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벤처와 미국 애플에서 `포스터치`가 동시 개발된 사연

기막힌 우연이다. 시차만 10시간 이상, 거리로 9000㎞가 넘는 서로 다른 나라의 두 회사에서 거의 동일한 기술이 개발된 건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다. 주인공은 하이딥과 애플이다. 전혀 관련 없어 보이는 두 회사는 포스터치 기술을 거의 동시 상용화했다.

포스터치는 최근 급부상 중인 인터페이스 기술이다. 화면을 누르는 힘을 감지, 마치 깊이가 있는 것처럼 새로운 사용자 경험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애플 최고 디자인 책임자인 조너선 아이브는 포스터치를 두고 ‘멀티터치의 차세대 기술’이라고 자랑했다.

“깜짝 놀랐습니다. 애플도 우리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었다는 거였죠. 기뻤습니다. 스마트기기 핵심에 대한 이해가 같았으니까요.”

한국 벤처와 미국 애플에서 `포스터치`가 동시 개발된 사연

고범규 하이딥 대표가 포스터치 기술 개발에 뛰어든 건 2010년이었다. 처음 창업한 반도체 설계 회사(인티그런트)를 매각하고, 잠시 쉬던 때 나온 ’아이폰’이 충격을 줬다.

“2007년 스티브 잡스가 멀티터치를 시연했을 때 엄청난 충격을 받았습니다.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방식에 일대 변화가 보였습니다. 이때부터 세상을 바꿀 만한 근본적인 인터페이스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이를 구체화하고자 다시 벤처를 시작했습니다.”

답을 찾는 건 쉽지 않았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시간만 1년 이상이 걸렸다. 그러다 길이 보였다. 사용자에 친숙하면서도 전에 없던 편리함을 주는 인터페이스를 핵심 요소로 보고, 포스터치를 구상한 것이다.

포스터치는 전에 없던 인터페이스였다. 멀티터치가 횡적인 변화만 이뤄 2차원(x·y축) 형태라면 포스터치는 깊이(z축)를 더해 3차원을 이뤘다. 그러나 이질적이지 않았다. 터치에 근간을 둔 인터페이스였기 때문이다.

“멀티터치가 편리하지만 메일을 보거나 사진을 감상할 때 터치를 반복해야 합니다. 불편한 점이지요. 포스터치는 불필요한 움직임을 줄이면서 원하는 정보를 보다 빠르게 찾을 수 있습니다. 또 한 손으로 스마트폰을 조작할 수 있게 합니다.”

수백여개 아이디어를 모아 하드웨어·소프트웨어 개발에 수 년을 보내 기술을 완성시켰다. 그런데 마침 애플도 포스터치를 아이폰에 넣을 준비를 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고범규 대표는 상용화에 속도를 냈다. 하이딥 기술을 주목한 화웨이와 계약이 이뤄졌다. 하이딥 포스터치 기술은 그렇게 화웨이 프리미엄 스마트폰 ‘메이트S’에 접목됐다.

메이트S는 애플 아이폰보다 일주일 앞선 9월 2일 공개돼 세계 최초 포스터치 스마트폰으로 기록됐다. 화웨이가 최초 타이틀을 쥐게 된 배경에 하이딥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고 대표는 “애플과 같은 고민을 했다는 것, 또 60여명 하이딥 팀이 10만명이 넘는 애플보다 더 빠르게 기술을 시장에 내놓은데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이제부터가 진짜 경쟁”이라고 강조했다. 베일에 싸인 애플 특허가 공개되고, 포스터치가 주류로 확산되면 소송 등 치열한 전쟁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고범규 대표는 “지난 4년 동안 기술을 준비해와 100건이 넘는 특허를 마련했다”며 “본격적인 싸움이 시작될 것”이라고 말했다.

윤건일기자 benyun@etnews.com

사진=김동욱기자 gphot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