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올 초 BMW i3를 구매한 A씨. IT 비즈니스를 하다보니 최신 기술에 유난히 관심이 많았다. 전기차도 남들보다 먼저 구매했다. 내연기관 차도 이미 있던 터라 서울 시내를 다닐 때에만 잠깐씩 이용할 생각으로 주행거리에 큰 고민없이 전기차를 선택했다. 만족도는 생각보다 컸다. 출퇴근용 정도로 생각하고 구매했지만 유지비가 한 달에 5만원 정도밖에 들지 않아 A씨에게 i3는 이미 퍼스트카로 자리잡았다. 히터 때문에 겨울에는 주행거리가 30% 이상 떨어졌지만 외투를 껴입고 운전을 할 지언정 전기차 사랑은 식지 않았다. 전기차 사랑이 남달랐던 A씨는 지인들에게 전기차를 구매하라고 설득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빌라에 충전기를 설치할 수 있었던 A씨와 달리 친구들은 충전기 설치에 애를 먹고 있다. 회사 주차장에 충전기 설치를 요청했던 친구는 7개월이 되어서야 겨우 승낙을 받을 수 있었으며 또 다른 친구는 아파트 주민 동의를 얻지 못해 결국 포기했다.
#2. 짧은 주행거리는 전기차의 가장 큰 단점이다. 이동 거리가 머리 속에 대충 계산이 되어야 집에서 차를 몰고 나갈 수 있다. 갑자기 먼 곳을 가야할 일이 생긴다든가 하면 큰 일이다. 그나마 이를 보완할 수 있는 것이 급속 충전소 정보다. 하지만 이를 한눈에 보여주는 곳은 찾기 힘들다. 너무 답답했던 B씨는 서울시내 급속 충전소 정보를 담은 지도를 직접 제작해 커뮤니티에 공유했다.
1000만원이 넘는 보조금이 쏟아지고 있지만 전기차 보급대수는 누적 6000대에도 못미친다. 2014년 기준 국내 전기차 판매대수는 1181대로 승용차 판매대수 0.08%를 차지했다. 1%는 커녕 0.1%도 안되는 수치다. 구매 확산을 위해 정부는 소비자에게 적지 않은 보조금을 지급하지만 소비자 구미를 당기기에 현재 시점으로서는 ‘실패’로 보인다. 가장 중요한 인프라 확산에 소홀한 탓이다.
정부가 최근 국무회의에서 2020년 친환경차 100만대 시대를 열기 위한 5개년 종합 계획을 발표하는 등 강력한 의지를 담은 정책을 내놓고 있다. 연료전지차(수소전지차) 소비자 구매 가격도 2018년께 3000만원대까지 낮추도록 한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전기차를 포함한 친환경차 보급 전망을 밝게 보는 사람은 많지 않다. 2020년 친환경차 100만 시대를 열고, 내년을 친환경차 확산 원년으로 삼으려면 현재 시점에서 풀어야 할 과제는 무엇인지 짚어본다.
◇자동차 업계는 발등에 불, 소비자는 정중동
미국과 유럽 등 가장 큰 자동차 시장 환경 규제가 강화되고 있다. 현재 제시되는 이산화탄소 배출량 총량 규제는 내연기관 자동차만 판매해서는 맞추기 불가능한 수치라는 것이 업계 시각이다. 친환경차로 일정 수준 크레딧을 확보하지 못하면 일반 내연기관 자동차 사업이 불가능해지는 것이다. 4~5년 내에 배출량을 획기적으로 줄일 만한 기술을 찾아내는 것도 불가능에 가깝다. 결국은 친환경차 판매가 자동차 업체 사업을 좌지우지하게 되는 셈이다. 다소 소극적이었던 현대자동차가 친환경차 전용 플랫폼을 내놓고 적극적으로 드라이브를 거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하지만 소비자에게 전기차는 아직 먼나라 이야기다. 연비에 아주 민감한 이들도 전기차 구매에는 선뜻 나서지 못한다. 충전 인프라 때문이다. 아파트나 회사 주차장에 충전기 설치가 어렵다면 급속 충전 시설이 많아야 한다. 정부는 2020년까지 중점 보급도시 중심으로 전기차 공공급속충전소를 1400기까지 늘리겠다고 밝혔다. LPG 충전소가 2000여기 임을 감안하면 적은 수치는 아니다. 하지만 당장 내년 목표만 해도 480여기. 이를 10개 도시로 나누면 한 도시 당 50개 수준이다.
전기차 소유자 A씨는 “전기차가 좋다고 홍보를 많이 해도 집이나 회사에 충전기를 설치하기 힘들고 급속충전기도 많이 없으니 구매를 결정하기 쉽지 않다”며 “인프라 변화를 당장 기대하기 힘들어 커뮤니티에서 소비자끼리 정보를 교환하면서 서로 돕고 있다”고 말했다.
◇충전 인프라 문제지만 충전소 설치 이끌 만한 동력은 없어
접근도 편하고 많은 이가 이용할 수 있는 대형 마트나 쇼핑몰에 급속 충전소가 들어서길 바라는 전기차 이용자가 많다.
전기차 확산에는 정부 종합대책처럼 충전 인프라 구축이 급선무다. 하지만 정작 충전 인프라 구축을 위한 당근은 찾아보기 힘들다. 전기차 이용자가 많지 않은 초기에는 각종 혜택으로 인프라를 마련해야 하지만 정부 혜택은 소비자에 한정되어 있다. 마트나 쇼핑몰에 급속 충전기를 설치한다고 해도 이들 업체에 돌아가는 혜택은 없다. 충전 사업자에 주어지는 혜택도 없다. 설치비용이 수십억원 들어가는 수소 충전소에는 정부 보조금이 지급되지만 전기차 충전소 설치는 오로지 충전 사업자 몫이다.
전기요금이 비싼 미국에서는 충전 업체에 전기요금 할인 혜택을 주는 방식을 택하고 있지만 국내 시장 상황과는 맞지 않는 정책이라는 지적이다. 이보다는 주차장 면을 제공하는 업체나 충전소 업체에 다른 혜택을 주는 방안이 나와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충전 업계 관계자는 “충전소 운영 비용 중 전기요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20% 밖에 안된다”며 “전기요금 혜택을 준다고 해도 충전 업체에 돌아가는 이득은 너무 적다”고 꼬집었다.
그는 “수요와 공급이라는 시장 논리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어서 전기차 소비자를 위해 공격적으로 충전소를 설치하기도 힘들다”며 “충전기 설치를 유도하는 정책이 나와야 한다”고 덧붙였다.
선택과 집중 전략도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전기차 보급에 나서는 지역이 많을수록 정부 보조금과 지자체 보조금을 더해 소비자에게 주는 혜택은 더 많아질 수 있지만 시장을 빨리 형성하는 데에는 선택과 집중 전략이 더 효율적이라는 것이다. 제주도나 서울 등 특정지역을 정해 보조금 지급과 인프라 구축을 집중하면서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자는 주장이 최근 설득력을 얻고 있다.
문보경기자 okmun@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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