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정상이 파리에서 개최되는 유엔 기후변화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우리나라 박 대통령도 참석해 2030년 온실가스 배출 전망치 대비 37%를 감축하겠다는 자발적 계획을 공표했고, 에너지 신산업으로 100조원의 신시장과 50만개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계획을 천명했다. 기후변화 위기를 오히려 경제성장과 고용 창출 기회로 삼고자 하는 계획은 크게 환영할 일이다. 기업이 기회변화 대비가 더는 탁상공론이 아니고 대비책을 세우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는 국제 질서임을 실감하는 계기가 됐다.
우리나라는 경제 성장을 위해 조금이라도 기후변화 규제를 늦출수록 유리한 것인가. 우리 기업은 기후변화 부담을 조금이라도 늦추면 경쟁력에 도움이 되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불가피한 규제에 혁신으로써 대책을 선점한 기업은 새로운 기회를 포착, 성장했고 그렇지 않은 기업은 공룡일지라도 도태된 것이 경영 역사의 교훈이다. 기후변화는 피할 수 없는 지구적 문제고 이의 규제는 일시적인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상책은 기후변화 기회를 이용해 신시장을 창출하거나 자기 혁신으로 경쟁력을 강화하는 것이다. 중책은 다른 기업이 다 움직이는 것을 보고 나서 움직이는 것이다. 하책은 세상이 변하는데도 변화하지 못하고 도태되는 것이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변화하는 것을 가급적 늦추려고 한 후지쯔의 현주소는 무엇인가. 가솔린 엔진을 가급적 오래 유지해 보려는 자동차 회사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중국이 우리나라보다 더 적극적으로 신에너지 혁명 시대를 앞질러가면 우리는 무엇으로 경쟁하겠는가. 그런데 이것은 미래에 대한 우려가 아니고 이미 벌어진 현실이 돼버렸다. 태양광 발전과 풍력에서 중국은 우리를 앞질렀고 전기 자동차도 앞서가고 있다.
애플컴퓨터는 자사가 사용하는 모든 에너지를 신재생에너지로 변환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가장 큰 태양광 발전소를 설치해 탄소배출을 줄였다. 불가피한 탄소배출량만큼 신재생에너지에 투자하거나 녹지를 조성해 탄산가스를 줄여 총량 면에서도 실질적으로 탄산가스 배출이 없는 탄소중립 상태를 유지하면서 경쟁 체질을 갖추었다. 미국 내에서는 100%, 세계적으로는 87%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했다. 구글도 마찬가지로 100% 탄산중립 형태로 데이터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제3의 탄소배출량 검증 기관에서 자발적으로 공인 받으면서 환경단체의 비판을 피할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도 녹색인증을 받는 적극성을 보이고 있다.
후진국으로 시작한 우리나라는 태생적으로 후발주자로서 선두 주자를 모방하면서 추월하는 데 강점이 있었다. 이 저력은 대단한 생존 능력이었고 선두주자의 위험을 줄이는 효과도 있었다. 그러나 선두가 된 기업임에도 중책으로 계속 갈 수는 없다. 그래서 창조경제가 필요한 것인데 이를 적용하기 좋은 사업이 녹색성장이다.
창조경제와 녹색성장이 융합돼 장기적인 관점에서 추진될 때 큰 결실을 거둘 수 있는 정책이다. 원천 기술 경쟁력이 바탕이 돼야 하고 창업뿐만 아니라 국제적 규모 경쟁력으로 성장할 때 비로소 신산업으로 창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둘 다 단기적인 성과에 매달리면 바늘허리에 실을 묶는 격이 되기 십상이다.
그동안 기업은 가급적이면 탄소배출 감축에 앞서나가지 않도록 수동적인 자세를 취했다. 그런데 이 태도는 전향적으로 탄소중립을 이루려는 해외 경쟁기업과 비교하면 스스로 위험을 누적시키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아픈 감각이 없으면 가장 무서운 병에 걸린 것이다.
이재규 KAIST 석좌교수·녹색성장대학원장 jklee@business.kaist.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