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텔레콤이 마침내 CJ헬로비전 인수합병 인가신청서를 정부에 제출했다. 짧게는 60일, 길게는 240일간의 인수전이 펼쳐진다. 인수가 성사되면 통신방송 칸막이를 허무는 ‘빅뱅’ 신호탄이 될 전망이다. 결과와 무관하게 통신방송 칸막이 규제 유효성을 두고 격론이 예상된다.
◇SK텔레콤, 인가신청서 제출...빅뱅 신호탄
SK텔레콤은 1일 미래창조과학부와 방송통신위원회, 공정거래위원회에 각각 CJ헬로비전 인수합병 인가신청서를 제출했다. 지난달 2일 이사회에서 합병을 결의한 후 꼭 한 달 만이다. 당국은 법이 정한 일정에 따라 최장 240일간 심사한다. SK텔레콤이 합병과 우회 상장을 모두 마치고 싶어 하는 새해 4월 전 인가 승인이 날지가 관전 포인트 중 하나다. 사상 초유의 ‘이동통신 1위+케이블TV 1위’ 결합이라는 점에서 과거 동종업계 내 합병사례처럼 한두 달 만에 끝나지는 않을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통신방송 시장에 작지 않은 파장이 예상된다. 우선 SK텔레콤 이동통신시장 점유율이 늘어난다. 곧바로 느는 건 아니다. CJ헬로비전 알뜰폰 가입자 대부분이 KT망 가입자여서다. 어느 이동통신망을 사용하는지가 점유율 산정 기준이다. KT망을 사용하는 한에는 CJ헬로비전 가입자여도 KT 점유율로 합산된다.
업계는 어떤 방식으로든 KT망 가입자가 SK텔레콤망으로 갈아탈 것으로 본다. 모두 갈아탄다면 SK텔레콤은 이동통신 점유율 50%를 회복한다. SK텔링크와 더한 알뜰폰 점유율도 30%를 넘는다. SK텔레콤은 유료방송(26%), 초고속인터넷(30%)에서 KT와 대등한 경쟁력을 확보한다.
SK텔레콤이 결합상품을 강화하면 이동통신과 유선·방송 경쟁력이 동시에 높아질 것이라는 우려가 경쟁사에서 제기된다. 경쟁사가 이에 대응하기 시작하면 새로운 ‘결합 전쟁’이 벌어질 가능성도 있다. 결합상품을 통한 시장지배력 전이 문제는 지속적인 논란거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SK텔레콤이 강화된 플랫폼 경쟁력을 기반으로 어떤 융합 서비스를 내놓을지도 관심사다. 이미 이사회에서 CJ헬로비전 인수를 결의하며 합병법인 주력사업을 미디어로 전환한다고 밝혔다. 케이블TV와 IPTV를 결합한 새로운 미디어 플랫폼을 내놓기로 했다. 두 그룹은 향후 미디어 콘텐츠 개발에 공동 투자하겠다는 계획도 밝힌 바 있다. 업계는 SK군 통신방송 플랫폼과 CJ군 콘텐츠가 결합하는 모델을 예상했다. 하나의 콘텐츠를 다양한 플랫폼으로 유통시키는 새로운 실험이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통방 융합 격론 속으로
이번 인가신청은 결과와 관계없이 신청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크다. 통신방송 시장에 ‘융합’이라는 화두를 던졌기 때문이다. 이른바 ‘칸막이 규제’가 여전히 유효한지 고민해볼 계기를 제공한 것이다.
지금까지 국내 통신방송시장에서 일어났던 인수합병은 모두 동종업계에서 일어난 것이었다. 칸막이 규제가 허물어지기는 했지만 어디까지나 동종업계 내 일이었다. 유선과 무선통신 경계를 허문 KT-KTF 합병과 SK텔레콤-하나로텔레콤 합병이 대표적이다. 통신과 방송이라는 이종업계 간 합병이 시도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규제기관이 이번 합병 건을 어떻게 처리하는지에 따라 향후 국내 통신방송 융합 향방이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융합 규제의 이정표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칸막이 규제를 비판하는 목소리는 꾸준히 제기됐다. 유·무선 인터넷(통신)으로 동영상 서비스(방송)를 제공하는 넷플릭스가 국내 시장에 진출하는 등 통신방송 융합이 가속화되는 상황에서 굳이 우리만 칸막이를 칠 필요가 있느냐는 의문이다. 더욱이 통신과 케이블TV 모두 성장정체 상태여서 융합은 필수라는 것이다.
융합 화두가 중요한 또 다른 이유는 SK텔레콤 같은 시도가 늘어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당장 LG유플러스가 케이블TV 중 한 곳을 인수할 것이라는 예상이 많다.
KT는 33% 합산규제 때문에 상대적으로 운신 폭이 좁다. 유료방송 점유율이 29%에 달한다. 반면에 LG유플러스는 8%에 그친다. 규제는 문제가 아니다. 부족한 유료방송 경쟁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케이블TV 인수에 적극 나설 것이라는 게 시장 관측이다. 씨앤앰, 현대HCN 등이 매물로 나와 있어 신빙성을 더한다.
SK텔레콤-CJ헬로비전 인수합병을 계기로 통신방송 융합 규제에 대한 새로운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 같은 시도가 반복될 때마다 혼란을 겪지 않기 위해서는 미리 규제체계를 정비하는 한편, 통신방송 융합을 하나의 산업이자 성장동력으로 인정할 것인지를 논의할 필요가 있다는 요청이다.
하지만 방송의 공공성 확립, 시장지배력 전이 등 문제를 선결하지 않은 상황에서 통신방송 융합을 논의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김용주기자 kyj@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