 제정, 무궁화1호 발사 등이 추진되며 정보통신 강국으로 발돋움이 본격화됐다.
김 전 대통령은 ‘세계화’에 집중했다. 특히 ICT 산업이 세계화 주요 매개체라고 강조했다. 이명박 정부 때 정통부 폐지를 마지막까지 만류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는 정통부의 ICT 진흥기능을 지식경제부와 문화체육관광부로, 통신과 방송정책 기능은 방송통신위원회로 이관했다.
정통부는 사라졌지만 이후 국내 ICT경쟁력이 낮아졌다는 평가가 나오면서 김 전 대통령 업적이 다시 조명받고 있다.
안호천기자 hca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