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하체가 튼튼한 창조적 스마트 제조 환경 구축

[ET단상]하체가 튼튼한 창조적 스마트 제조 환경 구축

C4J0K21O19, 언뜻 보기엔 무슨 암호문처럼 보이지만 이는 일본 이또 준타로 등이 편찬한 ‘과학사기술사사전’에 언급된 세종시대 과학적 업적을 압축한 것이다. 세종시대 32년간 중국이 4건, 일본이 0건, 우리나라가 21건, 그 외 다른나라가 19건으로 기록돼 있다. 지금으로 말하자면 15세기판 노벨과학상 수치라고도 할 수 있다.

세종 즉위 때 왜 이렇게 창조적 과학발전이 일어났을까. 첫째는 축적된 자료의 적극적 활용이다. 둘째는 창조적 실험정신이다. 세종실록에는 유난히 ‘실험하다’는 뜻의 ‘시(試)’가 많이 나온다. 섯째는 민생에 도움되는 것을 무엇보다 중시하는 실용 태도다. ‘농사직설’ 편찬방침은 명분보다 ‘민생의 편리함’이 우선이라며, 농사 외에 성리학 학설 등 불필요한 것을 섞지 말고 간략하고 바른 것에 힘을 쓰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넷째는 우리나라의 ‘다름’을 인정, 열등감을 극복하게 해 창조적 기틀을 만든 것이다. 당시 지식인 대부분은 중국 제도를 준행해야 하며 글과 법도뿐만 아니라 농사·의술·천문 등도 그래야 한다고 여겼다. 과연 이렇게 중국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다면 창조가 가능했겠는가. 세종은 누차 ‘우리는 중국과 다르다’고 반복해서 강조함으로써 열등감을 깨고 창조적 기틀을 만들었다. ‘훈민정음’은 물론 우리 농법 ‘농사직설’, 우리 의술 ‘향약집성방’, 우리 천문과 역법 ‘대간의대’와 ‘제가역상집’ 등이 나올 수 있었던 배경이다.

미국과 일본 기술 혁신은 방법이나 내용이 다르다. 예를 들어 미국은 기술담당 디렉터가 넓고 쾌적한 환경에서 기존 제품을 3년동안 끊임없이 생각한다. 그래서 미국 기업은 3~4년에 한 번씩 혁신이 일어난다. 소수 천재가 변화를 만들고 회사도 그를 존중해 그에 상응하는 처우를 한다. 반면에 일본은 현장에서 제안과 개선을 끊임없이 반복한다. 작은 제안이 모여서 지속적 개선이 이뤄지는 방식이다. 한국이 제조 강국으로 자리매김한 것은 글로벌 스탠더드를 받아들이고 이 두 나라 혁신론을 융합했기 때문이다.

최근 제조 현장엔 구조조정 칼바람이 분다. 우리 민족은 위기에 유난히 강한 민족이다. 대한민국 저력은 위기를 극복할 때 나타난다. 영국의 한국 전문가가 가장 놀라는 대목이다. 그들은 이것을 기적과 같다고 얘기한다. 그래서인지 우리 문화와 다름을 모르는 해외구조조정 컨설팅기업이 우리나라에 들어와 외면받는 이유이기도 한 것 같다.

최근 우리 제조업에선 스마트 제조·스마트 공장이 이슈다. 위기는 곧 기회라는 말에 잘 어울리는 주제다. 하지만, 이 또한 기본과 다름에 대한 각성이 필요하다. 스마트 제조에는 CPS, 사물인터넷(IoT), 빅데이터, 3D프린팅, 산업인터넷, 산업클라우드 등 다양한 용어와 기법이 소개된다. 스마트 제조가 제조업과 ICT 결합이라는 측면에서 독일과 미국은 방향이 같지만 방법은 다르다. 전통적으로 제조업에 축적된 노하우를 가진 독일은 상대적으로 취약한 ICT를 제조에 결합하는 전략을 취한다. 상대적으로 제조업이 약한 미국은 ICT 강점을 제조에 결합하는 전략을 구사한다. 이런 측면에서 ICT가 강한 우리나라가 독일식 스마트제조를 지향하는 데는 고찰이 필요하다.

제조는 과학과 공학, 그리고 그것을 이해하는 사람에 기반한다. IoT, 빅데이터 등은 도구다. 우리에겐 하체가 튼튼한, 즉 기본이 튼튼하면서 다름을 고려한 스마트 제조 구축 전략과 아키텍처가 필요하다.

최근 우리나라 한 조선소가 조선부문 세계 최초로 제조 및 인프라 혁신 프레임워크인 자산경영시스템(ISO 55001) 인증을 획득했다. 이 회사는 최근 조선업에 불어닥친 위기를 극복하고자 다양한 혁신 방법을 조사해 왔다. 담당부서장은 장기적 시각으로 글로벌 스탠더드에 기반한 체계를 수립하고 축적한 경험지식과 선진 스마트 제조 도구를 활용해 회사 업에 맞는 탁월함을 만들어 내고 시스템·습관화할 계획이라고 한다.

서울공대 교수 26명이 펴낸 ‘축적의 시간’이란 책이 최근 인기다. 여기서 강조하는 것도 창조적 축적 과정을 통한 창조적 혁신이다. 사회 전체가 축적지향으로 바뀌어야 하는데 이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축적에 대한 예우’와 ‘글로벌 연계’다. 이는 명장·장인급 인물에 대한 존경과 사랑, 그리고 글로벌 협력이다. 예의를 갖추고 매너를 지켜야 한다. 자연스럽게 대한민국 제조업 품격 또한 올라갈 것이다.

세종대왕이 생존해 있다면 같은 생각을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박상묵 SMP3 대표 sm.park@smp3.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