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대통령 장학생은 국보다"

[ET단상]"대통령 장학생은 국보다"

스타트업 창업이 붐을 이루면서 함께 유행하는 말이 ‘죽음의 계곡(death valley)’이다.

우수한 기술을 보유한 기업이라도 창업 초기 자금 부족으로 인해 상용화에 실패하고 도산하는 사례가 많기 때문에 생겨난 말이다. 창업의 어려움을 잘 나타낸다.

이러한 어려움은 한국의 미래를 짊어지고 나가야 할 젊은 과학기술자에게서도 찾을 수 있다. 오랜 노력과 인내로 박사학위를 마친 신진연구자가 대학이나 연구소 등에 안정적인 자리를 잡고 연구에 매진하기는 쉽지 않다. 학생에서 연구자로 가는 길목에는 연구비와 생계비를 동시에 해결해야 하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는 것이다.

이 얘기를 꺼낸 이유는 한국연구재단과 교육부가 운영 중인 ‘대통령 박사후과정(post-doc) 펠로십’ 사업을 들여다보고 그 중요성을 강조하고 싶어서다.

이 사업은 40세 이하 젊은 연구자를 대상으로 연 1억원 이상 인건비와 연구비를 5년간 지원하고 ‘대통령’ 명의 지정서를 수여한다. 미래 기초과학 리더 양성이 목적이다.

2011년 사업이 시작된 후 현재까지 83명을 지원했다. 올해에도 서울과 지역 소재 대학 및 정부출연 연구소에서 비정규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는 우수 신진연구자 12명을 선정했다.

대부분 선배 연구자들도 부러워할 만한 최고 수준 학술지에 논문을 게재하고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연구주제를 제안한 인재들이다.

대표적으로 한국화학연구원에서 근무 중인 전남중 연구원은 ‘유·무기 하이브리드 태양전지’ 연구 성과로 올해 초 세계 최고 권위 학술지 ‘네이처(Nature)’에 제1 저자로 이름을 올렸다.

이 사업으로 지속적인 지원이 이루어진다면 기존 값비싼 실리콘 태양전지뿐만 아니라 화석연료까지도 대체할 수 있는 상용화 기술 개발이 가능하다는 평가다.

이외에도 난치 암, 알츠하이머, 신경질환 등 국민 생활과 밀접한 연구주제가 다수 제안돼 앞으로 좋은 연구결과가 기대된다.

우수 신진연구자에 대한 그간의 집중적인 투자로 성과가 적지 않았다. 사업 지원을 받은 연구자 논문을 다른 연구자가 인용한 논문 가운데 해당 분야 상위 10% 수준의 우수 논문 비율이 29.6%로 타 사업에 비해 월등이 높았다.

특히 2011년 대통령 포닥에 선정된 박은정 건양대 연구교수는 ‘분야별 상위 1% 피인용 논문’을 네 편이나 발표한 성과를 인정받아 지난 10월 ‘2015 미래부 지식창조대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박 교수는 수상자 10명 가운데 유일한 신진연구자였다.

이외에도 사람 지문을 먼지만 한 크기로 모사해 복제 불가능한 위조 방지 기술을 개발한 박욱 경희대 교수, 정상세포까지 공격하는 기존 항암제 부작용을 극복할 수 있는 암세포 자살 단백질을 발견한 최경철 울산대 교수, 미세먼지 환경 노출 시 과체중 노년 여성이 더 위험하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한 최윤형 가천의대 교수 등이 이 사업을 계기로 좋은 성과를 내고 교수에 까지 임용된 사례다.

2011년 처음 선정된 14명의 대통령 박사후 연구자 가운데 7명이 전임으로 채용되는 등 나름 성과를 거뒀다는 평가다.

‘과학기술이 국력이다’ ‘사람이 미래다’는 말이 있듯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은 과학기술 인재 양성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개인적· 사회적으로 많은 투자가 이루어진 박사 학위를 마친 인재들이 연구비와 생활비 부족으로 꿈을 포기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특히 학령인구 감소로 인해 대학구조개혁이 본격화하면 신진연구자에게 더 많은 배려가 있어야 할 것이다.

정민근 한국연구재단 이사장 deermin@nrf.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