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고도성장을 견인한 일본 전자업계가 올해 구조조정 회오리에 휘말렸다. 회계 부정과 수익성 악화로 화려한 명성에 금이 갔다. 생존조차 불확실한 처지에 내몰렸다. 이런 일본 전자업계 모습은 한국 전자업계 미래가 될 수도 있다. 일본 전자산업 추락 실상과 뼈를 깎는 구조조정 현주소를 들여다봤다.
도시바는 지난 4월 3일 “일부 인프라 공사 회계 처리에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어 특별 조사위원회를 구성했다”고 발표했다. 외부 변호사나 회계사도 참여해 1개월 동안 실적을 정확히 조사하겠다는 것이다. 지난해에 계상한 인프라 관련 사업을 조사할 예정이라는 소식을 전했다.
한 달이 조금 지난 5월 8일 도시바는 충격적인 내용을 공표했다. 2014년 회계연도(2014년 4월~2015년 3월) 영업이익으로 계상한 3300억엔 등 실적을 취소하고 배당도 보류한다고 발표했다. 일부 인프라 공사에서 ‘부적절한 회계’가 발견됐다고 덧붙였다.
도시바는 내·외부 전문가로 꾸린 이전 조사위원회 대신 외부 전문가로만 구성한 제3자위원회를 구성해 조사에 나섰다. 조사 결과 여러 사업 부문에서 이익을 과다 계상한 정황이 드러났다. 2008년부터 2014년까지 무려 7년간 영업이익을 1562억엔 부풀린 것으로 나타났다. 거의 전 사업 부분에서 동시다발적, 조직적으로 이뤄진 것으로 밝혀졌다.
도시바 주가는 폭락하고 투자자는 패닉에 빠졌다. 경영진의 과도한 실적주의가 부정행위를 유도하고 그 결과 걷잡을 수 없는 손실을 불러온 것이다. 조직적 회계조작을 주도한 다나카 히사오 사장, 사사키 노리오 부회장(전 사장), 니시다 아츠토시 고문(전전 사장) 등이 사퇴했다. 증권거래감시위원회는 일본 회계 역사상 최고액인 73억7350만엔 과징금을 도시바에 부과한 상태다. 150년 전통 굴지 기업에서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로 전락했다.
회계부정 여파는 구조조정으로 이어졌다. 도시바는 지난 21일 2015 회계연도 마지막 분기(2016년 1∼3월)가 끝난 후 5500억엔 연간 적자가 예상된다면서 6800명 인원을 정리해고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퍼스널 컴퓨터 부문과 비디오 및 소비가전 부문에서 인원 감축이 이뤄진다. 도시바 전체 직원 가운데 약 3%에 달하는 규모다.
인도네시아 TV 공장을 대만 가전업체인 컴팔일렉트로닉스에 매각하고 이집트 합작공장도 합작 상대인 엘아랍에 넘길 예정이다. 이로써 도시바는 TV 생산을 완전히 접게 된다. 도시바는 이미 2011년과 2013년 멕시코와 폴란드 TV 공장을 컴팔에 매각했다. 다만 TV 브랜드인 ‘레그자(REGZA)’는 유지하고 컴팔에 위탁생산해 일본 판매는 계속하기로 했다.
PC부문도 본사에서 분리한다. 후지쯔·VAIO와 통합설이 돌고 있다. 백색 가전은 샤프와 통합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의료사업기기 부문도 매각한다는 소식이다. 지난 10월 이미지센서 공장을 소니에 매각한다고 발표했고 보유 중인 핀란드 에스컬레이터 제조업체와 일본 의료기기 제조업체 톱콘 지분도 팔았다.
도시바는 PC, DVD플레이어, TV 등 전자제품시장을 선도했다. 하지만 시장 상황이 바뀌는데도 과거 영광 집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한국과 중국 경쟁업체가 무섭게 추격하는데도 안이하게 대처했다. 파나소닉 등 다른 일본 업체는 생산비용을 줄이기 위해 해외로 공장을 이전했다.
하지만 도시바는 반도체 수익에 의존하며 목숨을 연장했다. 경영이 악화되는 상황에서 경영권을 둘러싼 성과 경쟁은 결국 회계조작으로 이어졌다. 도시바 몰락 뿌리에 안이한 위기대응이 자리했다.
1912년 창업한 샤프도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진행하고 있다. 샤프는 중기 경영계획에 따라 회사 상징으로 90년 동안 사용하던 오사카 본사를 매각했다. 또 국내 직원 약 15%에 달하는 3200명 직원을 희망퇴직이라는 명분 하에 내보냈다.
2014회계년도 순손실액은 무려 2223억엔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기간 매출은 2조7862억엔으로 전년도보다 5%가량 감소했다. 2013회계연도에 1085억엔 흑자를 기록했던 영업손익은 480억엔 적자로 돌아섰다. 올 상반기(4~9월)에도 836억엔 적자를 기록했다. 업계에서는 액정TV 부문에 지나치게 의존하면서 스마트폰 등 IT 분야 첨단제품 흐름을 제대로 따라가지 못한 것이 내리막길을 걷게 된 원인으로 분석했다.
지난 7월에는 북미 TV 생산공장인 세멕스를 중국 하이센스에 양도했다. 샤프는 하이센스에 멕시코 공장과 TV 브랜드명 아쿠오스 쿼트론도 넘겨줬다. 매각 발표 당시 샤프는 “최근 TV 시장 경쟁 심화로 이윤을 창출해내지 못하고 있다”며 TV사업 포기를 밝혔다.
액정사업부분도 분사한다. 민관 합작 펀드 산업혁신기구와 대만 혼하이가 인수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산업혁신기구는 샤프 액정사업을 인수해 자회사 재팬디스플레이(JDI)와 통합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 JDI는 2012년 히타치, 도시바, 소니의 중소형 액정사업을 통합한 회사로 산업혁신기구가 최대주주다. 경영난에 허덕이는 샤프 액정사업에 산업혁신기구가 돈을 투입해 분사한 후 JDI와 통합한다는 시나리오다.
액정 사업은 샤프 매출의 약 30%를 차지한다. 중국 경기 둔화로 고객사인 중국 업체 스마트폰 판매가 감소하는 상황에서 중소형 패널 사업을 자력으로 재건하는 것은 어렵다고 판단했다. 샤프는 TV용 대형 LCD패널 생산회사인 사카이디스플레이(SDP) 주식을 대만 혼하이에 매각하는 협상도 진행 중이다.
일본 전자업체 구조조정은 분사와 인력 감축 형태로 이뤄지고 있다. 분사 이후에는 타 기업 부문과 통합해 경쟁력을 다시 키우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아직 구체적인 결과물이 나오지는 않고 있다. 그러나 뭉치지 않으면 생존이 어렵다는 절박감이 깊이 자리잡고 있어 통합은 시간 문제다.
따라서 앞으로 일본 기업이 손을 잡고 한국 기업에 위협적 존재로 부활할 가능성도 있는 만큼 경계가 필요하다. 또 한국 전자업체도 언젠가는 일본 업체처럼 중국 등 후발 국가에 따라잡힐 수 있어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권상희기자 shkw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