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8시 20분. 임직원이 하나 둘 회의실로 모여든다. 이들은 30분간 ‘감사의 노래’를 합창한다. 노래를 마치면 10분간 ‘감사의 편지’를 쓴다. 반도체 패키징 업체 네패스의 하루 일과는 이렇게 시작된다. 이 회사 퇴근 시간은 오후 5시 20분. 정규 근로 시간의 약 8%를 감사 노래를 부르고, 감사 편지를 쓰는 데 할애한다. 시간이 곧 돈인 제조업 기반 회사에서 이는 적잖은 투자다.
![[인사이트]이병구 네패스 회장](https://img.etnews.com/news/article/2016/01/06/article_06131716193896.jpg)
네패스 이병구 회장은 ‘감사’를 경영 철학으로 삼고 있다. 이 회장은 이렇게 말했다.
“기업을 성장시키는 가장 본질적인 힘은 긍정적 사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라고 확신합니다. 좋은 관계는 생각보다 많은 경영상 난제를 해결해줍니다. 네패스는 25년 전 홀로 창업해 현재 직원 수가 2000명이 넘는 글로벌 중견기업으로 성장했습니다. 비결이요? 직원들이 노래 부르고, 책을 읽고 감사 편지를 쓰게 해보세요. 사람들이 바뀝니다. 회사 분위기가 확 살아납니다. 경기 불황,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적 흐름은 늘 있어왔던 것입니다. 결국 사람입니다.”
그는 지금까지 경험을 토대로 ‘경영은 관계다:그래티튜드 경영’이란 제목을 가진 경영 서적을 최근 발간했다. 그래티튜드(Gratitude)는 우리말로 고마움, 감사하는 마음을 의미한다. 220여쪽 분량의 이 책에는 이 회장 25년 사업 경험과 경영 철학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병구 회장이 가진 경제사상은 자유주의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보단 프리드먼의 주장을 반박한 하워드 슐츠 스타벅스 최고경영자(CEO)에 가깝다. 이 회장은 “이윤 창출이 기업의 유일 목표라고 생각하는 경영자들이 많다”며 “그러나 슐츠의 말처럼 목적과 과정이 있는 회사라야 장기적으로 발전 가능하며 이윤도 꾸준히 만들어낼 수 있다”고 말했다.
책에는 감사하는 마음, 사람과 사람의 좋은 관계가 실제 경영 성과로 이어졌다는 구체적 사례가 기술돼 있다. 매달 10여건의 에러로 가동을 수시로 멈춰야 했던 터치 패널 공정용 스퍼터(Sputter) 장비는 회사 특유의 ‘감사 솔루션’을 적용하자 고장이 월 1회로 확 줄어들었다. 감사 솔루션이란 직원들이 장비에 90도로 인사하며 ‘고장 제로! 감사합니다’, ‘가동 100% 감사합니다’라고 외치는 것이다. 이러한 얘기를 처음 듣는 이들은 대부분 ‘믿기 힘든 일’이라 말한다. 그러나 이 회장은 과학적으로 증명된 ‘긍정의 에너지’ 덕이라고 강조했다. 책에는 좋은 관계를 근간으로 하는 고유의 협업 프로젝트(CoP:Collaboration Project)로 디스플레이 공정에서 발생한 과식각 문제를 해결, 연간 20억원 비용을 절감한 사례 등도 적혀 있다.
‘네패스 임직원 메일을 받으면 기분이 좋아진다’는 고객사와 협력사 관계자들 평가는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이들은 e메일을 쓸 때 수퍼스타!(Superstar!)라는 인사말로 시작해, 마지막 문장은 늘 ‘I will serve you(당신을 섬기겠습니다)’로 끝낸다. 상대방을 신뢰하고, 존중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 역시 이 회장의 ‘감사’ 경영 철학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경영은 관계다:그래티튜드 경영’은 네패스 사내 교육과 한국협업진흥협회 공식 교육 교재로 활용될 예정이다. 이 회장은 인터뷰 말미에 이렇게 말했다.
“아침마다 직원들이 감사 노래를 부르게 하는 것. 지속가능 경영의 첫걸음입니다. 우리나라 많은 기업이 그렇게 하면 좋겠습니다. 이 말을 꼭 넣어주십시오.”
한주엽기자 powerusr@etnews.com