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회를 먼저 알아보는 인지력은 21세기 창발 혁신에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이렇게 인지한 기회도 시장에서 재빨리 구현하지 못하면 소용이 없다. 기회의 창은 예상보다 훨씬 빨리 닫히기 때문이다. 창발 혁신 전 과정을 살펴보면 때가 차오를 때까지 대부분 지루할 정도로 오랜 시간이 걸려 불현 듯 기회가 솟아오른다. 하지만 그 기회는 매우 짧은 시간 동안 머물다가 이내 사라지는 성향이 있다.
평소 기회의 창이 열렸을 때 재빨리 들어가 실현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던 국내 유명 정치인은 “기회라는 괴물은 예고 없이 온다. 그때 괴물 목덜미를 대담하게 잡아라. 야망은 실현된다”고 말했다. 우리가 지향해야 할 선발주자, 즉 퍼스트 무버(First Mover)란 가장 먼저 괴물 목덜미를 움켜쥐는 모험을 감행하는 기업이다.
150년 동안 선발주자 위치를 유지해 온 독일 바스프사 사례를 보자. 이 회사는 세계 최초로 화학비료공장을 설립한 이래 세계 1위 종합화학회사 위치를 지키고 있다. 비결은 화학 분야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기회를 창출했다. 청바지에 쓰이는 인디고 염료, 오디오 및 비디오 테이프 등. 하지만 지금은 우리가 알고 있던 제품을 거의 생산하지 않는다. 새로운 신소재를 생산하면서 여전히 세계 1등이다.
바스프의 150년 선발주자 비결 중 하나가 전광석화 같은 실용화이다. 혁신 성과를 최대한 빨리 상품화하는 것이 모토다. ‘시장에서 되겠다’하는 신기술은 전속력으로 사업화해낸다. 앞 단계에서는 피를 말리는 인내 과정이 있다. 신기술 개발은 처음 시도해 실패하면 다시 시도하고 그래도 안 되면 될 때까지 계속하는 끈기가 또 다른 숨은 비결이다.
여기서 우리가 유념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속도 관념이다. 1초, 1분을 측정해 빠르고 효율적인 스피드를 만들어내는 시테크는 20세기 산업화 이후 생산성 증대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러나 지금은 느림과 빠름을 동시에 수행할 수 있는 다차원적 접근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초고속 스포츠에서는 1000분의 1초인 밀리초 단위에서 승부가 나며 50밀리초 정도 근소한 차이를 늦출 수 있는 것만으로도 승패를 결정한다. 훌륭한 프로 선수는 모름지기 누구보다 빨리 움직일 수 있는 속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여유가 가능하고 느리게 행동할 수 있다. 타격에 필요한 최소 시간을 남겨두고 누구보다도 길게 마지막 순간까지 결정을 늦출 수 있기 때문이다.
속도란 빨리 움직이기 위해 필요하다. 역설적으로 늦추기 위해, 천천히 결정하기 위해 필요하다. 세심히 관찰하고 정보를 수집처리한 후 가장 마지막 순간까지 기다리다 결행하는 느림의 강점은 전광석화 실행력에 의해 실현된다.
시간이란 초와 분으로 나뉘어 누구에게나 똑같이 흐르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초고속 스포츠에서 최고 선수는 시간 자체를 확장하고 필요한 정보를 가능한 많이 수집한 후 최적 속도와 각도로 공을 타격할 수 있다. 선발주자는 항상 빨리 움직여서 성공하는 것이 아니다. 전광석화 실행력은 속도계 안에 넣어두었다가 필요할 때 재빨리 꺼내 쓸 수 있기 때문에 성공한다. 재빠른 반응을 얼마든지 할 수 있지만 때가 올 때까지 섣불리 나서지 않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시장 기회를 낚아챈다.
시장 기회를 정확히 인지했다면 투자를 결행해야 한다. 바로 이때 속도계 안에 소중히 간직했던 각종 스피드 경영기법을 꺼내 활용해야 한다. 아무리 기회의 창에 들어갔다 하더라도 경쟁자와 헤게모니 싸움은 피할 수 없다. 따라서 적시에 대응하지 않으면 주어진 기회도 한 순간에 날아간다.
전광석화 실행으로 이익창출에 성공했다고 끝나는 것은 아니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시장 요구에 대응해며 기존 경쟁자, 새로운 진입자와 싸워야 한다. 재빨리 기회를 잡아 시장에서 일인자 지위를 확보한 기업도 급변하는 시장 상황에 노심초사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창발 혁신 과정은 이러한 전광석화 실행 단계로 끝나지 않는다. 다시 1단계인 ‘충전’으로 돌아가 뜻을 확장하고 비전을 성숙시킴으로써 계속적으로 선순환을 일으켜야 한다. 이것이 선발주자의 장수비결이다.
이장우(경북대 교수, 성공경제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