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직업병 인과관계 입증 어려워… 실질적 보상으로 풀어야"

반도체 생산 환경과 백혈병 등 암 발병 사이에 인과관계를 찾기 힘들다는 연구조사 결과가 나왔다.

SK하이닉스 산업보건검증위원회는 25일 서울 광화문 교보빌딩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1년간 진행한 산업보건실태 검증 결과 이같이 나타났다고 발표했다. 검증위원장을 맡은 장재연 아주대학교 예방의학교실 교수는 “발생기전이 복잡한 암이나 발생률이 극히 낮은 희귀질환은 그 특성상 인과관계 평가 자체가 근본적으로 어려움을 확인했다”며 “질병 발생 원인이 되는 유해인자에 상당한 수준 노출이 있음을 확인하는 방식은 반도체 직업병을 둘러싼 사회적 논란을 해결하기 어렵다고 판단된다”고 말했다.

SK하이닉스 산업보건검증위원회 외부 인사 7인이 지난 1년간의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SK하이닉스 산업보건검증위원회 외부 인사 7인이 지난 1년간의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여름 자사 직업병 문제가 언론에서 제기되자 10월 14일 외부 전문가 7명, 노조 측 2명, 회사 측 2명으로 구성된 산업보건검증위원회를 구성하고 1년간 독립적으로 실태조사를 실시했다. 외부 전문가는 장재연 아주대 예방의학교실 교수가 위원장으로 △박동욱 방통대 환경보건학과 교수 △권호장 단국대 예방의학교실 교수 △김형렬 가톨릭대 보건대학원 교수 △이혜은 가톨릭대 직업환경의학과 교수 △강희영 여성환경연대 사무처장 △김호철 법무법인 한결 변호사가 위원으로 구성됐다.

검증위원회는 SK하이닉스가 사용하는 화학물질 860종(총 2296개 성분)과 영업비밀물질 가운데 노출 가능성이 높은 제품 40여종(151개 성분)을 조사했다. 그 결과 발암성(Carcinogenic), 변이원성(Mutagenic), 생식독성(Reprotoxic)을 갖는 카본블랙, 황산, 아르신, 석유계(가스 등)와 2-에톡시에탄올, 2-메톡시에탄올 등 이른바 ‘CMR’ 물질 또는 이 물질을 함유하고 있는 제품이 총 18종 사용되고 있음을 확인했다. 그러나 CMR 물질 가운데 비소를 제외하면 유의미한 노출은 확인되지 않았다고 위원회는 밝혔다. 비소 역시 공기 중 검출이 아니라 이온주입 공정 정비 작업시 사용하는 벌크 시료에서 검출된 것으로 법정 기준치에는 한참 못 미친다. 노출 측정은 SK하이닉스에서 가장 오래된 공장인 청주 M8과 이천 P&T에서 실시됐다.

2010~2014년 SK하이닉스 직원 간강검진자료 분석 결과, 다른 암은 유의미한 차이가 관찰되지 않은 반면에 갑상선암은 생산직이 사무직에 비해 남성은 1.2배, 여성은 1.6배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2003~2014년 국민건강보험공단 자료에서도 SK하이닉스 근로자가 우리나라 전체 근로자에 비해 갑상선암 발생 확률이 남성 2.6배, 여성이 1.3배 높았다.

검증위원회는 보고서에서 “갑상선암 발생률은 건강검진 영향을 많이 받는데, SK하이닉스 통계도 건강검진 영향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2003~2014년 사이 갑상선암 환자가 급증했음에도 불구, 표준화발생비(전체 국민의 인구 구성 및 비율을 적용해 비교한 질환 발생률)가 증가 추세를 보이지 않은 것이 증거”라고 설명했다. 전체 여직원 자연유산율은 전체 직장 가입자와 비교해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장재연 교수는 “반도체 사업장 근무와 백혈병 등 암 발병 사이 인과관계 평가가 근본적으로 어려운 것을 확인했다”며 “대안으로 근로자 치료와 일상유지에 필요한 기본 수준을 지원하는 ‘포괄적 지원보상체계’를 제안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검증위원회가 제안한 지원보상 대상은 SK하이닉스와 협력사 재직자, 퇴직자, 자녀로 반도체 산업과 조금이라도 상관성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모든 암에 걸린 이들에게 치료비와 직간접 비용을 지원하는 것이다. 대상자는 1999년 10월 현대전자와 LG반도체 합병 이후 근무력이 확인된 사람으로 최소 1년 이상 생산직으로 일을 했어야 한다. 지원금액 기준은 산재사망유족보상일시금 수준으로 제안됐다. 현재까지 알려진 SK하이닉스 전현직 직원(자녀 포함) 암 발병 건수는 총 28건이다.

검증위원회는 화학물질과 작업환경, 건강영향관리, 산업안전보건과 복지제도 분야 총 127개 개선과제 권고안을 SK하이닉스 전달했다.

SK하이닉스는 이날 공식 입장자료를 내고 “검증위원회의 제안을 전격 수용한다”며 “기업의 사회적 역할에 기반을 두고 의심사례로 나타난 질환환자를 대상으로 지원과 보상을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회사는 “이른 시간 내에 노사와 사외 전문가로 구성된 독립적 지원보상 위원회를 결성해 관련 질병 지원·보상 절차를 마련하고 시행하겠다”고 덧붙였다.

한주엽기자 powerus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