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신년(丙申年) 새해 첫 날이다. 다사다난했던 2014년 을미년(乙未年)은 속절 없이 가버렸다.
지난해 우리 경제는 그야말로 부실하기 그지없었다. 메르스 사태는 내수경기 침체를 촉발시키고, 각종 경제지표는 기대를 밑돌았다. 정부는 지난해 경제성장률 목표치를 3.8%로 잡았지만 실제 2.7% 수준에 그쳤다. 수출액과 수입액은 1년 내내 함께 줄었다. 교역액 1조원 시대도 5년 만에 끊겼다. 경상수지 사상 최고 흑자행진 기록을 무색하게 한 성적표다. 전형적인 ‘불황형 흑자’ 구조다.
정부는 부동산 경기를 살린다고 돈을 너무 많이 풀었다. 가계부채는 1100조원을 넘어섰다. 기업부채와 공공부채를 합치면 경제 3주체 빚은 3500조원가량이다. GDP 280%가 넘는다. 부채공화국이 돼버린 꼴이다.
대외 상황도 만만치 않았다. 끝없이 추락하고 있는 국제유가는 건설, 조선, 철강, 석유화학 업종에 심각한 피해를 안겼다. 저유가는 이득보다 역오일쇼크를 경험하게 했다. 중국 성장둔화와 미국 금리인상은 글로벌경제를 잔뜩 주눅들게 했다.
일각에서는 현재 우리 경제 상황을 1997년 외환위기에 빗대어 말하기도 한다. 미국 금리인상, 엔화 약세, 중국 위안화 절하 등 대외 환경이 너무 닮았다는 것이다.
새해는 우리 경제 체력이 좀 나아질까. 정부는 내년 경제성장률을 3.1%로 전망했지만, 대다수 전문기관은 2%대 저성장 기조로 내다봤다. 주변 경제여건은 최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계경제 성장엔진 역할을 한 신흥국은 미국 금리인상, 중국 경기둔화로 가라앉고 있다. 우리 수출 전망이 낙관적이지 않은 이유다. 과거 중국은 가격, 일본은 기술이 한국을 앞섰지만, 지금 중국은 기술, 일본은 엔저를 통한 가격으로 한국을 압박하고 있는 새로운 ‘넛크래킹’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대내 여건도 더 나을 게 없다. 주택 공급과잉 속 돈줄이 조여지고 있어 가계부채는 터지지 않은 뇌관이다. 고용절벽에 저출산, 고령화 등 저성장 터널의 그림자가 엿보인다.
우리 경제는 해마다 쉬웠던 때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 이대로는 안 된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혁신이 필요한 시점이다.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장과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도 신년사에서 위기극복 처방으로 ‘경제 혁신’을 강조했다. 경제 혁신은 구조개혁에서 나온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출입기자단 송년회에서 “통화정책의 과도한 의존은 부작용을 초래한다”며 “저성장·저물가 고착화를 방지하기 위한 최선의 처방은 구조개혁”이라고 말했다. 그 만큼 구조개혁이 시급하고 중요하다는 얘기다.
구조개혁은 극한상황을 배제할 수 없는 고통스러운 과정이다. 전형적인 톱다운 방식 개혁이다. 정부는 끊임없는 소통과 과감한 리더십으로 구조개혁을 완성해야 한다.
구조개혁은 정부의 힘만으로 안된다. 기업이 적극 나서줘야 한다. 기업경쟁력 강화가 먼저다. 기업경쟁력 강화는 신산업 창출을 위한 신속하고 효율적인 사업재편이 필요하다. 연구개발 투자는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 디자인, 엔지니어, 소프트웨어, 부품소재 개발 등을 유기적으로 연결시키고, 필요하면 국내외 기업 인수 합병에도 적극 나서야 한다. 정치권에선 기업 활력 제고를 위한 특별법(원샷법)의 조속한 처리로 도움을 줘야 할 것이다.
현금을 쌓아놓고 안방시장에 매달려온 대기업은 도전정신 회복이 급하다. 명품 수입과 골목상권까지 넘보는 돈벌이보다는 성장동력을 발굴하는 것이 급하다. 글로벌시장으로 눈을 돌려 불투명한 미래를 개척하는 것이 ‘경제리더’로서 어울린다는 뜻이다. 대기업 낙수효과가 현저히 줄어든 우리 경제에서 중소기업은 고용창출 뿐만 아니라 경제성장 역군이다. 그러나 많은 중소기업이 정부 과제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은 부인하기 힘들다. 이제는 자생력을 갖추고 강소기업으로 체질을 바꿔야 한다. 중소기업 역시 눈은 글로벌시장에 둬야 할 것이다.
조선, 철강, 석유화학 등 주력산업 침체는 한동안 계속될 것 같다. 그나마 휴대폰, 반도체 등 정보통신기술(ICT) 수출이 선방하고 있지만, 새로운 기술산업에 성장엔진을 달아줘야 한다. 빅데이터, 사물인터넷(IoT), 바이오·의료, 로봇 분야가 눈에 들어온다.
병신년 새해는 박근혜 정부 집권 4년차다. 5년차 레임덕을 생각하면 마지막 기회다. 각종 경제지표와 생산가능인구 통계를 보면 일본과 같은 장기 불황을 배제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4월 총선은 우리 경제를 더 힘들게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경제주체와 정치권이 한마음이 된다면 경제체력을 못키울게 없다.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금융위기도 똘똘 뭉쳐 극복하지 않았는가. 노출된 위기는 더 이상 위기가 아니다. 아쉬울 게 없는 병신년이 됐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